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날짐승들의 비상

  우주나라 지구시 한국동. 사람들은 오늘도 어제와 비슷하게 또 하루를 살아간다. 특별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는 나날이 사람들의 일상을 관통하고 있다. 광화문과 방송사 앞에서 연일 벌어지는 촛불도 아고라의 함성도 조중동의 게거품도 검경과 청와대의 음험한 웃음도 아직은 사람들의 일상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무언가 좋지 않은 빛과 냄새가 뭉게구름이 일어나듯 일어나는 모습이 보인다. 사람들의 일상이 흘러가는 주택가와 빌딩과 거리와 논밭 위 하늘을 덮으며 뭉게뭉게 피어나는 구름은 곧 땅덩어리 전부를 뒤덮을 기세다.

  구름을 가만히 보니 붉은 빛이 너울거린다. 피비린내가 슬그머니 그러나 역겹게 풍겨오기도 한다. 또 빨갱이인가? 저 붉은 구름은 어제 본듯 낯이 익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온 하늘을 뒤덮었던 그 구름이 분명하다. 그러던 것이 아침 저녁 석양으로만 존재하더니 다시 온 하늘로 번져나가고 있다.

  빨갱이! 참으로 낯익은 얼굴이다. 머리엔 피칠을 하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입을 아 벌린 채 붉은 망토를 휘날리며 하늘을 날아다니는 날짐승의 무리. ‘어디 있나’ 지상을 오가는 사람들 중에서 잡아죽일 놈들을 찾아 휘번득이는 붉은 눈들이 백주대낮의 하늘을 수놓는다.

  수상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몸짓을 보이는 사람을 보면 ‘저기 빨갱이 새끼가 지나간다!’ 소리치며 달려들어 일거에 낚아채어 갈기갈기 찢어먹는 빨갱이들의 식사 시간이 다시 시작됐는가? 그동안의 굶주림을 단번에 해결하겠다고 하늘로 날아오른 빨갱이 날짐승들의 습격이 시작됐는가? 세상은 해가 쨍쨍, 푸르디푸른 하늘이건만, 햇살을 가리며 지상을 어둠으로 몰아넣으며 빨갱이 날짐승들이 구름인 듯 뭉게뭉게 날아오른다.

  하늘의 선현이시여!

  사람을 빨갱이라 부르며 살육하며 주린 배를 채우는 저 시뻘건 날짐승들을 어찌하오리까?

  예? ‘배고픈 자에게 몸을 내어주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요?

  아니, 내 목숨이 사라진 후에 복을 받아 무엇하게요?

  예? ‘네 후손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요?

  “나도 후손도 복이 있는 방안은 없습니까?” 

  “그 놈 욕심도 많구나. 그러나 네 말이 틀리지 않구나. 내가 죽고 네가 산다면 그 존재의 허무함을 어찌하리야. 그렇다면 내 일러주노니 날짐승은 피칠갑을 하였다 해도 날짐승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 그러니 불을 지펴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작은 불을 밝혀들고 모인다면 커다란 불덩이가 되리니. 저 붉은 날짐승도 지 죽으려고 불구덩이에 뛰어들지는 못할 것이다. 설사 피의 굶주림에 눈이 뒤집혀 사람을 잡아먹으려 뛰어든다고 해도 불에 타죽기 밖에 더하겠느냐.” 

  “예,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냥 간단하게 선현께서 저 ‘빨갱이 빨갱이’ 외치는 빨갱이들을 한 손에 콱 쥐어서 어디 조용한 곳에 데려다 놓고 저희들끼리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게 해줄 수는 없습니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니라. 저 빨갱이 날짐승들도 원래의 모습은 인간인고로 내 후손의 일부임이 분명하니 어찌 차마 잘라낼 수 있으랴.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니라.”

  “그럼 빵을 줘서 굶주림을 면하게 해주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결국엔 너의 몸을 줘야 할 것이다.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얘기가 기억나지 않더냐. 떡을 다 뺏어먹은 호랑이는 결국 사람까지 잡아먹었지 않느냐.”

  “덧붙여 내려주실 말은 없으십니까?”

  “살고자 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불을 들고 모이면 살 것이요. 살고자 몸을 움츠리면 죽을 것이다.”

▲ 유승도 시인 유승도  1960년 충남 서천의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1995년‘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나의 새’외 9편의 시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시집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차가운 웃음’과  산문집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고향은 있다’를 펴냈으며, 영월에 있는 망경대산 중턱에서 자급자족적인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다.

작성일 : 2008-07-01 0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