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내에서만 550여명 탈당. 당권자 기준 30% 넘어

민주노동당 탈당이 봇물처럼 이뤄지고 있다. 강원도내에서만 550여명이 탈당하여 당권자 기준으로 30%, 전체 당원 기준으로 20%가 훨씬 넘는 당원이 탈당하였다. 초기에는 평당원들의 자발적인 탈당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민주노총으로까지 탈당이 확산되고 있어 추가 탈당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가름하기조차 어렵다. 때문에 민주노동당 잔류파는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민주노동당이 변화하지 못하고 한계가 분명하다고 해서 탈당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정당으로서의 한계가 있다면, 탈당 그 자체보다 탈당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진보의 내용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탈당 이후 과제를 모색하고자 하는 토론회가 준비되었으며, 사뭇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 지난 2월 18일, 탈당 이후 과제를 모색하는 토론회가 춘천에서 진행되었다.

■ 진보의 재구성 : 버릴 것과 만들어 갈 것

발제로 나선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전 정책실장은 진보진영에서 버려야 할 낡은 것과 만들어야 할 새로운 것을 성찰하여 진보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장석준씨는 “책임지는 정치를 위해 과거의 낡은 잔재와의 과감한 단절”을 주문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고 어렵겠지만, 원래 진보세력은 험하게 커야 내구력도 쌓이고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금 민주노동당의 거센 소용돌이는 민주노동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당 뿐만 아니라 전체 진보세력의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봐야 한다. 노조와 시민운동에 비해 정치세력인 민주노동당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이며, 민주노동당에서 촉발된 진보의 재구성은 노조와 시민운동으로 확산될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진보신당의 흐름은 진보를 재구성하는 과정이며,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새로 만들어야 하는지가 중요하다”며, 민주노동당 뿐 아니라 진보의 가치와 내용을 중심으로 한 전체 진보진영의 재구성이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다.


“스탈린주의의 변형인 주체사상의 낡은 잔재를 걷어내야”

장석준씨는 진보진영이 버려야 할 것으로 “스탈린주의의 변형인 주체사상의 그림자를 거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1953년에 스탈린이 죽은 이후 1956년 소련 공산당 당대회에서는 스탈린 격하운동이 시작되었고, 서구에서는 스탈린주의 혹은 국가사회주의에 대한 부정으로부터 신좌파가 형성되었다.

이시기 북한에서도 김일성 반대파가 등장하여 개인숭배와 중공업중심 계획경제를 비판하였고, 노조의 자율성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불행히도 북한의 경우 낡은 과거와 단절하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로 끝나고, 김일성 반대파들은 숙청되거나 중국으로 도망가게 된다.

그 후 북한은 주체사상이 지배하게 되었으며, 남한 진보세력 내에도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 것이다. 이제 그 낡은 잔재를 청산해야 하며, 진보의 재구성은 주체사상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뒤늦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며 소위 '1956년 체제'를 극복하지 못한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을 설명하였다.

▲ 장석준 진보정치연구소 전 정책실장이 진보를 재구성해야 함을 설명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일본 사회당처럼 사멸할 가능성이 커...”

장석준씨는 민주노동당이 변화·혁신하지 못하면 일본 사회당처럼 사멸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고 내다 보았다.

“민주노동당은 재정과 대표성을 노조(일본 ‘총평’)에 크게 의존하면서도 노동자 대중에 뿌리 내리지 못한 측면에서 일본 사회당과 유사한 형태”라며, “결과적으로 일본 총평이 흔들리니까 사회당이 단숨에 무너진 것처럼, 민주노동당도 사멸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을 대변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민주노동당은 정규직당으로 이미지화되고 있는 점에서도 일본 사회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보았다.

따라서 새로운 진보정당은 재정 문제 등에서 어려움을 겪더라도 노조의 조직적인 뒷받침 보다도 ‘당 강령에 동의하는 당원에 근거하는 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엘리트주의 탈피하고 생활(민생)·생태 중심의 정당으로”

장석준씨는 진보정당이 갖춰야 할 양대 축으로 ‘생활(민생)’과 ‘생태’를 주문하였다.

‘생활’노선은 지식인 엘리트주의에서 탈피해서 생활인의 관점에서 생활인을 조직하는 것으로 민생중심의 정당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당 생활 자체가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모습을 구현하여야 하며, 이를 위해 당내 민주주의와 토론의 정치를 활성화하고 지방정치에 중심을 두고 지역에서부터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한 환경문제를 넘어서는 공동체의 문제로서 생태는 중요하며, 생활의제를 중심으로 녹색의 관점에서 공동체를 만들어야 함을 주장하였다.


■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으로 합의되는 분위기

진보신당 건설 시기와 관련해서 총선 전 창당이냐 총선 후 창당이냐가 논란이 있는데, 총선 전에 법적으로 창당하여 총선에 대응하고, 총선 후 실질적인 창당을 하자는 방향으로 합의되는 분위기다.

이렇게 된다면 강원도의 경우 창준위 전 단계로 추진위를 구성하고, 3월 초 당원총회 형식으로 도당 창당대회를 진행하면서 지역구 출마자를 선출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판단한다.

총선 이후에는 3개월 이상 전당원 토론을 통하여 당 강령과 혁신적인 조직체계를 논의하고, 외부의 개혁세력을 지속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원 권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이는 민주노총과의 형식적인 관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며, 노회찬·심상정 개인 중심을 극복하고 건강한 교정 및 균형자 역할을 위해서라도 당원권력을 분명히 해야 한다.


“<전진> 해소 의향은?”

한편 이날 토론회에서는 전진과 같은 정파조직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질문과 중앙의 흐름, 바람직한 당 생활에 대한 질문과 토론이 이어졌다.

새로운 진보신당에서는 권역을 획득하기 위한 조직으로 독자적인 지도체계와 재정운영을 갖는 <전진>과 같은 정파조직은 해산하고 개별적으로 입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장석준씨는 “자주파와 평등파의 대립 과정에서 ‘전진’을 비롯한 각 정파들이 자기 정파의 당선자를 만들기 위한 선거조직이 된 점을 반성해야 하며, 선거를 통해서가 아니라 안건의 타당성과 정당성을 가지고 영향을 미치는 의견그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정파나 계파는 생길 수밖에 없는데 이를 실질적으로 금지하기는 어려우며, 정파등록제를 실시하여 정파가 공개적으로 활동하고 주요 회원와 이념, 정책적 내용이 공개되도록 정파의 최소요건을 규정하여 당원들로부터 판단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 탈당자를 방치하지 말고 소통해야”

▲ 미래세대와 함께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탈당 예정자(?)

“새로운 진보정당에 걸맞는 당 생활의 예를 들어달라”는 요구에 대해 장석준씨는 당원의 일상활동을 통해 지역과 부문으로 확장해 가는 것과, 정책당대회를 통해 충분한 당원토론과 일상사업이 필요함을 강조하였다.

그는 또 탈당자를 방치하지 말 것을 당부하였다. “강원도의 상황만 보자면 자발적인 탈당자가 의외로 많고 진보정당의 꿈을 갖고 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유실되지 않게 하려면 개별 탈당자를 방치하지 말고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고 새롭게 진보정당을 시작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부터 시급히 추진해야 한다”며 탈당자와의 소통할 것을 당부하였다.

또한 “기존의 당직자 중심으로 헤쳐 모이는 것은 구태를 답습할 수 있다. 오늘 여기 참석하신 평당원들이 중심이 되어 지역활동을 주도해 나갔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길기수 도당위원장과 김진주 전 도당 위원장이 대표를 하지 않아도 되는 신당이었으면 한다”며 진보신당은 평당원이 중심이 되어 주길 당부하였다.

“평당원 중심? 쉽지 않네...”

토론회 이후 한 참석자는 “평당원이 중심이 되어 기자회견과 토론회를 진행하였지만, 역으로 평당원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점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며, 진보정당으로서의 당원 역할에 대한 중요성과 어려움을 토로하였다.

또다른 참석자는 “몇년 전부터 민주노동당에 대한 답답함이 앞서고 열정이 식어가고 있었는데, 새로운 진보정당을 함께 만들겠다고 결심하면서 민주노동당 창당 초기의 열정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며 열정과 희망을 보였다.

새로운 진보신당에 참여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이유는 다양하다. “진보의 다양성을 수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참여한다”는 사람도 있고, “창당 초기의 열정이 되살아나서 좋다”는 사람,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위해서 얼어 죽을 각오로 참여하겠다”는 의지를 밝히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민주노동당의 탈당과 진보신당의 흐름은 점차 또렷해지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의 오류와 한계를 극복한 제대로 된 진보정당이 될 것인지, 아니면 민주노동당 탈당파의 정당이 될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탈당이 진보정당에 대한 꿈을 접는 것이 아니라면, 민주노동당 내에서 식어가던 진보정치에 대한 열정을 되살릴 수 있다면, 시작은 초라하지만 열정과 희망이 있다면, 꼭 그만큼의 진보를 이룰수 있지 않을까?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에서 사그라진 나의 열정을 되살릴 수 있을까?

작성일 : 2008-02-25 0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