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연쇄살인 사건을 보며 참으로 "멍~"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정말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보면서 인간이 얼마나 악해질 수 있는지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과연 실명 공개, 얼굴 공개까지 해야 하나요? 그것도 지금 이 시점에서?

저 역시 피의자 강 씨를 보면서 '저런 흉악범의 인권까지 보호해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 헌법 제 27조 4항은 분명히 "형사 피고인은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확정 판결 이전까지는 무죄로 추정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또, (법을 전공하지 않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피의자 공표 금지의 원칙'도 있다고 하네요.

물론 피의자 강 씨가 이번 범죄를 실제로 저지른 사람인 건 거의 분명해 보이지만, 헌법상의 원칙(무죄 추정의 원칙)은 지켜져야 할 것입니다. 상업주의 찌라시 조선일보, 중앙일보가 공익을 명분으로 가장 먼저 피의자 강 씨의 얼굴을 공개하면서 이제 TV에서도 강 씨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요, 실명 및 얼굴 공개에 찬성하는 사람들은 주로 국민의 알권리 보장, 추가 목격자 및 제보 확보, 경각심 고취 등을 공개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국민의 알권리'는 공익적 필요가 전제돼야 하는데, 이미 붙잡힌 강 씨의 실명과 얼굴을 국민들이 알게 된다고 해서 실제로 기대되는 공적 이익이 무엇인가요? 지명수배자의 경우라면 재범의 위험성과 국민의 안전을 위한다는 공익성이 있겠지만 강 씨는 경우가 다릅니다.

물론 얼굴을 공개함으로써 추가 목격자 및 제보를 확보할 수 있다는 논리는 상당히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흉악범의 인권은 어느 정도 제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얼굴 공개를 통해 기대되는 약간의 공익적 요소가 있다고 하더라도, 피의자 가족이 받을 수 있는 피해를 감안해야 합니다. 죄없는 피의자의 자식들에게까지 고통을 주는 것은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공익을 명분으로 범죄 피의자의 가족에게까지 피해를 주는 것은 일종의 연좌제입니다. 한겨레신문은 "흉악범이라 할지라도 공인이 아닌 이상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이는 헌법상 무죄 추정의 원칙, 그리고 아무리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신상 공개는 수사상 필요한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인권적 형사법적 측면을 두루 고려한 결과"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상업주의 찌라시 조선/중앙일보 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흉악범죄 피의자라고 해서 사진을 공개한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청소년 성범죄자의 경우도 큰 틀에서 개인의 신상명세, 즉 거주지와 이름을 공개하지 사진을 공개하지는 않는다고 하네요. 얼굴 공개는 대중의 분노를 자극시키거나 호기심 충족, 감정적 카타르시스 등의 효과(?)를 가져오기는 하겠지만, 이것이 공익적 필요에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분명한 것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재판을 통해 범죄가 확정되기 전 단계에서는 개인 신상을 공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민수 강릉대 법대 교수는 "열명의 범죄자를 놓쳐서 한명의 인권을 보호해야한다는 격언도 있다"면서 "공익과 사익의 비교논리의 경우도 현재 범죄사실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공익과 사익을 비교하는 것은 전제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아무리 범죄가 끔찍하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더라도, 기본원칙을 지켜가며 일을 해결해 나갔으면 합니다.

작성일 : 2009-02-03 05: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