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 당원가입
   
 

하하, 요새 이 양반 글이 젤 재밌네요.
당대회 하루 전입니다. 심경이 복잡합니다
담쟁이

강상구 대변인이 요새 진보신당의 파국을 막으려고 '진보신당 하나로'를 외치며 단식을 하고 있다. 자리 깔고 앉은 건 아니고 그냥 할 일은 다 한다. 

단식 둘째 날, 저녁에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갔는데 굶으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운전은 당협 사무국장이 대신 했단다. 아이가 차를 타더니 엉엉 울며 "아빠, 굶어 죽지 마. 그냥 밥 먹어"  "다시 밥 먹게 되면 더 튼튼해질 거니까 걱정 마" 라고 대답했단다.

단식 셋째 날, 일기를 볼까요? "아파트 다른 건물에 불이 나서 소방차 들어오는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아이가 넋 나간 듯이 창문으로 구경하더니 다시 방에 들어옵니다. 식탁에 올려놓은 오미자차 자기도 달라고 합니다. 아빠가 밥 대신 먹는 거라고 했는데도 계속 달라고 합니다. 줬습니다. 벼룩의 간을 뺏기는 기분입니다."

하하, 요새 이 양반 글이 젤 재밌네요. 옮깁니다.

http://www.newjinbo.org/xe/1516367       2011.06.25 13:09:23 

 


-----------------------------------------------------------------

 

당 대회 하루 전입니다. 심경이 복잡합니다.

 

그냥 제 심경입니다.

글이 너무 길어서 싫으실 것 같습니다.

 
 

 
진보정당 운동 10년 평가. 그리고 촛불집회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2009년 3월에 우리는 두 번의 당 대회를 했었습니다. 그 첫 당대회에서 우리는 진보정당 운동 10년을 평가하고 혁신의 과제를 채택했었습니다. 우리가 그때 확인했던 것은 딱 6가지 분야에 대한 그 동안 활동의 문제점과 과제였습니다. 첫 번째는 분당과정이 진보정당 운동에 끼친 영향과 과제, 두 번째는 노동정치의 평가와 과제, 세 번째는 지역정치활동의 평가와 과제, 네 번째는 당의 민주적 운영 및 당원 참여와 관련한 평가와 과제, 다섯 번째는 의회활동에 대한 평가와 과제,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는 진보정당의 정책에 대한 평가와 과제였습니다.

 
저는 이 날 당대회 이후로 이제는 절대 뒤돌아보지 말고 저 여섯 가지 분야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단 한 가지라도 제대로 성과를 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아마 많은 동지들이 저와 같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2008년 총선에서 우리는 원내 진출에 실패했습니다. 그때 저는 진보신당 국회의원이 한 명도 안 나왔다는 것이 슬펐지만 그것 때문에 주눅 들지는 않았었습니다. 뒤이어진 몇 달 간의 촛불집회에서 진보신당은 민주노동당과 우리가 무엇이 다른 지를 보여줬습니다. 밤마다 네이버 검색순위 1, 2위를 다투던 ‘진보신당’과 ‘칼라 TV'는 우리의 자부심이었습니다.

 
청와대 길목에서 시민들이 물대포를 맞는 걸 보고 중앙당에 있던 진보신당 마크가 선명하게 새겨진 하얀티를 바로 가져다주었다던 당시 김득의 살림실장의 자랑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당게시판에서 어떤 당원이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이 연행되는 걸 보면서 변호사라도 소개시켜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글을 쓴 걸 보고 ‘촛불집회 지원 변호인단’을 꾸리자고 제안한 건 저였습니다. 그때 당 게시판은 아이디어의 보고였습니다.

 
중앙당의 최은희 대협실장은 밤마다 병원과 경찰서를 다니면서 연행된 시민들을 만나고 위로하고 지원 방안을 찾았습니다. 인터넷에 변호사로 잘 못 알려지는 바람에 신석호 동지는 끝없이 걸려오는 상담전화를 받고 설명을 하느라 나중에는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었습니다. 조동진 동지는 원래 집에 잘 안 가고 일만 하는 스타일인데 외국 자료를 분석하고 정부 발표의 허점을 찾는데 집중해서 경향 신문 1면 톱 기사로 진보신당 이름이 걸리게 했었습니다. 일 하는 게 즐거웠습니다.

 
 
구로 당협 10년의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2009년, 앞서 말씀 드렸던 진보정치 10년 평가 보고서가 나온 이후로 저는 정말 이대로만 하면 되겠다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구로당협 일을 시작했습니다. 당협일을 시작하고 나니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선배, 동료들이 진즉 다 해봤던 이 어려운 일을 늦깎이로 경험해야 했던 저는 그러나 이제야 운동하는 맛이 났습니다.

 
구로당협 10년 발전 계획을 세웠습니다. 분당할 때 얼어 죽을 각오로 나와서 10년은 박박 길 생각을 했었습니다. 소선거구제 하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이기기 위해서 10년 정도의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그걸 차근차근 그리고 절대 지치지 않고 해나가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계획은 대단히 구체적이었습니다. 구로 주민 42만, 선거구별로는 대략 20만, 그 가운데 유권자 비율과 투표율 등을 감안하면 대략 국회의원 당선을 위해 얻어야 할 표는 4만 정도로 계산하고, 앞으로 10년 동안 선거구 두 개로 이뤄진 구로 전체에서 8만 명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8만 명을 우리 편으로 만든다는 것은 좌파적 풀뿌리 운동을 통해 지역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자유총연맹, 새마을운동부녀회 같은 조직에서부터 각종 동창회, 한나라당 민주당 지역 조직뿐만 아니라 교회, 성당, 조기 축구회, 등산회 등 지역에 뿌리박힌 모임이나 조직은 거의 다 우익 조직이었습니다. 모임의 주인이 터줏대감 처럼 자리하고 있어서 우리가 외부에서 들어가는 것이 성과가 있기도 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무슨 큰 변화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민중의 집 건설 계획을 10년 계획의 핵심으로 세웠습니다. 앞으로 10년 동안 민중의 집을 구로에만 5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람들이 아마 저 인간 미쳤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지만 이 정도 계획이 아니면 10년 간 지역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사이 있는 선거에서는 지방의원 등을 2010년엔 1명, 2014년엔 2~3명 하는 식으로 당선시키겠다고 계획을 세웠습니다. 이럴려면 활동가들을 체계적으로 키우는 계획도 필요 했습니다. 공부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구로당협 활동가들과 목요일은 무조건 세미나 하는 날로 잡았습니다.

 
 
사업은 즐거웠습니다

 

계획을 세우고 났더니 돈이 문제였습니다. 시당으로부터 사업비 명목으로 쓸 수 있는 돈은 40만원 정도였습니다. 이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한 달 사업비가 500만 원도 안 되는 중앙당 사정을 잘 아는 저로서는 당 탓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주변 사람을 하나 둘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원도 한 명 한 명 만났습니다. 10년 계획을 설명하고 당비를 더 내주실 것을 부탁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사람을 충분히 만나지도 못했고, 엄청난 돈을 걷지도 못했지만 우리는 당협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기반을 마련했습니다.

 
2009년 9월을 지나면서 신종플루가 유행했습니다. 저는 구로 고대병원이 신종플루 의심 환자들에게 무조건 특진비를 받는다는 심재옥 당시 공동위원장의 말씀을 듣고 병원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당협의 활동가들은 병원 앞에서 특진비 폐지 서명운동을 벌였습니다. 고대구로병원 뿐만 아니라 서울시내 다른 병원들에서도 더 이상 특진비를 받지 않겠다는 선언이 나왔습니다. 특진비를 미리 낸 분들에게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해 특진비를 환급 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많은 분들의 상담전화와 격려 전화를 받았었습니다. 주민과 조금씩 만나고 있다는 느낌에 아침 저녁으로 피곤한 줄도 모르고 선전전을 했습니다.

 
구로 지역 금속노조, 민주노총 활동가들과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쌍용자동차 정비지회가 구로에 있어서 해고자들이 아침 출근투쟁을 하는 걸 보고 어느 날 그냥 쌍차 앞으로 나갔습니다. 아는 분이 아무도 안 계셨지만 무작정 인사하고 옆에 서 있겠다고 했습니다. 눈이 수북하게 쌓이고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 피켓을 들고 서 있는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원래 술을 전혀 입에 안대는 저는 쌍차 동지들과 난생처음으로 아침소주를 하기도 했습니다. 선거 한 달 전에 쌍용자동차, 기륭전자, 푸른 기술 후원 주점을 했습니다. 선거 하느라 바쁜데 후원 주점 하는 걸 참아주고 함께 해 준 동지들이 참 고마웠습니다.

 
당협이 꿋꿋하게 활동을 이어 나가자 그 동안 지켜보기만 하던 당원들이 하나씩 둘씩 당협 활동에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우리는 가능한 곳 2군데만 집중해서 후보를 내고 그 가운데 반드시 한 곳은 당선시킨다는 전략을 세웠습니다. 미친 척 하고 돈을 모아 법정선거비용을 꽉 채워서 후보들을 지원했습니다. 홍준호 동지는 당선되고 김희서 동지는 정말 아깝게 낙선했습니다. 낙선한 김희서 동지에게 전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많습니다.

 
 
심상정 후보가 사퇴하던 날 엉엉 울었습니다

 
심상정 후보가 사퇴를 발표하던 날 구로당협의 유영기 선배는 국회로 쫓아갔고, 저와 김희서 동지는 전화통화를 하면서 엉엉 울었습니다. 딱 1시간 침대에 누워 있다가 털고 일어났습니다. 주변 지인들한테 선거 후원금을 200만원 넘게 모아왔던 김영하 선배는 전업 활동가가 아닌 데도 그 판단력과 당에 대한 애정이 놀랍습니다. 이런 분이 우리 당협에 있다는 게 큰 자랑입니다. 홍준호 후보 선거 전략을 총괄기획했던 이호성 선배한테서 선거와 관련해 정말 많은 걸 배웠습니다.

 
2010년 가을 기륭전자가 다시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80여일을 넘게 투쟁을 하고 단식을 하는 동안 세어보진 않았지만 전 적어도 50일 정도를 아침 7시에 기륭전자로 출근했습니다. 처음에 경찰과 포크레인이 농성장에 들이닥친 게 그 시간 즈음이었는데 그 때 이후로 습관이 된 겁니다. 같이 다니던 양동석 사무국장님은 아침밥을 먹을 수 있어서 좋아 했습니다. 전 고집스럽게 이곳에 진보신당의 빨간 잠바를 입고 다녔습니다.

 
경찰이 들어오려 한 날 송경동 시인은 포크레인 위를 지나는 전선을 잡고 몸을 땅 쪽으로 젖혔습니다. 사람들은 절규했고, 저는 경찰 앞으로 가서 악다구니를 써댔습니다. 눈물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륭투쟁 승리 후 저는 아이와 약속한 대로 포크레인 위에 장식되어 있던 커다란 바람개비를 집에 가져왔습니다. 사실, 그 바람개비를 보면 진보신당이 생각났습니다.

 
2011년 당 지역활동의 방향과 관련하여 고민이 무르익었습니다. 그 사이에 구로당협에서 일해보고 싶다면서 황종섭 동지가 찾아왔습니다. 돈 한 푼 안 받고 자원활동하는 황종섭 동지는 보면 볼수록 훌륭합니다. 하던 일 그만 두고 당분간 당협에 있기로 한 박은희 동지는 성실함과 책임감에서 전 세계 아무에게도 뒤지지 않습니다.

 
 
노동정치의 새로운 길, 주민노동자를 조직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울시당 김일웅 동지, 민주노총 서울본부 일반노조 등과 함께 학교급식조리 노동자들을 조직하러 다녔습니다. 당협 의정지원팀장 김선기 동지가 고생이 많았습니다. 학교급식조리노동자들을 만나고 조직하면서 해묵은 고민이 뚫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분들은 지역 곳곳에 산재해 있는 말하자면 중소영세노동자였습니다. 동시에 이 분들은 지역주민이기도 했습니다.

 
같이 모임도 하고, 집회도 하고 그리고 남부교육지원청에 가서 소리도 지르면서 친해지자 한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강 위원장님 선거 안 나가세요? 내가 우리 동네에서 화끈하게 밀어줄라고.”

 
그 동안 진보정당은 지역에 밀착하여 사업을 하긴 했지만 ‘노동’ 의제를 중심에 두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노동사업이란 게 대부분 투쟁사업장 결합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건 지역에 실질적으로 밀착하는 게 아닙니다. 비정규직 혹은 비정규직 보다 못한 정규직의 형태로 존재하는 ‘주민이자 노동자인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정말 많습니다. 이 사람들을 어떻게 만날지에 대해 진보정당은 그 동안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진보정당 10년의 노동정치는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학교급식조리노동자를 만나면서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분들을 ‘주민노동자’라고 부르자고 주변에 제안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까 주민노동자는 정말 많았습니다. 공공부문의 청소노동자, 정화조노동자, 방문간호사, 공중화장실 관리노동자, 주차관리노동자, 도서관 운영 노동자, 보육노동자를 비롯해서 요양보호사, 간병인, 장애인활동보조인 등 사회서비스 노동자, 학교급식조리노동자, 기타 학교비정규직 노동자, 식당노동자, 마트 근무 유통 노동자, 주택가 소규모 공장 노동자, 식당배달노동자, 폐지수집노동자, 선거운동원·인구주택총조사조사원 등 각종 단시간 노동자 등 그 수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이 분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 사업은 노동자 투쟁과 선거운동이 나눠져 있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투쟁사업장 결합하는 데 집중하다가 선거 때 되면 노동자 쪽은 거들떠도 안 보고 갑자기 주민들 만나러 상가를 돌거나 평소에 만나온 주민이 없으면 고작 선전전 혹은 유세나 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투쟁하는 선거 운동을 해야 한다면서 선거 때도 결국은 투쟁사업장 결합에 만족하는 식이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만나는 사람이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주민이기 때문에 정당의 일상사업이 곧 지역노동자를 조직하는 사업이자 지역 주민을 만나는 사업이 되는 것 그래서 이 분들이 선거 때는 우리의 적극적 지지자이자 지역의 선거운동원이 되는 것, 또한 그래서 평소의 노동자 투쟁과 선거운동이 분리되지 않는 것. 이것이 제가 생각한 ‘주민노동자’ 조직 사업의 핵심적인 의미였습니다.

 
 
민중의 집은 주민노동자를 위한 노조사무실이자 생활연대의 공간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민중의 집을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에는 민중의 집의 상을 어떻게 잡아야 하나 고민했지만 주민노동자들을 만나면서 방향이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대공장 노동자들은 바로 옆에 노조 사무실이 있지만, 주민노동자들은 다 몇 명씩 흩어져 일하기 때문에 노조 사무실이 없습니다. 민중의 집은 이러한 주민노동자들의 노조사무실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주민노동자들이 그곳에서 만나기 때문에 꼭 투쟁 때가 아니더라도 자연스럽게 연대가 가능해집니다. 이걸 저는 ‘생활연대’라고 부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쓴 민중의 집 추진위원회 구성 제안서의 부제목은 그래서 ‘비정규직 주민 노동자의 생활연대 구축을 위하여’ 였습니다.

 
주민노동자들은 고용보장이 관심사가 아닙니다. 직장에 대한 애착이 정규직에 비해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문제가 생기면 그만두고 다른 곳으로 옮길 생각을 하지 직장에 끝까지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정규직에 비해 낮습니다. 그리고 직장별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오히려 동네에 살면서 이 직업에서 저 직업으로 떠돌아다니는 경우도 많고, 그래서 최저임금이 곧 자기 임금인 경우가 많습니다. 아무리 투쟁을 해도 ‘기업 복지’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무상의료, 무상교육, 최저임금 같이 진보정당이 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고 노력하기에 따라서는 정치운동의 직접적 이해관계자가 될 가능성이 기업복지가 좋은 정규직 노동조합원에 비해 높습니다.

 
저는 이런 고민을 통해서, 2009년 진보정치 10년의 평가에서 나온 노동정치와 지역정치 활동의 과제를 한 번에 풀 수도 있겠구나 하는 자신이 생겼습니다.

 
이런 가운데 최근에는 방문간호사 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구로에는 방문간호사가 15분이 계십니다. 한 동에 한 명씩인 이 분들은 각자 약 400명씩의 주민들을 방문하여 간호합니다. 요즘 이분들의 정규직화를 위한 노력을 하는 중입니다. 아마 6월말 7월초가 고비가 될 것 같습니다. 당이 요즘처럼 시끄럽지만 않다면 이런 일 쯤이야 쉽게 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분들이 만나는 각 동별 400명의 주민은 이 분들을 매우 신뢰합니다. 만약 일이 잘만 된다면 이 방문 간호사 노동자들은 우리의 선거운동원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노동정치·지역정치·당원의 당 참여·의정활동 혁신의 길이 보입니다.

 
최근에는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더 생겼습니다. 구로에서 참여예산제를 실시하기로 한 겁니다. 원래 올 9월부터 모든 지방자치단체에서 참여예산제를 하기로 되어 있긴 한데, 구로에서 조금 일찍 시작한 겁니다. 구체적으로는 구청에 참여예산위원회가 있고 그 산하에 동별로 지역별 회의가 있습니다. 구로당협은 지역별회의와 참여예산위원회에 약 40명 가량의 당원과 지인을 합류시켰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지역별회의 위원들이 어떻게 하면 주민들을 잘 만날 수 있는지 그 시스템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게 잘 되면, 당협의 지역주민 밀착도는 더 커질 것입니다. 당원의 당 참여는 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동 마다 한두 명씩의 당원이 주민들을 열심히 만나기 위해서 지금까지 보다 더 열심히 뛸 것이고, 이들이 모두 모여 당협의 지방자치위원회를 구성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이들이 민중의 집 활동에 합류하게 되면 지역 비정규직 주민노동자들의 요구가 구청 예산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통로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의정활동 역시 지역주민과 직접 소통하는 게 보다 원활해질 것입니다. 진보정치 10년 평가서가 밝혔던 노동정치의 혁신, 지역정치의 혁신, 당원의 당 참여, 의정활동의 혁신이 동시에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물론 이건 현재까지는 제 머릿 속의 구상일 뿐이지만 못할 것도 없습니다. 지금 당협 구성원들이 헤어지지 않고 함께 움직일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당 대회, 파국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촛불집회 때 중앙당에서 근무했던 김득의 살림실장은 통합파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원래는 3.27당대회 원안이 부결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강경 독자파였습니다. 최은희 당시 대협실장은 강경 통합파입니다. 조동진 동지는 아마도 온건 통합파 같습니다. 신종플루 사업을 촉발했던 심재옥 동지는 온건 독자파인 것 같고, 홍준호 동지는 진보의 합창에 열심인 통합파입니다. 김희서 동지는 독자파였다가 요즘엔 저와 같이 하나로를 외칩니다. 유영기 선배는 진보작당이고, 후원금 200만원을 모아왔던 김영하 선배는 강경 독자파입니다. 이호성 선배는 통합파입니다. 양동석 사무국장은 대세추종파인데 제 눈치를 봐서 하나로로 전향한 것 같습니다. 황종섭 동지, 김선기 동지 모두 하나로파입니다. 박은희 동지는 착한 통합파 같습니다. 서울시당 김일웅 동지는 하나로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독자파이건 통합파이건 저는 이 분들과 지난 3년을 일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독자파/통합파로 나눠져서 모든 게 끝날 수도 있는 상황에 처했습니다.

 
저는 내일 당 대회에서 5.31합의문을 둘러싸고 표 대결을 벌여 당이 파국으로 이어지더라도, 제가 만나는 학교급식조리노동자들에게 ‘3대 세습’이 합의문에 표기되지 않아서 더 이상 사업을 할 수 없게 됐다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당 대회 직후 집중적으로 함께 사업해야 할 방문간호사 노동자들에게 ‘"북의 권력 승계 문제는 국민 정서에서 이해하기 어려우며 비판적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견해를 존중한다’는 말이 애매해서 방문간호사 노동자들의 정규직화 싸움을 더 이상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할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저한테는 합의문의 합의 수준에 대한 논란보다도 이런 문제가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의 과제는 애초에 이런 분야에서 우리가 얼마나 더 성과를 내왔고, 앞으로 낼 계획이 있느냐에 달려 있으며,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역시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없다면 해선 안 되는 것이라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역사적인 당대회를 앞두고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는 이 정도입니다. 어딜 가더라도 동지들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당 대회 하루 전입니다. 그리고 오늘 구로에서는 민중의 집 후원주점을 합니다.

 

작성일 : 2011-06-25 14:18

이 게시물을 ppt파일로 저장하기 이 게시물을 excel파일로 저장하기 이 게시물을 doc파일로 저장하기 이 게시물을 hwp파일로 저장하기 이 게시물을 txt파일로 저장하기

 
목록(전체 2,511건)
번호 제   목 이름 날짜 조회
2511 전원배 동지를 부대표로 추천하며 담쟁이 01-11 1188
2510 <누가 죄인인가?>
     - 투명 페트병 분리배출제도가 눈 감는 사실
사무국 03-05 1888
2509 참여연대 지방선거 핸드북 최종문 07-17 8779
2508 유경종 당원 가는 길에 함께 하여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인사 올립니다
바람 03-26 8770
2507 유경종동지를 떠나보내며 바람 03-26 8866
2506 [새책] 『로지스틱스 ― 전지구적 물류의 치명적 폭력… 갈무리 02-14 9340
2505 당선인사 드립니다.
     강원도당 위원장 당선지 이건수입니다.
담쟁이 01-23 7616
2504 최종문님 고생 했습니다. 김효재 05-13 6716
2503 국회의원 후보 최종문입니다. 최종문 04-15 7227
2502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김용희 01-01 6691
2501 반갑습니다. 당원 여러분, 이건수입니다. 담쟁이 10-13 6504
2500 2015 포항시 청소년 대축제 - 가요 및 퍼포먼스 경연…
     청소년가요제, 초대가수 비스타
청소년가요제 10-06 7181
2499 경주 사진공모전 - 제2회 경주시장배 경주바다 100리 …
     동해바다 및 경주의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알리는 사진공모전입니다
공모전 09-16 6964
2498 유경종당원의 투병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당원님들… 김용희 06-29 6641
2497 원주시 골프장 사업자에게 특혜를 주다. 낮은목소리 06-19 6340
2496 5/28(금)저녁 7시30분 '니가 필요해' @강릉… 알리아 05-14 6148
2495 2차 전국위 강원의 힘 최종문 04-17 6002
2494 [강릉] 4차 빨간장미 캠페인 최종문 04-13 6311
2493 [강원일보]총선 출마 예정자 기사 (노동당 포함) 최종문 04-07 6010
2492 총선 인터뷰 등 최종문 04-05 6151
2491 '수요일엔 빨간장미를' 캠페인 최종문 03-20 6303
2490 건설노조 강원본부 대의원대회 참가(3월20일) 최종문 03-20 6402
2489 영동당협 운영위+총선TF 회의 최종문 03-18 6355
2488 영동당협 세월호 인양 1인시위 진행 최종문 03-18 6348
2487 영동당협 동양시멘트 연대투쟁 최종문 03-18 8974
 
 
 1  2  3  4  5  6  7  8  9  10    
and or
진보신당
투명회계 훔쳐보기
  ♣ 최신글
2024년 강원도당 당직선거 투표 결과 …
강원도당 대의원 후보 소개(박성기)
강원도당 대의원 후보 소개(박민국)
영동당협 위원장 후보 소개(김강호)
원주횡성당협 위원장 후보(이건수)
춘천당협위원장 후보 소개(김덕성)
  ↘ 최신 댓글
↘ 원주시장은 당장 시내버스 완전공… +2
↘ 원주시장은 당장 시내버스 완전공… +2
↘ 서울보다 못한 원주 공기질. 더 … +1
↘ 권성동, 우물쭈물하다가 김진태 … +1
↘ 평창운수 노동자들이야말로 진정… +1
↘ 박근혜 파면으로 행복하십니까? +1
↘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 대통령… +2
↘ 원주시장은 문막 SRF발전소 건립… +1
↘ 2017년 노동당 강원도당 대의원대… +2
↘ 2017년 노동당 강원도당 대의원대… +2
  ♣ 많이 읽은 글
당대회 대의원 후보 소개(남기업)
끝없이 이어지는 춘천 시내버스 공영…
강원도당 대의원 후보 소개(박성기)
2022년 전국 동시당직선거 후보등록 …
강원도당 대의원 후보 소개(박민국)
강원도에서도 산재투쟁단이 출범했습…
영동당협 위원장 후보 소개(김강호)
원주횡성 당협 위원장 후보 소개
원주횡성당협 위원장 후보(이건수)
2022년 최악의 살인기업 1위는 현대건…
춘천당협위원장 후보 소개(김덕성)
태창운수 노동자들이 1인 시위에 나섰…
강원도당 위원장 후보 소개(김강호)
노동당 노동연대상담소, 강원도 100…
중앙당 대의원 후보(안성균)
  즐겨찾기
  전화번호 검색
  사이트내 검색
ꋯ 노동당 소개 | ꋯ 찾아오시는 길 | ꋯ (220-120) 원주시 태장동 1285-5 | ꋯ 홈페이지 http://jinbo21.net | ꋯ 대표메일 : jinbogw@hanmail.net
ꋯ 전화 ☎ 033) 253-3279 (이오셈-서민친구) | ꋯ 팩스 033) 911-3278 | ꋯ 위원장 : 이건수 | ꋯ 계좌 : 농협 351-0418-8946-83 (진보신당 강원도당)
No CopyRight! Just CopyLeft!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노동당 강원도당'의 저작물은 정보공유라이센스 2.0 : 영리금지를 따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