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시민행동 토론회 평가

들어가는 말

지난 4월 30일 6.2 지방선거에 대응하기 위한 원주지역 시민사회진영이 중심이 된 2010 시민행동의 토론회가 있었다. 이번 토론회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나타난 시민들의 정치의식과 이번 선거에 대한 생각들을 정리하여 시민사회진영의 정책적 요구들을 정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2010 시민행동은 '유권자운동'을 중심으로 활동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각기 달리 해석이 가능하지만 유권자운동은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만들어가겠다는 것, 각 정당과 후보자들이 중심이 될 수밖에 없고, 시민들은 단지 투표를 강요당하는 수동적인 역할에 그쳤던 과거 선거의 관성에서 벗어나 정책요구를 중심으로 시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겠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민의 정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책요구를 중심으로 한 유권자 운동은 이러한 긍정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가장 커다란 문제는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각 정당과 후보자들에게 정책의 채택과 당선 이후의 집행을 담보할 수 있는 실천적인 강제수단이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공염불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금 2010 시민행동은 그 강제력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문제는 계급적이며 근본적인 요구를 수렴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권자운동의 대상을 몰계급적인 '시민'으로 상정하는 순간 이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제기는 불가능해 진다. 설문조사 항목 자체가 그렇게 제시되었다. 물론 모든 노동자도 시민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시민'의 정체성이 자본주의 사회로부터 차별과 배제를 당하여 착취당하는 자신들의 계급적 정체성을 스스로 부정하고 '중산층'이라는 자본주의적 질서에 순응하는 계층적 정체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정치적 지향은 탈계급적-탈이데올로기적 수밖에 없다. 계급은 자본주의에 저항할 수 있지만 탈계급적-탈이데올로기적 계층은 자본주의에 순응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근본적인 한계가 이번 토론회에서도 나타났다. 어쩌면 2010 시민행동이 이러한 근본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가치 없는 행동으로 치부하기엔 현재의 상황이 만만치가 않다. 왜냐하면 선거투쟁에 대한 이러한 인식이 시민사회진영만의 문제가 아니고 속칭 진보진영,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나타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일정하게 선거에서 자신들만의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진보진영의 계급적 선거대응에 혼선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토론회를 평가하면서 진보진영의 선거투쟁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우리의 구체적인 실천계획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여기서 거론하는 발언을 누가 했는가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다. 그 개인에 대한 평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2010 시민행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발언을 통하여 2010 시민행동이 6.2 지방선거를 어떠한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고 이것이 올바른 관점이지를 판단하고 이러한 판단을 기준으로 진보진영의 선거투쟁의 원칙을 스스로 돌아보기 위한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평가

1. '좋은 정책'이라는 몰계급적 관점에 대하여

작년 원주에서는 '로컬푸드지원조례'가 의결되었다. 로컬푸드운동은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친환경적으로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좋은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좋은 정책이기 때문에 의결될 수 있었다는 관점이다. 과연 그런가?

그러나 이 말은 뒤집어서 말하면 만만하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자본주의 사회의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 즉 현 지배질서와 자본주의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는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행동이었다면 그것이 과연 실현될 수 있었을까? 진보진영은 탄탄한 정책역량을 가지고 있고, 이 사회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대안들을 정책으로 수 없이 생산했고 제안했었다. 그러나 현 사회의 지배질서에 위협이 된다고 자본과 권력이 판단한 순가 그러한 정책들은 철저하게 무시당해왔다. 대표적인 것이 비정규직권리법안이다. 비정규직권리법안은 '사용사유 제한'과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핵심으로 하는 법안이었고 여론조사에서는 항상 60%가 넘는 국민들이 지지했던 정책이었다. 가장 최근의 투쟁으로는 광우병 소고기 수입 반대투쟁이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은 철저하게 탄압했고 결국 투쟁에서 지친 우리는 광우병 소고기가 수입되는 것을 지켜보아야 했다. 용산 철거민학살도 마찬가지이다. 자본과 권력은 슬쩍 비껴가면서 여전히 재개발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결국 좋은 정책이었기 때문에 실현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지배질서에 아무런 위협이 되지 않기 때문에 실현될 수 있었다는 것이 객관적인 판단일 것이다. 이러한 예는 사회활동과 관련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바로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의 이력을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후보자들이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일부 시민단체의 경력을 자랑스럽게 자랑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일부 의제들이 시민권을 얻었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보수와 진보가 구분되지 않는 의제가 되었다는 것이고 그것은 현재의 지배질서, 자본주의의 발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다는 것이 된다. 즉 일부 의제와 그 의제를 실천하는 일부 시민단체가 체제 내화되어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일부 시민단체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실천투쟁에 회원들의 지향과 정서를 들어 참여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반증하고 있는 것 아닌가?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지지한다고 하더라고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급진화하지 못한 의제와 실천은 보수에게는 단지 치장하기 편리한, 자신의 주가를 한껏 올려주는 레테르(letter. 네덜란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2. 정치권력의 획득보다 공동체적 삶이 더 중요하다는 관점에 대해서

'○○보다 △△이 중요하다'는 관점을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라고 해서 과학적 사고의 방식이 아니라고 한다. 이 판단은 재론의 여지가 없을 만큼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실천적인 과정에서는 아직도 이러한 판단이 반복되고 있다. 물론 자신의 생각을 주장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화법이지만 사실은 이러한 이분법적인 방법론이 뇌리에 박혀있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철학적 사고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분법적 구분은 여기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 노동의제와 비노동의제 등과 같은 구분법이 그것이다. 정치라는 것은 현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중앙(전국)의제와 지방의제가 구분될 수 없다. 물론 지역적 조건의 차이 - 특히 한국처럼 지방자치가 여전히 중앙권력의 의지에 따라 좌우되는 상황이면 더욱 그렇다. 최근 각종 지침에 대하여 행정안전부가 교부금 삭감을 무기로 지자체에 중앙의 지침을 군소리 없이 따를 것을 강요하고 있는 상황이 이를 말해주고 있다.-에 따라 그 실현방법 등이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다를 수 없다. 그런데 중앙의제와 지방의제로 구분하여 가급적(?) 지방의제를 중심으로 선거에 대응하는 태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올 초 사회포럼에서 노동의제와 비노동의제의 문제에 대한 아주 짧은 논쟁이 있었다고 들었다. 물론 나는 노동의제들이 이 사회의 근본적인 의제가 대부분이고 그런 측면에서 변혁운동의 실천적인 계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노동의제가 채택되지 않거나 여타의 부문의제와 같은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은 틀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차이가 아니라 옭고 그름의 문제이기 때문에 틀렸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물론 전략과 전술에 따라서 그 차이가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말하지 않는, 따라서 그 대안은 탈자본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자칭 진보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가정한다면 자본주의를 지탱하고 있는 '노동'의 문제를 정면으로 맞닥뜨리지 않고는 자본주의를 극복한다는 것은 단지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현 시점에서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가 무엇인가? 현실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실타래의 끝' -그래서 그 의제를 해결하면 다른 의제까지 더불어 해결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는, 그런 방향으로 흐름을 바꾸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의제- 이 무엇인지 찾아내야 하는데 그런 고민이 아니라 그저 여러 부분의 의제들을 나열하는 것은 사실상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싶지 않다는 인식의 반영이기도 하다.

철학적 범주들 - 존재와 의식, 개별(특수)과 보편, 내용과 형식, 내부모순과 외부모순 등-에서 각 개념들의 관계는 ○○은 중요하고 △△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무엇이 일차적이고 근본적인가 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과 공동체적 삶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의 관계를 선/후차의 문제나 중요도로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러므로 직접적으로 정치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투쟁 보다는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천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틀렸다. 물론 이러한 주장은 과거 사회주의(구좌파)의 실패에 대한 대안으로 제출되고 있는 자율적 맑스주의 입장이며, 아나키즘의 한 조류로 주장되고 있는 사상이다.

구좌파는 토대와 상부구조와의 관계에서 토대가 결정적이라는 극단적인 사고를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현실이 운동하는 것은 그런 사상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상(철학)은 옳았는데 사람이 망가트렸다거나(스탈린주의), 또는 외부의 조건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항변(자본주의 국가의 공격)은 하나의 진실일 뿐이다. 그러나 이러한 좌편향이 있다면 자신의 오류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성찰하기 보다는 현재의 위치에서 멀리 떨어지는 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으려는 수정주의-개량주의 또한 틀렸다. 왜냐하면 사회가 개인과 공동체에 끊임없이 자본주의적 삶을 강제하고 있는 현실을 무시하고 개인들의 의지만으로 뭉치면 할 수 있다는 사고는 전형적인 관념론이다. 구좌파가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으로 틀렸다는 것이 입증되었다면, 수정주의 또한 신자유주의 광풍 앞에서 서구 사민주의의 실패가 입증하고 있다. 또한 역사적으로도 처음에는 노동자들이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하는 협동조합에서 경제적,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조합으로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과정, 노동조합에서 정치권력 획득을 위해 노동자정당을 건설했던 역사적 과정을 애써 눈감거나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산이다.

사회의 구조적인 변화와 그 사회를 직접 운영하는 사람들의 변화는 모두 중요하다. 자본주의적 삶을 살면서 자본주의를 극복할 수 없다. 그렇지만 자본주의가 맹위를 떨치고 있는 현실에서 구조적인 변화를 추구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실패한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3. 개별들의 단순한 합은 전체가 아니다.

마지막 결론(?!)에서는 각 부문의 의제들을 핵심의제 몇 개로 추려내기로 했다. 좋게 표현하자면 모든 정책들이 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선택과 집중, 내 표현방식으로 말하자면 근본적이며 중요한 의제에 대한 결정 없이 모두 펼쳐 놓는 것은 사실상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집행위원회에서 중요한(!) 정책을 추려내겠지만 현 정세와 관련하여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의제들이 보이지 않는다. 그냥 각 부문의 의제로 숨어 있을 뿐이다. 무상급식과 4대강반대 등이 제안되고 있지만 선거 국면에서 진보진영은 보수와 자신을 가르는 핵심적인 의제로 밀어 올리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선관위에서는 무상급식과 4대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는 것 자체를 선거법위반으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정치,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 급기야는 자신들의 고용문제에 대해 거리선전전을 하던 노동자들이 선거법위반으로 연행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물론 원주에서도 그렇다. 매주 수요일 진행하는 촛불집회-아직은 우리의 실력이 모자라서 촛불집회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다.-에 대해 경찰은 4대강과 세종시 등 정치적 쟁점이 되는 문제에 대한 일체의 발언과 표현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치집회이기 때문에 전원 연행하겠다면 닭장차 9대를 동원하여 위협한 바 있다.

가장 기본적인 정치적 자유, 집회와 시위, 표현의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동안 수많은 투쟁을 통해 쟁취한 소중한 민주적 권리이다. 그러나 지금 모든 것이 부정당하고 있다. 그러나 2010 시민행동에서는 이러한 현안문제에 대해서 침묵하고 있다. 바로 정치투쟁보다 공동체적 삶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고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앙정치와 지방정치는 다르다는 이분법적 사고 -결국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며 지배계급의 이익에 봉사하는 결과를 가져다주는 -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4. (현안)투쟁과 선거는 다르다?!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중요한 정치적 격변을 만들어 갈 수 있는 선거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생활정치라는 이름으로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관점도 있지만 현안문제를 중심으로 한 투쟁과 선거는 다르다는 관점이 있다. 즉 선거는 투표행위이지 투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한 측면에서만 맞을 뿐이다.

민주주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선거일뿐이다. 그러나 마치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방안이 투표, 그것도 한계가 명확한 대의민주주의를 위해 투표하는 것을 유력한 방안으로 말하는 것은 사실상 현재의 정치적 구도를 바꿀 의지가 없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대의민주주의란 대중이 자신의 삶을 자신이 결정하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대의민주주의의 문제가 마치 불가피한 선택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단적으로 말해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지. 그러나 그 이유는 딱 하나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비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으로 표현되지만 결국은 '돈'의 문제이다. 비용투입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극히 자본주의적 발상이다. 그러니 먹고 살기 바쁜 노동자들은 빠지고 시간이 많은, 결국 돈으로 시간도 살 수 있는 자본가들에게 정치는 맡기고 열심히 일만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현실과 생활과 노동과 멀리 떨어질수록 지배계급의 장기적인 안정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예를 들자면 지방의원의 세비에 대해서 너무 많다거나, 명예직으로 해야 한다거나 하는 발언은 개념 없는 발언이다.

한나라당 조전혁의원이 전교조의 명단을 공개했다.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공개했다. 이 행위는 무엇을 말하는가? 이번 선거에서 특히 경기도교육감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한나라당과 보수진영이 교육감선거에서 전교조와 반전교조 프레임으로 전선을 형성하겠다는 의지이다. 그리고 현실에서 자행되고 있는 전교조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너무도 정치적인 행동이고 이러한 정치적 행동이 이번 선거에서 보수층의 결집을 만들어 내고 있다. 민주당의 시내버스 광고를 거부한 서울시가 그렇지 않은가? 무상급식과 4대강에 대한 표현을 선거법위반이라는 선관위-결국은 이명박정권-의 판단이 그렇지 않은가?

지방선거와 관련하여 가장 중요하게 논의되고 있는 것이 바로 지방권력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이다. 그런데 공직사회, 특히 지방권력의 토호세력과 결탁한 부정부패의 근절과 공직사회개혁을 위해 투쟁하고 있는 공무원노조의 투쟁에 대해서는 그 흔한 지지선언조차 없다. 다양한 개혁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장의 강력한 감시자이며 비판자이고 내부고발자인 공무원노동조합이 정권에 의해서 상식을 넘어서는 탄압에 맞서 힘겹게 투쟁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공무원노동조합의 문제'라면 한발 비껴서있다. 지방권력의 투명하고 민주적인 운영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공무원노조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장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그렇다면 당연히 공무원노조에 가해지고 있는 탄압에 맞서 같이 서 있어야 한다. (기륭전자의 투쟁에 함께 하는 자발적인 시민들의 모임이 '함께 맞는 비'라는 것은 시시하는 바가 있다.)

그러나 2010 시민행동은 현안투쟁과 선거를 분리하고 있다. 물론 골프장과 재개발, 전술훈련장 등 지역의 현안문제에 대해서는 발언을 하면서도 말이다. 현안투쟁에 무관심한 2010 시민행동의 태도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자 그 문제는 여기서 논할 자리가 아니라는 발언을 한다. 그것은 선거와 현안투쟁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결과이다. 현안문제에 대응하기 위하여 기술적으로 연석회의가 제안되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지....

이러한 문제의식은 물론 현실에서 조직하기 어려운 현실을 반영하는 측면도 있다. 노동의제 등 현안투쟁을 받을 수 있는 시민단체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발언을 듣자면 투쟁에 나서자고 호소하는데 "조합원들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며 투쟁을 조직하는 것을 회피하는 노동관료들의 진부한 답변을 듣는 것 같아 씁쓸하다.

또 다른 문제의식은 시민단체의 활동영역과 노동운동(민중운동)의 활동영역을 구분하는 태도이다. 그렇다. 현실에서 시민단체의 활동의제와 영역은 노동운동(민중운동)의 의제와 활동역역과 명확하게 구분된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이러한 상황은 시민사회진영이나 노동운동진영 일방의 문제는 아니다. 시민사회진영은 노동운동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고 있고, 노동운동은 시민사회진영를 체제내화한 개량주의라며 서로 만나는 것조차 싫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형식적 민주주의의 확장과 현실사회주의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변화가 강제한 결과이다. 그러나 이렇게 시민사회진영과 노동운동이 견우와 직녀도 아닌데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 누구에게 이로울까? 지배계급 아닐까?

실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일예로 들자면 환경운동은 환경단체 회원만의 활동이 되어야 하나? 자본주의의 이윤극대화가 만들어낸 환경문제가 노동자들의 문제가 아닌가? 고용불안이 시달리고 있어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장하고 있는 시민사회진영은 노동자로써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들에게는 여성의 문제가 없는가? 또 비정규직노동자중 80%가 여성인데 노동자의 문제가 아닌가? 서로 자신의 문제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의제라며 회피하고 있는 현실을 언제까지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방치할 것인가? 운동이라 자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사람이 먼저 나서는 것이 운동이 아닌가? 시민사회진영 활동가들은 환경과 노동이, 성평등과 노동이 함께 만나야 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것인가? 물론 그 동안 노동운동이 보편적 권리에 대해서 무관심했던 결과 시민사회진영으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중요한 원인의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겠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은 서로 극복되어야할 과제이며 지금부터 작지만 실천해야 하는 과제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결이 아닌 분리는 지배계급이게만 이익이다. 동의한다면 지금 함께 하자. 회원과 조합원들이 동의하지 못하는 문제는 실천을 계속 유보하는 것이 아니라 설득해야할 과제일 뿐이다.

5.실현가능한 정책이라는 관점에 대한 비판

위와 같은 사고는 결과적으로 실리주의이다. 실리주의는 당장 실현이 불가능한 것에 대한 문제제기와 실천보다는 실현가능한 것에 집중한다. 그렇게 성과를 쌓아 나가다 보면 근본적인 변화까지 가능하다는 사상이다. 실리주의는 패배주의가 낳은 결과이다. 연속된 패배에 따른 좌절은 좌익 모험주의로 나타나거나 실리주의로 나타난다. 지금 우리운동이 실리주의로 고통 받고 있다.

실현가능한 정책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앞서 좋은 정책에 대한 비판에서 말했듯이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회피한다. 근본적인 문제제기로 나아가는 순간 지배세력을 꼼짝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배세력이 관용을 베풀지 않는 한, 그래서 투쟁으로 돌파하지 않는 한 아무리 좋은 정책일지라도 성취할 수 없다. 투쟁하지 않는 상황에서 양보라는 칼자루는 지배계급이 쥐고 있기 때문이다.

투쟁하지 않는 실리주의는 민주대연합으로 갈 수 밖에 없다. 지금 선거정국에서 진보정당이라고 자임하는 정당들도 보수정당들의 퇴행적이 구시대의 전유물이라고 비난하던 합종연횡에서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원인이다. 투쟁하지 않고, 지배계급이 용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성취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은 쪽수를 많이 보태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계급적 요구를 자제하고 몰계급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자유주의적 정책을 지지하고 자유주의세력과 연대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진보진영은 문제제기의 능력조차 의심받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바마정권의 건강보험 정책과 관련하여 민주당과의 연대가 아니라 대중운동의 복원을 주장하는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blog.jinbo.net/neoscrum)

결론과 제안

읽어버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저항'이다

사실상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는 보수진영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자고 단결했다. 그리고 이명박씨가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국회에서도 다수당을 차지했다. 놀랄만한 수치였다.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속칭 진보진영은 당혹스러워했다. 그리고 이명박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내자고 한다. 글쎄.지켜야할 민주주의가 뭐지 있기나 했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명박은 충실한 노사모일 뿐이다. 그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이행하고 있을 뿐이다. 차이가 있다면 임승수동지가 말했듯이 무식하게 패는 것과 파스를 붙여 줘가며 패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투표는 가장 수동적인 행위이다. 투쟁을 멈추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얻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운동을 체제내화시키는 달콤한 악마의 유혹일 따름이다. 이렇게 지난 민주화 10년이 있었고 운동은 저항하는 것을 잃어버렸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온 적이 없는데 저들의 민주주의를 우리의 민주주의였다고 강변하는 자유주의세력의 유혹에 흔들리고 있다. 더 큰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라는 협박에. 그런데 우리에게 더 밀려난 곳이 있기나 한가?

투표는 중요하다. 참여해야 하고 계급적으로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직접민주주의를 말살하려는 폭압에 맞서 저항하는 것이다. 스스로 저항을 조직하는 것, 이것만큼 민주주의를 가장 충실하게 보여주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우리가 지켜나가야 할 가치가 정치권력 획득을 위한 정치투쟁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연대라고 한다. 그렇다. 자신의 권리를 소수의 정치인에게 의탁하는 것은 민주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우리가 만들어 가야할 공동체적 삶도 참여를 전제로 한다.

현실의 문제에서부터, 가장 기본적인 권리에서부터 투쟁을 만들어 가자. 투쟁하는 것이 동의된다면 각자의 조건에서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면 된다. 투쟁은 그렇게 조직되는 것이다. 분리와 배제는 지배계급의 미덕일 뿐이다. 우리의 미덕은 단결과 연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투쟁이다. 지금부터, 나부터 시작하자.

지난 10년 잃어버린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저항의 기억, 저항의 방법을 빼앗겼다. 이명박 정권이 빼앗은 것이 아니다.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했다는 세력이, 진보정치를 표방하는 세력이 스스로 가장 수동적인 저항인 선거에 끌려 다니면서 저항의 뿌리를 죽여 갔던 것이다.

덧글

이 처럼 주장하면 아직도 80년대 타령이냐? 아직도 구태의연한 운동권의 NL/PD논쟁이냐며 핀잔할 수도 있겠다. 바야흐로 21세기는 탈이념의 시대라면서. 그런가? 그 주장은 누구의 주장인가? 이러한 주장에 대해서 아래의 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답변한다. (이 질문 꼭 나오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존 질서에 진지하게 도전하려는 정치적 기획에 참여하는 조짐만 보이면 그 순간 즉시 대답이 튀어 나온다. …"당신의 급진적 생각을 따라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주위를 둘러보고 당신 눈으로 직접 확인해라!"… 과학적 객관성에 대한 요구는 똑같은 생각 금지가 모습만 바꾼 것일 뿐이다. 우리가 기존의 자유주의적 합의에 진지하게 의문을 제기하는 순간 우리는 과학적 객관성을 팽개치고 낡은 이데올로기적 입장으로 돌아간다고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우리가 양보할 수도 없고 양보해서도 안 되는 '레닌주의적' 입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오늘날 실질적인 사상의 자유는 현재 지배적인 지위에 있는 자유민주주의적이고 "탈이데올로기적인" 합의에 의문을 제기할 자유를 의미하며, 그것이 아니라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지젝이 만난 레닌』263 쪽

작성일 : 2010-05-04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