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당이 참여할 데가 아니라는데...
국민참여당이 연석회의의 5.31 합의문을 수용하고 진보통합에 참가하겠다는 입장을 조직적으로 밝혔다. 과거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담겼고(정도의 차이에 대한 논의를 하면 끝도 없겠지만) 유시민대표 본인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라면 대선 불출마도 하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진보신당과 진보교련 등이 조건으로 내건 거의 모든 것을 뛰어넘어 오고 있는 것이다. 5.31합의문은 반신자유주의 정치연합 합의문이다. 이제 '언어'의 수준에서 어떤 옵션을 더 걸어야 한다는 것이 오히려 구차해 보일 것 같다. 나머지는 누구의 말처럼 '실천'의 영역이다.
만약 내가 대중 정치를 하는 입장에 이었다면 국민참여당의 5.31 합의문 수용에 대해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을 것이다. 합의문을 수용한다는 세력에게 문호를닫아 걸 대중적 명분이 있을까?
문제는 진보신당 내부에 있다. 국민참여당에 대한 태도를 분명히 하라는 지난 당대회의 결정은 통합진보정당에 국민참여당은 배제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가지고 민노당과 이후 통합협상을 하라는 것이었다. 즉, 참여당까지 포함된 진보통합 논의는 원천적으로 배제한 것이다. 완전히 외통수에 걸렸다. 민노당을 비롯한 진보정당과 노동, 시민사회, 지식인그룹을 포함한 진보통합을 먼저 이뤄야 한다는 입장에서 참여당이 끼어들면 진보통합 자체가 교란되고 결국 파행으로 흐를 것이기 때문에 참여당을 배제하는 입장을 강하게 얘기할 수밖에 없게 되고, 그것은 대중정치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없이 옹졸한 몽니로 비쳐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진퇴양란의 상황을 헤쳐나갈 방법은 무엇인가?
그 이전에 '국민참여당은 진보통합에서 원천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는가? 이른바 (진보적)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진보정치세력은 연대의 상대일 뿐 정당통합의 상대가 아닌가?' 라는 질문부터 검토해야 한다.
나는 2012년이라는 정치질서 재편기에서 우리의 대응에 따라 그간의 진보정당세력이 새로운 이니시어티브를 갖고 도약할 수도 있고, 아니면 완전히 주변화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진보의 주류화로 활짝 열리고 있는 국면에서 뺄셈의 정치를 하고 있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민참여당까지 포함된 연합정당에 대해서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반신자유주의 정치연합을 폭넓고 힘있게 구축하자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세력에 대한 피해대중의 저항과 대안 요구는 무상급식, 반값등록금으로 분출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참여당은 조직적 반성과 성찰을 거쳐 반신자유주의 정치연합에 참여를 결의했다. "과거 신자유주의에 포섭되었던 자유주의 정치세력을 진보정당이 견인해 신자유주의의 역사적 패퇴를 가속화"해야 하지 않을까?
들째, 진보정당의 성장을 억압해 왔던 보수 양당체제를 무너뜨려야 한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모두 영,호남의 보수적 기득권에 안주한 지역정당체제의 수혜자들이고 보수양당체제를 통해 기득권을 재생산해 왔다. 이는 신자유주의 사회경제 구조를 온존시키는 낡은 정당체제로 민심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한나라당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지지가 정체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제3의 진보개혁적 대안정당을 통해 보수양당체제를 파열시킴으로써 정치가 신자유주의의 기득권세력의 품으로부터 독립하길 원하는 민심을 적극 끌어 안아야 한다. 이는 진보양당만의 통합을 넘어 국민참여당까지 포함하는 진보개혁통합정당일 때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셋째, 정치의 방법으로 대중운동의 한계상황을 돌파해야 한다는 관점에서도 절실하다. 지금 노동운동을 비롯한 조직 대중운동은 침체의 늪에 빠져 있다. 민주노총은 이미 계급 대표성을 상실한 지 오래다. 가까이 일본의 경우 계급적 산별노조 지향하던 총평이 무너진 후 사회당도 급속히 몰락한 전례가 있듯이 남한의 노동운동과 진보정당 또한 일본의 운명을 답습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러나 현재 노동운동 자력으로는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연합정치의 성과로 산별교섭을 법제화 하고 산별협약의 구속력 사회화, 비정규직 사용사유 제한, 파견제 철폐, 동일노동동일임금 법제화한다면 노동운동은 새롭게 일어설 계기를 얻게 될 것이며 제2의 정치세력화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대중적 노동운동과 진보정당이 서로 의존하는 관계라면 연합정치를 가장 적극적으로 구사하는 것, 즉 노동개혁의제를 공유하는 진보개혁연합정당이 제2의 노동자정치세력화의 지렛대라는 것이다.
국민참여당의 정체성은 유시민의 표현에 따르면 '자유주의 좌파'라고 한다. 그들은 민주당으로 통합되지도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 바람직한 지도 의문이다. 진보개혁통합 과정에서 배제되면 독자적으로 비례대표만 내겠다고 한다. 진보정당은 국민참여당과 지지기반이 겹친다. 여론조사를 보면 유권자들이 국민참여당까지 중도 좌의 스탠스로 파악하고 있다. 유시민대표가 얘기하듯 국민참여당은 "기존 진보정당과 민주당 사이의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신생정당은 기존의 모든 정당에게 일정부분 피해를 준다. 참여당 창당으로 진보신당 당원들이 대거 빠져나왔고 민주노동당 역시 외연이 차단되는 영향이 있었다"는 것이 어느 정도 사실에 부합한다고 보는데 선거를 통해 표를 모아야 하는 정당이라면 이 점을 억지로 외면할 수 없다.
유럽과 같은 정당체제, 비례대표제, 내각제라면 정당통합이 아니라도 수준 높은 연합정치가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남한처럼 대통령제 하의 연합정치를 추구하는 입장에서는 연합정당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계급교차협력'을 통해 집권을 경험한 유럽 진보정당의 경험에서 볼 때 연합정치는 필연이며, 남한의 역사적 경험과 정치제도의 특수성, 특히 2012년을 앞둔 야당세력들의 상황을 고려할 때 이 교차협력은 진보적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세력과의 연합정당으로 구현되는 것이 진보좌파의 이니셔티브를 갖고 광장으로 나아가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 '자유주의는 좌파의 이념과 섞일 수 없다'는 논리를 마치 증명이 불필요한 '공리'처럼 단언하는 것이 옳은 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해한 것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 자유주의가 아닌 정치적 자유주의에 관한 한 우리보다 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경험이 앞선 유럽의 경우 민주적 사회주의는 정치적 자유주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정치적 자유주의는 다원적 정당체제를 긍정하고 시민사회의 계급적 균열을 정당정치가 대표해야 한다는 민주적 정당체제를 적극적으로 수용한다. 우리가 프롤레타리아 계급독재, 혹은 전체주의적인 국가사회주의를 이념적 모델로 하고 있다면 모르되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향한다면 자유주의를 배척한다는 건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
솔직히 진보신당이 북한문제와 민주노총으로부터 독립해 분당해 나왔을 때 유권자들은 운동권 동호회 정당을 넘어 국민의 눈높이에서 합리적인 진보적 좌파 정당 정도로 보았던 것 같고, 촛불정국에서는 권위적 조직문화에서 '자유'로운 이미지에 매료되기도 했었던 게 아닐까? 노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친노의 부활이 가시화되면서 지지기반이 겹치는 진보신당의 경우 가장 격렬한 반응을 보였는데 이 과정에서 과거 노사모 활동을 했던 이들 다수가 이탈했다. 진보신당의 풍부한 외연은 생기를 잃어버리고 운동권 PD당으로 퇴락하는 과정이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나는 진보신당이 가장 생기 있었을 때가 바로 그 '자유'를 잔뜩 머금고 있었을 때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이다.
믈론 국민참여당의 지도자들은 과거 참여정부에서 신자유주의 노동배제 정책을 추진했던 자유주의자들이다. 그것은 그들이 어떤 '선한 의도'를 가졌느냐와 무관하게 '결과로 드러난 것'이고 그에 책임을 져야 했다. 따라서 나 또한 이러한 '책임의 윤리'란 관점에서 노무현 정권 내내 그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 과정에서 대북정책을 제외한 거의 모든 사회경제정책에 대해 과도하게 그들을 낙인찍고 사사건건 차별화를 시도했다. 예를 들어 좌파 신자유주의자라는 노무현의 발언에 대해 그 맥락을 잘라버리고 그 모순적 형용만을 공격했다. 시장에 권력이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탄식조차 시장에게 권력을 넘긴 노무현이라고 규탄했다.
노무현정권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실패를 보여주었고, 그 결과 더 과격한 시장근본주의 세력에 의해 정권을 내어주게 되었다. 이명박정권에 의해 상대평가된 노무현정권의 어설픈 복권 시도에 대해 이명박정권은 단지 업그레이드된 노무현의 사회경제정책을 구현할 따름이라고 규정하며 그의 복권은 또다른 퇴행이라고 강경하게 비판했다. 노무현의 죽음과 조문정국에서 우리는 이명박 정권의 극복은 '노무현이 멈춰 선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가는 것'이지 노무현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겠다는 국민참여당이 창당을 저울질 할 때, 이 정치세력이 진보신당의 지지기반과 겹친다는 당혹스런 현실에 직면하면서 나는 이들에 대한 판단을 유보했다. 그들이 노무현이 멈춘 그 자리에서 더 나아간다면 우리와 함께 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선을 그을 것이라는 정도 이외의 발언을 하지 않았다. 그들의 과거를 잊지 않되, 진보정치의 발전을 위해 어떤 관계를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했다.
노무현은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림으로써 '진정성'의 극단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나는 정치에서 '진정성'에 대해 크게 신뢰하지 않는다. 얼마 전 지난 대선 출마가 잘못이었다는 권영길의 회한의 눈물은 진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회한이 더 일찍 찾아왔어야 했다는 지적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니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정동영의 '통절한 반성'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통절한 반성을 강제하는 시대정신이 무엇이며 그 방향으로 정치가 나아가고 있는지가 의미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유시민의 말은 진정일까? 그의 해명을 들어보자.
"신자유주의를 지지한 적도 없고 신자유주의자를 자처한 적도 없다. IMF 이후에 본격화되었던 신자유주의적인 흐름을 극복하지 못했고 일정부분 타협한 점은 인정한다. 비정규직관련 입법이 대표적이다. 실력이 모자라서 상황판단을 잘못했던 지점도 있지만 신자유주의세력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너무하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 참여정부 시절 본격화된 노동유연화에 대해서 노동진영에서는 매우 비판적이다.
= 이겨낼 수 없다고 보고 타협했다. 바닥으로의 질주를 미봉적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안타깝지만 실력이 그만큼밖에 되지 못했다. 거듭 반성한다. 우리의 입장은 참여정부 부채승계론으로 표현한다. 잘못했던 점을 인정하고 반성한다는 것이다.
- 어떻게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지 않겠나.
= 노동중심 복지국가론에 동의한다. 노동시장에 벌어지는 문제 즉, 1차분배나 양극화 비정규화문제를 해결하면 복지부분의 부담도 상당히 완화된다. 노동문제의 해결이 가장 중요한 사회정책적 과제로 대두되었다. 복지의 핵심은 노동이다.
진정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상황을 이렇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지금 국민참여당이 살얼음판을 걷는 '진보통합' 논의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본다. 8웚임시당대회에 진보통합안을 2/3로 통과시켜 보려는 진보신당의 통합파로서는 골치 아픈 복병을 만난 셈이다. 그러나 국민참여당의 존재는 어차피 상수였다. 진보신당에서 국민참여당이라는 복병의 일격에 당황한 듯 지리멸렬한 대변인 논평을 내어놨다. 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밀쳐버리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일까? 이럴 때 우한기씨가 오히려 '5.31합의의 철저한 이행'이라는 정공법으로 대응해야 란다는 제안을 내놓았다. 오히려 그럴듯 하다.
(깊게 생각해 볼 것은 국민참여당이 진보통합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근거로 참여정부 5년간 국민들이 경험한 것이 몇 마디 말로 바꿀 수 없는 것, 즉, 역사적 경험이라는 논리고, 그들과의 통합이 진보정당 주도의 M&A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너무 안이한 갓 아니냐는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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