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1주일만 참자’가 통하지 않아..

▲ 요녀석(엄하영)을 키우는게 오늘의 화두다.

시간적으로 좀 지나간 이야기지만 이번에는 아이들의 방학보내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벨기에에 오기 전까지 하영이 생애의 1/3 이상을 어린이집에서 보냈습니다. 저는  아침 9시에 아이를 등원시켜 오후 6시까지는 기본이고 가끔은 야간 보육으로 선생님을 괴롭히고, 엄마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기가 힘들어 사회가 잘 키워주기를 바라는 ‘직장맘’이었습니다.

직장맘들이 힘들어 하는 것 중 하나가 여름·겨울 방학동안 아이들을 직접 돌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양육을 주 업무로 생활해야 하는 전업주부들을 존경하게 되면서 힘든 전업주부의 길보다는 직장생활을 더 선호하게 만들고, 아이를 키우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시간입니다.

그런 제게 하영이의 여름 방학은 어학(불어) 다음으로 가장 큰 숙제입니다. 방학기간도 한국처럼 일주일 정도가 아닌 두달이나 되기에, ‘1주일만 참자’는 한국에서의 자기최면이 통할 수가 없습니다.

벨기에의 여름 방학은 7월 1일부터 8월 31일까지 꼬박 2달간입니다. 지금은 집에서 근무(놀고 있다는 표현이 적합하겠으나 가사 일을 비하하는 듯하여 표현을 수정함)를 하기 때문에 아이와 놀아줄 충분한 시간이 생겼지만 아이양육자로서 아직 미성숙한 저에게는 2달간의 방학은 생각만해도 가슴이 답답해져 올만큼 길고도 걱정스러운 것이었습니다.

하루에 ‘엄마’를 수십번 부르는 아이와, -아마 처녀총각들과 아빠들은 잘 모를 것입니다- 아이가 심심해하는 것은 잘 알면서도 미운 6살 비위맞춰주기 귀찮은 엄마!

어린이집 다닐 때는 1주일만 버티면 됐는데, 이곳의 방학은 8주일이나 되니 장기대책을 잘 세우지 않으면 아이와의 전쟁이 시작될 수밖에 없습니다. 전쟁이 시작되면 아빠 또한 편치 못하기 때문에 엄마에게 협조를 해야만 합니다. 아시죠? 엄마가 기분이 나쁘거나 우울하면 제대로 밥먹기 힘들고 눈칫밥 먹어야 한다는 거...

성적 올리는 사교육은 아니지만, 인종에 따른 빈부차가 드러나

맞벌이 부부들은 방학 1달 전부터 방학 때 아이들을 돌볼 곳을 찾아 사전 계획을 세웁니다. 직장 등으로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이들은 보통 저렴한 비용의 학내 보육(특별한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으나 근무 시간동안 아이들의 안전하게 맡길 수 있음) 프로그램이나 대학이나 단체, 사설 학원 등에서 제공하는 고비용 프로그램을 이용하게 됩니다.

이러한 것을 이곳에서는 ‘스타쥬(stage)’라고 하는데 특별활동, 연수프로그램, 체험활동, 인턴쉽 등으로 이해하시면 됩니다. 스타쥬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어학부터 연극, 댄스, 미술, 수영 등의 스포츠 활동, 박물관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전문가에게 지도받는 것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스타쥬 프로그램의 기간이 보통의 경우 5일 정도 하는데 그 비용이 70~100유로(11만원~17만원 정도) 정도로 고액이기 때문에 단기 특별 과외라고 하는 것이 더 어울릴 듯합니다. 그러나 한국처럼 아이들 성적을 올리기 위해 영어, 수학 같은 교과목을 하지는 않습니다.

저희 집에서는 아이의 어학실력 유지와 제 스트레스 완화를 위해 돈을 쓰기도 결정을 하고 여행 3번, 스타쥬 3번을 시키기로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제 겨우 열 개의 단어로 친구와 놀기를 시작하였는데, 2달간의 방학동안 집에서 쉬면 그나마 외운 열 단어조차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과 걱정스러움에 특별 과외를 시키기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수영을 비롯한 스포츠 활동, 체조와 비슷한 댄스 스타쥬, 연극 스타쥬를 했습니다. 하영이네 학교에서도 보육 스타쥬를 하였으나 하영이의 강력한 부인(당시 불어사용으로 학교에 대한 스트레스가 있을 때였습니다)으로 인해 대학과 단체에서 하는 스타쥬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스타쥬는 유학생의 입장에서는 사교육의 하나로 보이지만 벨기에 사람들에게는 연말 소득에서 교육비로 공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공교육의 연장선으로 이해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영이를 스타쥬를 보내면서 눈에 띄는 것은 공교육장에서는 많이 볼 수 있는 아랍권 아이들과 아프리카 아이들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 대신에 아이들을 돌보아 주면서 색다른 경험을 하게 하는 스타쥬는 비싼 댓가를 치러야 하기 때문인지 90%이상이 백인아이들이었습니다. 방학 때 체험하는 사교육 현장에서는 인종에 따른 빈부의 차이가 표면적으로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아이들 등하교를 위해 아빠들이 함께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근무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위해 스타쥬 현장에서 함께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연극 스타쥬에서는 마지막 날 1주일 동안 했던 연극을 무대에 올려 부모님들께 선보이는 것이었는데, 오후 4-5시임에도 불구하고 부모님들 대부분이 참여하여 아이들의 활동에 박수를 보내는 것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타쥬나 학교 행사 등 아이들 교육을 위한 시간을 회사에서 충분히 배려해주기 때문에 벨기에에서는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들 또한 아이들 보육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친구가 없어...

하영이네 학교는 저희 집과 거리가 좀 떨어져 있어서 (근처에도 학교가 많이 있지만, 한국으로 돌아갔을 때 이왕이면 아이 교육에 더 실질적인 어학을 위해 선택하다 보니...) 집 근처에는 학교 친구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제가 같이 놀아주지 않으면 혼자서 놀거나 DVD를 보게 됩니다.

한국에서도 장난감이 많이 있지는 않았지만, 지금 집에 있는 하영이 장난감은 인형 몇 개, 블록, 자석놀이, 화살  몇 개가 전부입니다. 대신 판매용이 아닌 돌, 나뭇가지, 조개껍질, 종이로 만든 이것저것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습니다. 제가 어릴 적 시골 아이들이 놀던 것처럼 곤충을 잡거나 흙을 가지고 놀거나 장난감이 없으면 길거리에 널린 돌멩이를 가지고 시장놀이도 하고, 식당놀이도 합니다. 봄비가 내린 직전후에는 어김없이 보이는 달팽이를 갖고 와 양상추를 주며 키워보기도 하구요. 우리가 어린 시절 흙, 종이, 깨진 그릇 조각, 솔방울, 막대 등을 가지고 살림놀이도 칼싸움도 옥자놀이도 했던 것처럼 아이도 길에 널려있는 자연물로 놀이감을 만들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너도밤을 주워 와 식당놀이에 음식으로 나오기도 하고 색종이로 접은 케잌과 경단을 팔기도 합니다. 까페놀이에서는 맥주병 뚜껑이 필수입니다. 하영이는 까페 주인이고 저는 손님이 되어 맥주나 커피를 사먹기도 하고, 병뚜껑으로 시음용 와인을 마셔 보기도 합니다. 말린 장미꽃잎과 바닷가에서 주워온 조개껍데기로 얼굴을 그려보기도 하고, A4용지에 그림을 그려 책도 만들기도 합니다. 책을 꺼내 집을 만들기도 하고 테이블을 만들기도 합니다.

저희 시골집에서 식구들이 모이면 가끔 화투를 치는데, 저희가 ‘그림 맞추기’라고 표현하였더니 어느 날은 자기도 그림 맞추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대신 화투 대신에 원카드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산만한 하영이에게는 원카드 놀이가 집중력 훈련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 가끔씩 하곤 합니다. 그러다 제가 식사 준비를 하러 가 혼자 놀게 되면 가끔 쓰린 이야기를 합니다. 정원이와 은진이 언니랑 같이 놀았으면 좋겠다고,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와 같이 놀고 싶다고...

한국 사람들은 모두 반가워

요즘 저희는 안면이 없던 사람이라도 저희 집에 방문하는 한국 사람들은 모두 반갑습니다. 얼마 전 한림대학교 교직원 두 분이 출장차 안트워프에 오셨다가 추석날 함께 식사를 하였습니다. 물론 처음 인사를 나눈 사이이지만 헤어질 때는 얼마나 아쉽던지...

유럽 여행이나 출장차 오시는 분들은 ‘라면’ 몇 개 들고 오거나 ‘김’이나 ‘장아찌류’ 같은 거 갖고 오시면 대 환영입니다. 아니 그냥 여기서 와인 한 병 사 오셔도 환영합니다. 저희 집에 오시면 맛난 삼겹살 대접해 드립니다. 오실 때에는 미리 연락만 주시면 됩니다. 방문 하실 계획이 있으신 분께서는 댓글 달아 주세요.

▲ 슈퍼놀이① - 앞에 보이는 것이 계산대

▲ 슈퍼놀이② 계산대 정면 : 계산놀이를 위한 가짜 돈

▲ 슈퍼놀이③ : 바코드를 찍기 위해 '쌀'을 계산기 앞으로 옮기고 있다. 그 뒤로 '서비스 노동자가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의자'가 보인다.

▲ 식당놀이 - 장미 꽃잎은 김치가 되고, 돌은 떡이 된다.

▲ 까페놀이 - 커피, 맥주, 와인 등을 팔아요

▲ 책으로 만든 '앉은뱅이 책상'에서 그림 그리기

작성일 : 2008-09-24 2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