이 글은 안일규 인터뷰어의 블로그에 게재된 글이며 여현호 논설위원의 2007년 칼럼을 현 시점에 맞게 '리메이크'한 글입니다.
착각은 위험하다. 예컨데 이런 것이다. 한나라당이 국회 의석의 절반이 넘는 172석이다. 민주당이 83석이니, 넓은 의미에서 양당 구도다. 하지만 그렇게 보일 뿐, 이미 밑에서부터 허물어지고 있다. 강부자 내각, 총선, 촛불집회를 거쳤지만 민주당의 지지율은 한나라당의 지지율의 4분의 1이나 3.5분의 1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합당, 반 MB전선, 시민단체와 연대 등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강금실 전 법무장관 말마따나 "냉소를 넘어, 분노와 실망이 켜켜이 쌓여 응어리진" 국민의 "거대한 외면"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데도 양당 구도가 이어진다고 한다면, 착각이다. 발 밑의 낭떠러지를 보지 못하게 된다.
착각은 또 있다. 민주당은 합당하자마자 반 한나라당 전선 구축을 서둘러 시작했다. 10년 전이나 5년 전과 같은 바람을 기대했을 게다. 하지만 뭔가 다르다. 1997년이나 2002년 당시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민주정부에 대한 열망과 기대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반 한나라당이라는 '전선'만으론 감동을 주지 못한다. 이 당 저 당 모두 선명야당의 색채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민주당은 야당 역할에 미숙하기까지 하다. 협력야당 논란에 이어 당 내 논쟁도 제대로 못하는가 하면, 이명박 정부 출범 한 해가 다 지나감에도 기초적인 대안야당으로의 발돋움 전략도 구축하지 못했다. 이런 모습으로 국민의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 또한 착각이다.
정치공학으로 지지율을 높인다는 생각부터 잘못일 수 있다. 우리 국민 상당수는 자신이 최소한 대안야당을 필요로 한다고 생각한다. 국회가 '거대야당 대 거대야당의 싸움'이라고 말할 때, 그런 팽팽한 대결을 가능하게 하는 기본 지지층이다. 하지만 민주당이나 민노당의 지지율을 보면 아직도 이들은 결집하지 않았다. 언젠가 올 거라며 우려하던 경제위기와 한 때 전국을 촛불로 뒤덮은 촛불집회 등은 지금도 한나라당이 두려워하는 정국의 중요 변수들이다. 그런 상황이 벌어짐에도 민주당과 민노당은 왜 지지층이 모이지 않을까. 국민들이 보기에 모자라기 때문이다. 반MB라는 형식, 민주연합이라는 모양새, 쟁점을 바꿀 수도 있는 변수 등 정치공학적 요소들을 갖췄는지 모르겠지만, 정작 국민이 보고 싶은 '내용'은 없다. 왜 민주연합이어야 하는지, 지지하면 뭘 할 수 있는지, 그래서 왜 다시 민주연합을 지지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잠재적 지지층이 듣지 못한 탓이다. 전선만 구축하면 어떻게 되겠지라고 여전히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다. 범 박근혜 계열을 지지하겠다는 지지층이 34% 이상이다. 지금 민주당과 민노당 지지율의 합에 1.5배 이상이다. 이걸로는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정작 걱정되는 것은 그 다음, 다음이다. 민주연합이 국민을 납득시키지 못한다면,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의 모습이 서로의 차이를 좁히면서 연대 정체성을 형성하고, 리더십을 구축하는 과정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질적 내용 없이 급조한 전선이어서 더 쉽게 깨어질 수 있다. 설령 그렇게 분열되지 않더라도 지금의 지지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면, 차기 총선에선 양당 체제가 완전히 허물어질 수 있다. 거대 한나라당에, 자유선진당의 유력정당으로의 발돋움, 그리고 나머지 군소 정당들의 구도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반 한나라당 진영에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상황에도 대비해야 할 것 같다. 원래 최악의 시나리오는 궤멸적 타격만은 막기 위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 이 글은 2007년 9월 10일 여현호 <한겨레> 논설위원의 '최악의 시나리오' 칼럼을 현 시점에 맞게 재편집한 글입니다. 당시 여현호 논설위원의 칼럼은 대선용 정당 대통합민주신당을 비판한 글로 현재 찬성과 반대로 뜨거운 DJ발 '민주연합'에 교훈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하여 현 시점에 맞게 위와 같이 재구성했습니다.
* 파란 색 부분이 원 기사에서 바뀐 부분이며 원 기사 내용 중 삭제된 단어나 문장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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