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물 좀 얻어 먹겠습니다." 아침 부터 벌초기 소리에 시끄럽더니, 오후가 되자 벌초를 하던 60 대 남자가 물을 찾았다. "날씨가 덥죠?" "네....여름이 다시 온 거 같아요." 남자와 나무 밑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차 번호판을 보니 서울 넘버였다. "벌초하러 고향에 오신 거 예요? 대단하시네요." "죽기 전에 잘 모셔야죠." 그리고, 그의 땅에 대해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6 년 전에 그의 집안 명의로 되어 있던, 군부대가 강제로 깔고 있던, 동해안 최고의 땅을 헐 값에 넘길 수 밖에 없었다고 한탄을 했고, 나는 군바리들 나쁜 놈들이라고 맞장구를 처 주었다. "절벽에 아름드리 향나무가 있어, 제사 때는 그걸 꺽어서 쓰곤 했는데......." "아, 향나무요? 저가 몇 년전에 여기 부대 중대장들과 요기 앞에 정자에 앉아 술을 마시는데, 군바리들이 그 정자를 절벽 향나무를 베어서 만들었다고 하더라구요....." "이런...처 죽일 놈...그게 어떤 나문데....그거 천연기념물로도 손색이 없는데...." 그의 문중의 땅은 동해의 특징인 융기된 리아스식 절벽 위에 있다. 아마, 군부대만 없었다면 그 땅을 사려고 개때처럼 몰려 들었을 것이다. 그 땅의 가장 아름다운 곳을 군부대가 가져갔고, 그 절벽 중간에 있던 아름드리 향나무가 그렇게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노른자위 땅 바로 뒤에 산소가 있다. "아드님....참 착실하더군요..." "아니, 아들이 아닙니다...조카예요...." 대답하는, 그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리고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그의 모습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았다. 2 주 전에도 젊은 부부가 토일 주말 내내 벌초를 했다. 나는 그때, 요즘 보기 힘든 착실한 젊은이들이라고 생각을 했다. 요즘 산에 가 보면, 돌 보지 못해 방치된 산소가 한둘이 아니다. 사실 속으로는 착한 한나라당이라고 비꼬고 있었집만. 나는 현재의 가치와 규범에 대해 아무 의심도 하지 않고 착실하게 따라주는 사람들을 착한 한나라당이라고 표현을 하곤 한다. "여기, 밑에다 호박 좀 심을게요." "네..그러세요. 넝쿨만 산소를 덮지 않으면 되죠." 나는 서둘러 그와 대화하게 된 내 목적을 달성하고 그와 대화를 끝냈다.
저녁에 집 주인 후배와 이야기 하다가 내막을 알게 되었다. 젊은 부부와 60 대 남자는 조카와 작은 아버지 사이. 땅이 팔리면, 문중에서 유일하게 땅에 대해서 결정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란다. 그들은, 벌초를 하면서, 그 땅에 대한 기득권과 명분을 쌓고 있었던 것이다. 한번도 하기 힘든 벌초를 조카와 숙부가 2 주에 걸처서 한다는 것이 그 증거였다. 진작, 추적 날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역시 한나라당은 어쩔 수 없다. 착한 한나라당이란 존재하지 않는 모양이다.
그러나, 그들은 모른다. 진짜 땅주인은 나라는 것을. 나는 그 땅에 가끔씩 올라가 군부대 철조망 사이로 바다를 보았고, 산소 주변에서 들꽃을 뜯어 거실 화병에 꽃아 놓았고, 올 겨울 눈이 많이 내리면 비탈인 이곳에 작은 눈썰매장을 만들어 딸들과 놀아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내년이면, 그들의 땅에, 그들이 베어 놓은 풀들을 퇴비로 삼아 호박을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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