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경아 한림대학교 교수

“보험회사 텔레마케터, 건설회사 경리직, 전기회사 경리직, 시민단체 상근직, 국수회사 생산직, 김치공장 생산직, 헌옷 공장 생산직….” 춘천에 사는 주부인 이윤재옥씨가 지난 10년간 거쳐온 일자리들이다. 사무직, 생산직, 서비스직 등 대표적인 여성 직종을 ‘두루’ 섭렵해 온 그녀의 이력서에서 바뀌지 않은 것은 고용형태와 급여수준이다. 그녀는 어딜 가나 아르바이트 아니면 임시직 사원이었고 급여는 60만∼70만원대에 머물렀다.

남성들도, 젊은이들도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데 주부들까지 나서면 어떡하느냐는 걱정이 있을 수 있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주부들의 일자리는 더 필요하다. 남편의 월급과는 반대로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커가는 아이들을 위해 점점 더 많은 주부들이 일자리를 찾고 있다. 이 시대는 이미 주부들을 주부로만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

취업은 또 가사와 양육 등 일상의 노동 속에서 깊숙이 감춰 두었던 ‘자기 삶의 의미’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아내’와 ‘엄마’면 됐지 그밖에 무엇이 더 필요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다면, 왜 많은 엄마가 딸들에게 결혼 후에도 직업을 가지라고 가르치는지, 얼마나 많은 여성이 자원봉사로 이웃을 돕는지 꼼꼼히 살펴보기 바란다.사회’ 또는 ‘사회적인 영역’에서 자신의 공간을 갖고 능력을 키우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행위는 자기존중감(self-esteem)의 핵심적 요소이다. 7월 초 강릉과 춘천에서 열린 토론회 ‘경제, 여성에 날개를 달다’는 바로 이런 문제를 다루었다. 지난 5년간 강원도에서 이뤄진 여성경제활동 관련 정책을 평가하고 향후 방향을 모색하는 이 자리에서 위의 글이 발표됐다.(이윤재옥, ‘평생 일하고 싶은 나의 꿈’)

사실 일자리 창출 정책은 중앙정부의 사업으로 인식되어 그동안 지자체에서는 간과해 왔다. 그러나 지방분권화가 확대되면서 지방정부도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정책에 관심을 갖지 않으면 안 되는 추세이다. 이 토론회에서 논의된 내용 중 주부의 일자리 갖기와 관련된 정책적 시사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성들이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일자리의 불안정성이다. 이씨가 일을 시작했던 보험회사나 건설회사는 모두 1∼2년 사이에 문을 닫았다. 이 경우 중소기업 지원 등 좀 더 광범위한 정책이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이유는 상습적인 임금체불이나 가혹한 근로조건에 있다. 이씨는 주부들이라면 아르바이트로 보고 으레 한두 달치 월급을 안주고 미루거나 임금 지급을 미루는 직장에서 월급을 달라고 했다가 해고되기도 했다. 노동강도가 매우 강한 공장에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어 그만두었던 경험도 적지 않다. 따라서 악의적인 임금체불이나 근로자의 건강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가혹한 근로조건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관리·감독을 펴 나갈 경우 고용이 훨씬 더 안정될 것이다.

둘째, 현재 강원도에서 시행하고 있는 주부인턴제는 늦은 감이 있지만 좋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기간이 3개월로 한정되어 있어 주부들의 정식 취업을 위한 다리(bridge) 역할을 수행하기는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정해진 예산에 더 많은 주민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하기 위한 의도가 있겠지만, 수혜자 수만큼 정식 취업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중요한 문제이다. 어려운 결심 끝에 사회에 나온 여성들이 3개월 동안 고민만 하다가 그만두는 대신, 기간을 늘려 일도 배우고 직장 경험을 쌓아 정식 취업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주부들의 취업은 익숙한 현상이 되고 있지만, 그것은 여전히 어려운 모험(!)이다. 그들의 미래는 ‘인디아나 존스’ 같은 모험의 연속이지만, 영화보다 더 가혹하다. 영화에서 결국 주인공이 살아남는 것과는 달리 현실의 여성들이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모른다. 영화보다 가혹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힘은 정책뿐이다.

신경아 한림대교수  
(강원일보  2008-7-17 기사 )

작성일 : 2008-07-17 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