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보건의료 과제

중대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핵심

   
*한림대학교 보건대학원 보건의료체계론  
수업 레포트로 제출한 내용입니다.

들어가며

  어느 영역이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우리나라 보건의료 역시 많은 문제점과 부족함이 있다.

그러나 같은 영역이라도 어떠한 입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문제점’과 ‘부족함’의 내용과 체감 정도가 달라질 수 밖에 없다.

  지난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 이명박 정부가 의료개혁의 과제 중 하나가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완화’였는데 그들의 시각에서는 “정부가 운영하는 건강보험체제에 모든 민간의료기관이 적용되어야 하는 것은 비효율적”이고 “의료산업화에 역행”하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기에 ‘한국의료의 핵심 문제점’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어떤 외과 개원 의사 입장에서는 ‘의료 행위의 난이도’보다는 ‘환자에게 얼마나 필요한 시술인가’를 중시여기는 건강보험수가 책정으로 인해 어렵고 힘든 수술을 해봤자 몇 푼 안 되는 보상이 지급되는 현실에 불만을 갖고 보험수가의 대폭 인상과 개편이 우리나라 의료의 절박한 과제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대다수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에게 걱정거리 중 하나는 “큰 병 걸리면 치료는 둘째치고 병원비는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일 것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이 나름 좋은 제도이지만 백혈병이라도 걸렸다고 가정한다면 본인부담금만으로도 5천만원 정도 지출은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현금화 자산 5천만원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전 재산이 5천만원이라면? 아니 5천만원도 없다면? 즉 돈과 생명을 바꿔야하는 비참함을 언젠가 겪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두려움을 갖게 한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각종 민영의료보험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의료산업화를 통한 수익확대, 수가체제 개편, 의료인 양성 문제, 10%도 안되는 공공의료기관, 3시간 대기 3분 진료, 지원자 없는 흉부외과 등 수 없이 많은 사안들이 있으나 많은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문제. 중대질환에 대한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가 새 정부가(이전 정부도 마찬가지지만) 선차적으로 해결해야 할 보건의료의 과제라고 판단된다.

우리나라 의료비에 대한 보장성 수준

  <표1-1>

  <표1-2>국민의료비의 재원별 구성

<표1-1>은 OECD 국가들 가운데 의료비의 공적부담 정도를 나타내는 도표이며 <표1-2>는 우리나라 의료기관 총 의료비 중 공적영역(정부/공단부담금)과 민간 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사실 비급여 의료시술과 관련해 신고되지 않은 부분도 다수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엄밀하게 보았을 때 총 의료비는 파악된 수준보다 더 크지 않을까 추측된다.

  보다시피 우리나라는 의료비 중 개인이 감당해야 할 비중이 높은 편이다.

일반 외래진료나 경증 질환 치료시에는 그 부담이 크지 않을 수 있겠으나 진료비가 막대하게 드는 중대질환의 경우 40%가 훌쩍 넘는 본인부담은 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생명과 돈을 바꿀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드는 현실을 제공한다.

  이명박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에 대한 인식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는 말이라도 건강보험으로 모든 의료비를 걱정없이 해결할 수 있도록 보장성을 강화하겠다고 하였고 미진하지만 실천을 조금은 해왔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독특하게도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강화시키겠다는 얘기는 일언반구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정부이다.

지난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정부의 보건의료 공약을 살펴보면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한다던가 국가재정확충을 통해 본인부담금을 낮추겠다던가 하는 내용의 공약은 아예 없다.

오히려 “당연지정제는 그동안 사유재산제도의 침해 등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며 "국민에게 불편함이 없는 방향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고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더불어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민 건강보험은 향후 치료 가능한 질병의 의료비용을 중점적으로 담당하고 그 외의 비용을 담당할 민간 재원을 발굴해 보완적 관계로 발전시킬 계획”이며 “기초보장형 국민건강보험과 더불어 국민들의 선택에 따라 가입하고 있는 민간보험 활성화를 통해 국민들의 의료비용을 함께 담당토록 하고자 한다”고 향후 국정 목표를 설명한다.

(이명박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백서 「성공 그리고 나눔」제1권 138쪽 ‘3-10-2 지속가능한 의료보장체계 구축’ 중. 2008.4.15)

  국민건강보험은 비효율적, 민영의료보험은 효율적?

  이명박 정부는 일명 ‘효율성’을 중시 여긴다.

그러한 측면에서 현재 건강보험은 비효율적이고 경쟁 시스템을 통해 ‘효율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간보험 활성화 역시 향후 예상되는 의료비 지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대통령직 인수위 백서「성공 그리고 나눔」을 통해 밝히고 있다.

  보건의료에 있어 효율성의 기준은 비용 대비 최대 성과일 것이다. 여기서 성과는 국민의 건강 성취 정도라고 생각한다. 즉 국민들이 건강을 유지하는데 혹은 질병이 걸렸을 때 이를 치료하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높은 효과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가 과연 더 효율적일까?

  GDP 대비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의 국민의료비 지출

<표1-3>보건복지부 「OECD 건강지표 2007」

위 <표1-3>은 국가별 국민총생산 대비 국민의료비 비중이다.

OECD 국가 중 영아사망률,평균수명을 비롯한 건강 지표가 하위권이며 의료보험 미가입자가 5천만명이자 의료비로 인한 파산자가 200만명에 이른다고 알려진 미국이 모순되게도 GDP 대비 의료비 지출은 세계 최고이다.

미국은 국가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건강보험제도를 운영하지 않고 민간영역에 맡기는 독특한 국가이다. <표1-1>에서 알 수 있듯 의료비에 대한 공적부담비율도 매우 낮은 편이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지 모르나 민영의료보험이 오히려 비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을 추추측할 수 있다.

  109와 63.3

  109와 63.3은 국민건강보험과 민영의료보험의 2005년 기준보험료 지급률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보험료 지급률은 보험금지급액을‘보험료 수입× 100’의 값에 나눈 것이다.

즉 국민건강보험은 100만원을 보험료로 냈다면 국민 평균 109만원의 의료서비스를 받지만 민영의료보험은 100만원을 보험료로 냈다면 63만 3천원을 의료서비스로 받았다는 얘기다.

물론 건강보험공단의 이윤과 보험회사 기업주의 이윤을 중심으로 보았을 때는 분명 민영의료보험이‘효율적’이다. 그러나 이것은 보건의료 서비스 제공을 기업의 이윤추구인 일반적인 상품 판매와 동일하게 취급할 때 가능한 것이다. 즉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보건의료의 효율성은 ‘국민의 건강’보다는 ‘보험회사의 이윤’을 중시 여긴다는 오해를 충분히 살 만 하다.

2,550원과 49,900원

  2005년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암 치료비로 지불한 비용은 약 1조원이다.

2005년 기준으로 암 환자 전체 치료비(비급여 포함) 중에서 건강보험이 지원해주는 비용이 50% 수준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건강보험 재정에 약 1조원 정도를 추가하면 모든 암 환자 치료비가 보장된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치료비가 부담스러워 암 치료를 포기하는 환자들을 고려하더라도 1조 5천억 정도면 암 환자에 대한 실질적 무상치료가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1조 5천억원을 4,900만인 우리나라 인구로 나누면 연간 30,600원. 한달이면 약 2,550원이다.

비록 단순 계산이지만 평균적으로 1인당 약 2,550원 정도의 건강보험료를 더 내면 암 치료비에 대한 보장이 100%에 이를 수 있다는 결과가 도출된다.

  반면 40세 남성이 민영의료보험 무배당 암보장 상품에 개인적으로 가입하기 위해서는 월 평균 49,900원을 내야한다.(K생명 무배당 암보장 상품, 80세 만기, 일반암 진단 2천만원, 고액암 5천만원 기준)

  건강보험 재정 확대로 보장성 강화해야

  건강보험이 보다 많은 지원을 하고 본인부담금을 줄이려면 건강보험 재정확대로 결론이 귀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건강보험가입자의 부담 증가로 직접 연결되기 때문에 추진에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다.

그 동안 정부는 건강보험요율을 인상해왔다. 이에 발맞춰 1985년 30%였던 국민의료비 중 공공재원 비율은 1990년 36.6%, 2000년 46.8%, 2005년 53%로 확대되어왔다.

2008년 기준으로 소득의 5.08%인 우리나라 건강보험요율은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낮은 편이다. 그러나 보험요율이 낮은 만큼 <표1-1>에서 보듯 보장성 역시 낮은 편이라 온전한 건강보험의 역할을 해오지 못했다.

  본 글에서는 건강보험 재정 확대를 위해 다음의 내용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건강보험요율을 인상한다.

그러나 그 방법은 사업주 및 정부 부담이 우선이다.

더불어 보험료 납부 소득 상한구간을 폐지해 고소득자에 대한 추가 보험료를 징수하는것을 고려할 수 있다.

둘째, 재정 지출의 효율성 및 과잉진료를 적절히 통제하기 위해 현행 행위별수가제를 포괄수가제로 개편하는 노력이다.

  1) 50%를 노동자가 부담해야 한다는 건 고정관념?

  ILO는 노동자들의 의료보험 분담 비율 최고한도를 50%로 규정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보험료의 50%를 내는 것은 국제 기준으로 보았을 때 ‘최소치’인 것이다.

우리나라가 ILO 최소 기준에 맞춰 보험료에 대한 사업주-노동자 분담 비율을 5:5로 하는 것은 법정 최저임금이 78만원이라고 월급을 78만원만 주는 사업주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인다.

  1인당 GDP가 우리나라보다 낮고 건강보험 역사가 짧은 가까운 대만만 하더라도 건강보험에 대한 노동자 분담 비율은 법적으로 30%이다.(정부는 10%, 기업주 60%)

영국같이 조세로 전액 건강보험 운영하는 나라는 차지하고서라도 대표적인 건강보험 체제인 프랑스도 소득의 19.6%인 보험료 중 노동자는 6.8%를 낸다. 노동자 : 사업주/정부 비율이 대략 3.5:6.5 수준이다.

민영의료보험의 나라 미국도 사업주가 평균 70%를 부담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이는 정부의 최소 규정이고 단체교섭 등을 통해 노동자 보험료 분담 비율을 더욱 줄이는 경우도 많다.

  즉 건강보험 재정 확대를 위해 보험요율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사업주 부담 증액과 더불어 다수 국가에서 시행하는 정부의 의무 부담 비율을 설정하여 재정 확대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판단된다. 특히나 건보료 인상으로 직접적인 부담을 느낄 영세자영업자들을 고려해서라도 정부 의무 부담 비율의 입법화는 필수적이다.

  더불어 현행 건강보험소득 상한구간을 폐지해 월 소득 6천만원이나 6억원이나 동일한 보험료를 납부하는 불평등성을 해결해 추가적인 건보재정 확충을 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2) 행위별 수가제 고수는 오히려 비효율적

2008년도 1학기 보건의료체계개론 수업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 진료비 지불방식인 행위별수가제는 포괄수가제, 인두제 등과 비교했을 때 관리 운영비가 가장 많이 소요되는 제도라고 배운 바 있다.

또한 행위별수가제는 의료기관으로 하여금 과잉진료를 통한 수익창출 동기가 작동하므로 국민의료비를 전반적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확률이 높다.

그렇기에 민영의료보험이 지배하는 미국에서조차 병원급 의료기관에서는 주로 포괄수가제를 지불방식으로 채택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며 그 범위도 7가지 외과적 질병군 치료-수정체수술(백내장)·편도선수술·맹장염수술·치질수술·탈장수술·제왕절개수술·자궁수술-에 국한된다.

장기적으로는 총액예산제나 1차 의료기관을 중심으로 한 인두제의 적절한 시행도 필요하겠으나 공공의료기관이 극 소수에 불과하고 의료인 양성조차 사적 영역에 방치되어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전면적인 진료비 지불방식의 개편-특히 1차 의료기관의 인두제 방식 도입-은 ‘자동차도 없는데 교통법규부터 먼저 만드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그러기에 현 시기 중대질환을 중심으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의 포괄수가제를 확대 시행하고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정책 제시가 필요하다.

  맺으며

  사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재원마련 방안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누진적 성격이 강한 조세를 통해 보건의료 재정을 전액 충당하는 영국식 제도(NHS)를 근간으로 한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게 올바르다고 생각하지만 리포트 주제가 ‘현 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보건의료과제’이므로 실현 가능성에 초점을 두고 작성하였다.

그러나 현 정부의 정책 노선을 보았을 때, 그리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를 오히려 반기고 영리병원 도입, 민영의료보험 강화에 적극적인 우리나라 주류 의료 이익 집단(의사협회/병원협회 등)의 주장들을 볼 때 위에서 언급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와 그에 필요한 정책 방향도 자칫 2008년 한국에서는 ‘과대망상’이 아닐까 하는 회의감도 없지는 않다.

  하버드대학교 의학대학원에 재직했던 Howard H. Hiatt가 쓴 「위기의 보건의료」 중 ‘2000년대 의료전달체계’를 보면 Hiatt가 구상한 지역 의료 시스템이 실현되는 웨스트랜드주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지역보건의료기구인 RHC(Regional Health Corporation)의 총괄하에 공공재원과 인두제를 기반으로 의료서비스가 제공되는 환경을 설정하고 이에 따른 구체적인 실행 방안들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이것은 책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 미국에서는 실현되지 못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의 보건의료」에 나온 ‘웨스트랜드주의 2000년 모습’을 우리 현실에 맞게 발전적으로 적용해 시도해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제주도에서부터 영리법인 의료기관의 설립 허용이 시작된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최근 들어 새롭게 시도되는 보건의료영역의 ‘실험’이 ‘국민건강의 효율성’보다는 ‘의료자본의 효율성’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하지만 역대 최다 득표 차이로 당선되었고, 소위 ‘좌파정부에 의해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자신감에 가득찬 상태에서 출발했던 현 정부가 불과 몇 달 만에 쇠고기 수입 문제로 촉발된 대중들의 항의 행동에 변화하고 물러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찌 보면 시장 만능과 효율성 지상주의에 시나브로 물들어 있었던 많은 우리 국민들이 최근 촛불시위를 계기로 이명박 정부의 정책 노선의 전반에 문제의식을 갖고 이를 적극적으로 발언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 것은 희망적이라고 생각된다.

  그러한 관심과 열망이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고 다수 평범한 사람들이 병원비와 생명을 바꾸는 21세기 OECD 국가 「한국의 PARADOX」를 해결하는데 일조하기를 소망한다.

작성일 : 2008-06-25 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