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산골(화천)에서 25년째 농사를 짓고 있는 ‘빈자들의 목회자’ 임락경 목사(60·사진). 그는 스스로를 ‘촌놈’이라 부른다. 높은 자리의 ‘강대상’에 서기보다는 벌 치고 밭 갈고 논에 물 대는 일을 더 좋아하는 천상 농사꾼이다.

임목사는 평생을 배고프고 아픈 사람들과 함께 했다. 순창 유등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바로 농사꾼의 길로 들어섰다. 농사와 함께 이현필 선생이 운영하던 무등산 ‘동광원’에서 결핵환자를 돌보았다. 그 햇수만 15년이다. 그후에도 아픈 사람은 물론 해고노동자, 장애인들의 친구이자 아버지로 살았다. 근처 병원에서 새벽같이 음식물 찌꺼기를 얻어와 돼지를 치고, 매일 새벽 양젖을 짜 끓인 뒤 새벽배달로 장애인들의 생계를 돌보기도 했다.

1980년 장애인들과 함께 강원도 화천의 외진 곳으로 들어왔다. 화악산 기슭에 교회를 지어 25년째 장애우와 갈 곳 없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임목사는 “장애우들을 돌보는 게 아니라 그냥 함께 살아간다”고 말한다. 또한 이곳에서 생태농업 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벌을 쳐 꿀을 따고, 된장도 직접 만든다. 이곳에서 만든 ‘시골집 된장’으로 운영비를 충당한다.

처음에는 교회 이름을 ‘망할 교회’로 지었다. 자신의 교회가 망하더라도 장애우들이 없는 세상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은 이름이다. 지금은 ‘시골교회’로 이름을 바꿨다. 여느 교회와 달리 목사도 평신도도 없다. 같이 먹고, 같이 일하고, 1주일에 한번 있는 예배설교도 돌아가면서 담당한다. 치료나 복지 프로그램도 없다.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게 치료요, 복지인 셈이다. 요즘에는 경기 남양주에 있는 감리교육원에서 ‘민간치료요법’ 강의도 하고 있다.

임목사는 최근 이색적인 자서전을 펴냈다. 노래 속에 자신의 인생과 삶을 녹여낸 ‘촌놈 임락경의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삼인)’. 일제시대부터 유신시절까지 대중들이 부른 총 70여편의 창가, 동요, 관제가요, 군가, 유행가, 운동가요들을 소개하고 그 노래에 얽힌 개인사와 시대의 뒷얘기를 들려준다.

‘왔네 왔네 해방 왔네 망명 갔던 이박사가/일제 탄압 물리치고 조국 광복 이룩코저’라는 ‘이박사 찬가’는 당시 여고생들이 생일상을 앞에 놓고도 불렀다고 한다. 또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보급됐던 ‘재건의 노래’는 아침, 저녁 인사까지 ‘재건합시다’라고 바꿀 정도였다고 전한다.

전두환 정권 시절 민주화 운동으로 구속됐던 후배가 결혼식을 위해 잠깐 나왔다가 다시 끌려갈 때 신부가 ‘님께서 가신 길은 영광의 길이었기에’를 부르자 결혼식장이 눈물바다가 됐다는 얘기, 1979년 크리스찬 아카데미 교육 마지막 날 불렀던 ‘농민들이 얼마나 농사를 더 져야 살 수 있나~’라는 노래 한곡 때문에 체제전복을 도모했다는 죄목으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던 이야기들은 노래에 얽힌 독재시대의 암울함을 보여준다.

한편 지난 20일 시골교회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등 정·관계, 학계, 여성운동가, 시인, 농민단체회원 등 30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배병문기자 bm1906@kyunghyang.com〉

*출처 ; 경향신문 2005.8.31

작성일 : 2008-12-03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