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고문이 결국 탈당했군요.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통합을 막기 위한 마지막 승부수로 보입니다.
민주노동당의 당권파에 대항하는 세력에게 시그널을 보내는 의미로서의 탈당이기도 하지만
이미 진보의 재구성에 실패한 진보신당은 그가 계획한 진보정치를 펼치기에 적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의 기획과 헌신으로 성장한 진보정치의 역사가 이제 막 한 봉우리 넘어가나 봅니다.
30일 단식으로 비쩍 마른 그의 사진을 보고 그가 남긴 마지막 인사를 보려니
울컥해지는 것을 어찌할 수 없군요.
지금 당의 상황은 참담함, 그것입니다.
진정성 있는 많은 분들이
당을 사수하는 것이 진보정치를 지키는 것이라는 신념으로 좌익맹동주의자들과의 거래까지 불사하며
고군분투하였습니다만 그러나 긴 흐름과 맥락으로 보자면 그 분투가
오히려 진보정치를 망가트리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진보신당을 자기세계의 전부로 생각하고 24시간 당을 위해 헌신하는, 당 게시판을 장악한 당원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치 첫사랑의 홍역을 앓고 있을 때와 같은 헌신과 열정과 몰두의 상태겠지요. 다만 그 열정과 헌신이 지나쳐 순혈적 이념으로 변태되어 자신과 견해가 다른 당원들을 악마화 하며
마녀사냥을 벌이는 지금의 모습은 정말 곤란합니다.
천박한 싸구려 글에 섞여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것은 누구나의 본능일 것입니다만
소수의 용감한 당원들만 오물을 뒤집어쓰고 싸우고 있습니다.
첫사랑의 감정이라는 것이 자신에게는 세계의 전부이겠으나 타인의 눈에는 철없고 어줍잖고
코메디같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진보신당에 관심을 가졌던 국민들의 눈에 지금 진보신당의 모습이 그럴 것입니다.
진보신당 대부분의 당원들은 당 게시판에 자주 출몰하는 당원들처럼 글을 잘 쓰거나 말을 잘하거나
이론이 단단해서 당에 입당한 것이 아닙니다. 고된 일상에 고군분투하면서도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입당했을 것입니다. 힘겨운 노동으로 벌어들인 몫에서 한 부분을 떼어
당비로 납부하고 이런 저런 당 행사에 시간 없고 피곤하여 잘 결합 못하는 것에 미안해하는, 다만
당이 잘 되어 좋은 세상이 조금이라도 앞당겨지기 바라는 소박한 당원이 대부분일 것입니다.
시퍼렇게 날선 이론과 순혈적인 이념을 앞세운 관념적 논쟁에 앞서서, 이런 당원들의 눈높이로
우리의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당원들의 현실적인 처지가
우리의 주체적인 조건이며 이런 당원들이 바라는 미래가 우리의 노선이 되어야합니다.
과잉된 문학적 감수성과 비장함으로 가득한 당 게시판의 글들은 허무하다 못해 절망스럽기까지 합니다.
현실의 구체적인 변화를 파악하고 대처하려는 명민한 글은 보이지 않고 지사적인 허풍과 결기로
상대 정파 때려잡기에 혈안이 된 쓰레기 글이 난무합니다.
과반의 대의원들이 통합에 찬성하였으나 통합이 부결된 이번 대의원 대회의 결과는, 진보신당만으로는
안 된다는 통합의견을 갖고 있으나 통합을 실행할 기회를 놓치게 된 다수의 당원들에게 절망감을
주었습니다. 당대 결과의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한 순혈 독자파의 코메디같은 대처방식은
당의 몰락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눈앞에 와 있음을 예감하게 합니다.
9.4 당대회 결정의 의미는 연석회의에서 만들어진 합의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의미이지
이따위 엉터리 조합의 독자파에게 당권을 넘기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리도 설쳐 대며 당을 분란으로 몰아넣는 당권을 도대체 누가 부여했습니까?
어떤 사물을 설명하는 도중에 "자세히 보시오" 라고 애기하면 눈을 가까이 하여 세밀하게 살펴보는 사람과 반대로 몇 걸음 물러나 사물의 전체를 살피는 사람이 있습니다. 해체와 분석을 통해 사물의 실체에 접근하는 방법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전체 모습을 관찰하여 그 사물이 놓인 주변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파악하지 않는 한, 해체와 분석만을 통해 사물의 전모를 알아낼 수는 없습니다. 요즈음 우리 진영에게 필요했던 것은 몇 걸음 물러나 우리들 스스로를 드려다 보는 성숙한 지혜였을 것이나 이번 당 대회의 선택은 그렇지 않았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당대회의 부결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위력적인 무기를 잃었습니다.
노심조의 정치생명이 국민의 선택을 통해서가 아니라 당 내부 정파들에게 위협당하고 마침내
살해당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노심조를 비롯한 당의 간부들은 그 자신들의 역량과 그들을
지지했던 당원들과 지난 2·30년의 민중운동 역사가 키워왔습니다.
그들은 인격체로 존재하는 진보진영의 역사적 체현들입니다.
그들 개인에 대한 호 불호와 진보진영운동의 역사적 체현으로서의 정치적 인격은 구분되어야합니다.
미숙한 아이들이 휘두르는 비수는 위태롭습니다. 아이의 손에 들려 함부로 휘둘리는 비수는
남을 다치게도 하지만 정작 아이의 생명을 위태롭게 합니다.
그 칼에 이미 노심조가 피를 흘렸고 지금은 아이 자신도 중상을 당한 듯합니다.
우선 당장 이번 전국위원회를 통해서 아이들의 손에 들린 칼부터 빼앗아야겠습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진보정치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우리들만의 순혈적인 원칙을 듣는 이 없는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짖는 것입니까?
아니면 실의에 빠져 세상에 겁먹은 다수 대중의 곁에 서서 그들과 함께 싸우는 것입니까.
이제 좀 더 긴 호흡으로 주변 정세와 우리의 조건을 살펴야 하겠습니다.
민주노동당 당권파와 국민참여당 당권파의 통합 결정이 눈앞에 있습니다.
가결과 부결, 어떤 결과를 낳더라도 진보진영의 재구성은 불가피해 보입니다.
대중조직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양당의 통합이 성사된다면 배타적 지지를 보냈던 대중조직이
분화될 것입니다. 양당의 통합이 불발로 그친다면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의 내홍이 불가피해 보입니다.
대중조직은 각 정당이 치르는 내홍보다 훨씬 더 큰 내홍을 겪겠지만
진보의 재구성은 진행 될 것이고 진보신당과 당원들의 선택지도 실시간으로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연석회의의 결과물인 비국참 진보대통합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작성일 : 2011-09-25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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