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어느 날인가, 남편이 나를 불러앉혔다. 이미 그 전부터 돌아가는 낌새가 있어서 대충 짐작이 됐다.

울산의 동구가 재보궐선거 지역이 되면서 둘레에서 출마해야 한다는 말들이 있었고, 본인도 그 고민을 해왔던 터다.

작년 지방선거 때도 남편은 뜻을 함께 하는 울산의 노동자들과 '노동자탄압 세력과 묻지마 연대를 반대한다'는 기자회견을 했었다.

그래도 울산의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쨌든 다시 보궐선거 결정이 되고 난 후, 민주당과 민주노동당, 거기에 진보신당까지 합세한 후보단일화가 점점 현실로 굳어가면서 출마요청은 급물살을 탔고, 본인도 마음의 결정을 내린 듯했다.

말하자면 그 날 저녁의 대화는 의논이라기 보다는 자기의 결심을 '통보'하기 위한 자리였다.

 

"출마를 해야 할 것 같아"".....준비도 없이 되겠어?"

 

"각오해야지""힘들텐데....괜찮겠어? 꼭 해야 돼??"

 

"......""만일 민주당이랑 야권연대 안 하면 안 나갈 거야? 그들이 처음 그러는 것도 아닌데, 그냥 출마보다 다른 방식으로 싸우면 안 되나? 돈도, 사람도 없는데..."

 

"야권연대 안하고 진보신당이랑 하면 나는 안 나가지. 근데 작년에도 묻지마 연대 하지 말고, 최소한 노동자들한테 했던 거 반성이라도 받은 후에 해라 아무리 문제제기 해도 전혀 듣질 않잖아"

 

"진짜 힘들텐데...거의 테러 당할 텐데, 괜찮을까?"

 

그 때 남편이 약간 생각을 하다가 말했다.

 

"여보, 나는 김주익 때문에도 그럴 수 없어. 다 민주당 10년에 일어난 일인데 어떻게 노동자들한테 한 마디 사과도 없이 민주노총이나 민주노동당이나 다 이렇게 막 갈 수가 있어...진짜..."

 

야권연대나 반한나라당을 주장하는 어떤 논리보다도 나는 노동자인 남편의 거친 대답이 가슴에 와 닿았다.

그렇게 살갑게 친한 사이도 아니었는데, 남편은 김주익에 대해 애틋했다. 그건 골리앗의 경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03년 구청장 시절, 김주익이 129일을 혼자서 골리앗 크레인에 있을 동안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죄책감, 김주익의 소식을 듣고 남편은 잠시 눈을 껌뻑거렸고, 혼자서 1주일동안 단식을 했다. 

날마다 구청에 출근해 일하면서 그냥 사람들 모르게 밥을 먹지 않았다.

함께 살지 않는 사람은 전혀 몰랐을 조용한 단식이었지만, 그건 김주익에 대한 죄책감과 자기 반성을 담아 치른 그만의 뼈아픈 의식이었다. 

 

그의 책에도 나오는 얘기처럼, 겨우 14일 버티는 것도 너무너무 힘들었던 하늘 위의 섬 골리앗의 기억,

200명이 넘게 올라갔어도 너무나 외로웠던 골리앗 싸움을,

혼자서 129일을 버티다 결국 거기서 목을 맨 김주익 때문에,

어떤 일이든 크게 감정표현을 안하는 경상도 사나이인 그도 김주익의 죽음 앞에 정말로 세게 가슴을 쳤다.

알량한 구청장 하느라고 넉달 넘도록 지척인 부산을 한 번도 들여다보지 않은 자신이 용서가 안 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그런 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말을 했다.

"죽음으로 무언가를 얻으려는 시대는 지났다"고.

 

아이들 앞으로 유서를 써 놓고 죽은 김주익. 90년 초 분신정국처럼 그런 노동자들의 죽음이 참여정부 때 연이어 일어났다.그런 남편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두 말 않고 출마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잃을 걸 뻔히 알면서도 때론 그 길을 가야만 하는 사람도 한 명 쯤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 또한 김주익이나 배달호 같은 이름들 앞에 죄 짓기 싫었다.

 

고민은 길지 않았고, 결론도 이유도 명쾌했다. 

 

"노동자 눈에서 피눈물 나게 한 사람들에게 노동자의 이름으로 면죄부 줄 수 없다"

 

그렇게 선거는 시작됐고, 너무 가슴 아픈 한 달을 보냈다.

선거 중반 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울산,진보신당의 선거방해와 흑색선전이 절정으로 치달을 무렵,

방송토론회를 마치고 새벽에 집에 돌아온 남편이 하소연하듯 말했다.

 

"97년이고, 2002년, 2007년 대선 때 민주노동당이 후보 낼 때마다 접어라, 단일화해라 그렇게 했어도, 그 땐 적어도 미안해 하면서 그런 말을 했는데, 이젠 아예 대놓고 조롱을 해. 노동자한테 똑바로 하라는 얘기가 이렇게 조롱거리가 될 일인가? 정치도 사람도 다 변하는데 그런 걸 부여잡고 있다고 조롱을 해. 그것도 민주당이 아닌 민주노동당이나 민주노총이 그런 짓을 해..참..!"

 

그래 니 뜻은 알지만, 이번엔 아니다, 미안하다 그런 정도만 되었어도...최상이었다.

존경은 못 받을지라도, 적어도 존중은 받길 원했는데 그건 애당초 헛된 꿈이었다.

 

그렇게 선거는 끝났다. 당선되지 못했고, 세련된 논리도 없었지만, 노동자들의 고통을 기억하고, 동지들의 죽음 앞에 떳떳하고자 하는 그 마음이 나는 너무나 곱고 바르다고 생각했다.

그게 노동자의 마음이다. 

 

그  마음이 조롱 당하고, 욕 먹었던 선거 기간 내내 마음 속으로 많이 울었다. 

나보다 더 힘든 남편 앞에서 내색할 수 없어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정말 많이 울었다.   

 

 

민주노총 울산본부가 독자 출마를 이유로 민주노총 지도위원 자리를 박탈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을 듣고, 꼭 이 말을 하고 싶었다.

 

누가 김주익 앞에 떳떳하느냐고, 나는 민주당보다 김주익이 훨씬 소중하다고,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구청장 한 석보다, 나는 노동자의 그 마음이 더 소중하다고. 

 

민주노총 정말 그러는 거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