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구 백리

 
- 우리 아버님이 운전명허증 딴 이야기

 
우리 아버님이 어려서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하셨다. 동네에 중학교를 나온 형에게 나뭇짐을 해다 주며 한글과 산술을 배웠다. 영어의 알파벳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자 나에게 배웠고, 목수일을 시작하실 무렵에는 도면 보는 법을 내가 중학교 공업교과서에 있는 걸 보고 가르쳤다. 배움이 늦었으나 근본이 총명하시어 내가 한 번 가르치면 그 뜻을 골똘히 생각하시어 그 뒤로는 묻는 바가 거의 없었다. 산술에 있어서는 혼자 터득한 방법으로 장사꾼들보다 더 빠르게 암산을 해 내셨다.
 
군대를 제대하던 해에 오랜만에 집에서 머물렀는데, 아버님이 자동차 운전면허를 따서 스스로 자동차 운전을 하고 싶어 하시는 걸 알았다. 그 해에 성철 스님이 돌아가셨다. 잡지에 그의 이야기를 다룬 글을 읽었는데, 그가 남긴 말 중에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구 백리'라는 말이 있었나 보다. 그냥 흘려서 읽고 말았는데 우리 아버님이 운전면허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고 그 뜻을 깨달았다.
 
아버님이 운전면허를 따고 싶어하셨는데, 워낙 배움이 짧아서 엄두를 못 내고 계셨다. 나는 그때 군대를 제대하여 복적(복학이 아니라 복적이다)을 준비하기 위하여 다시 전공서적을 보기 시작하던 때였다. 어느날 아버님께 하루 한 시간씩 강의를 할 터이니 면허공부를 하는게 어떠냐고 제안을 하니 아버님이 뛸 듯이 기뻐하셨다.
 
그리하여 매일 식전에 한 시간씩 강의를 했는데 처음에는 타고난 성격대로 그 마음이 급하기가 짝이 없으셨다. 내가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질문하시고, 앞 문장을 채 이야기하기도 전에 다음 문장이 궁금하여 책장을 넘기려 하시고, 이치를 깨우치기도 전에 문제를 풀으려 하시고, 문제풀이에 들어가기도 전에 답안지 작성요령을 염려하셨다. 공부하는 속도도 처음에는 느리기 짝이 없었다. 하루에 겨우 한 시간 강의한 내용을 하루 종일 공부해도 채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러나 나는 아버님이 공부하기 시작한지 삼 일 되던 날, 아버님이 공부하시는 모습을 보며 한 번에 시험에 붙을 걸 알았다. 그때는 겨울이라 목수 일을 하시는 아버님도 일이 별로 없어서 하루 종일 추운 방에 앉아서 공부하셨다. 어찌나 열심이시던지 점심 끼니도 잊고, 오줌 누러가는 시간도 아까워하셨다. 하루 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읽고 또 읽고 날이 저무는 줄도, 밤에 주무시는 것도, 바깥출입도 잊었다. 글을 읽을 때는 처음에는 입으로 한 자 한 자 읽어 속도가 더디더니 갈수록 빨라졌다. 뜻을 깨칠 때도 처음에는 모르는 것이 있으면 즉시 물으시더니 나중에는 함부로 묻지 않고 그 뜻을 이해할 때까지 읽고, 그래도 모르겠으면 다음날 강의시간이 되어서야 내게 물으셨다. 결국에는 한 달 예정을 했던 강의가 보름 만에 끝났다. 한 달 후 아버님은 운전면허 시험에 단번에 합격하셨고, 나는 성철 스님이 말한 '천리 길을 가는 사람은 마음가짐이 구백 리'란 말의 뜻을 그렇게 알았다.
 
우리 동네에 우리 아버님 또래의 아저씨 한 분이 계셨는데, 평소에 중학교까지 다니고 국민학교 들어가기 전에 서당 다닌 걸 늘 자랑삼아 이야기하셨다. 막내 동생이 나보다 일찍 군대를 가서 제대할 무렵에 내가 입대를 했다. 막내동생이 입대하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서 이 아저씨와 운전면허학원을 다녔는데, 내가 제대할 때까지도 이 아저씨는 운전면허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운전면허를 따자 이 아저씨도 두 달 만에 운전면허를 땄다. 사람의 마음가짐이 이렇다.

 
- 황상이 열 다섯에 스승 정약용을 처음 만나서 들은 이야기
 

다산이 황상에게 문사(文史) 공부할 것을 권했다. 그는 쭈뼛쭈뼛하더니 부끄러운 빛으로 사양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제가 세 가지 병통이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꽉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한 것입니다."
 
다산이 말했다.
 
"배우는 사람에게 큰 병통이 세 가지가 있다. 네게는 그것이 없구나. 첫째 외우는 데 민첩한 사람은 소홀한 것이 문제다. 둘째로 글 짓는 것이 날래면 글이 들떠 날리는 게 병통이지. 셋째 깨달음이 재빠르면 거친 것이 폐단이다.

  대저 둔한데도 계속 천착하는 사람은 구멍이 넓게 되고, 막혔다가 뚫리면 그 흐름이 성대해지고, 답답한데도 꾸준히 연마하는 사람은 그 빛이 반짝반짝하게 된다. 천착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뚫는 것은 어찌하나? 부지런히 해야 한다. 연마하는 것은 어떻게 할까? 부지런히 해야 한다. 네가 어떤 자세로 부지런히 해야 할까?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아야 한다."
 
황상이 이후로 61년 동안 능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라는 세 글자를 받들어 따랐음을 후순에게 전하기 위해 '임술기'에 남겼다.

작성일 : 2009-09-03 0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