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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운 투쟁] 20년 근무한 당신, 떠나라?

강원지역 유치원 전임강사

이미숙 편집위원 mmlms@hanmail.net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이 넘는 세월동안 내 일이 천직이라며 한눈팔지 않고 묵묵히 현장에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이들이 있다. 어느 날 갑자기 불청객처럼 찾아온 해고만 아니었다면 아마 이들은 비정규직이니 FTA니 시끄러운 세상과 무관하게 더 나은 생활을 꿈꾸며 평범하게 살고 있었을 것이다.


강릉, 삼척, 춘천 등 강원도 전역의 병설 유치원에서 일하던 25명의 전임강사들. 이들의 특별할 것 없는 그 소박한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사건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부당해고 통지였다. 10년 넘게 일해 온 이들의 해고사유는 계약기간 만료. 지난 해 2월 28일에 해고를 당했으니 유치원 아이들을 보지 못한 지도 벌써 1년 6개월을 훌쩍 넘어섰다.


일반적으로 유치원 선생님으로 알려진 그들의 정식 직책은 전임강사다. 그 연유는 이렇다. 정부는 1983년 ‘유아교육 진흥 종합계획’에 의거 공립유치원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유치원 교사가 부족해 초등학교 교사가 겸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교육부는 1986년부터 공립유치원 전임강사를 채용하기 시작했고 이들 25명의 해고자들도 그 이후에 채용이 됐다. 1992년 교육부는 전임강사의 정규교사 전환을 추진했다.


강원도 교육청도 차별대우를 받아온 유치원 전임강사들에게 국가 공무원법을 적용해 처음으로 호봉을 책정했다. 이로써 전임강사도 보수와 근무조건을 보면 실질적으로 정규직과 다름없는 준공무원 지위를 유지하도록 했다. 특히 강원도 교육청은 유치원 전임강사들에게 정규직화 추진을 구두로 약속하는 등 신분상의 불이익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이었다.
전임강사들은 일반 교사들과 마찬가지로 4년마다 학교를 옮겼고 그 때마다 인사담당 장학사가 직접 전화를 하는 등 그 대우가 공무원과 다를 바 없었다. 또한 강원도를 제외한 타 시·도는 교육부의 전임강사 해소와 정규직화 지침에 따라 전임강사들을 정규직화한지 이미 오래였다.



20년 근무 비정규직 취급 억울
“20대 초반 풋풋한 나이의 철없던 교사가 거듭된 현장 경험을 통해 이제 뭔가를 알아가는 나이에 접어들었습니다. 이런 와중에 우리는 어떠한 준비나 예고도 없이 억울하게 일터에서 쫓겨났습니다. 20여 년을 근무한 우리가 비정규직이었다고? 우리가 유아교육을 담당할 자격도 능력도 없는 무능한 자들이었다고? 필요할 땐 강원 교육의 기둥이며 주체라고 하더니 이제 필요 없으니 나가라고?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이 싸움은 잃어버린 우리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김민형(37) 법률국장은 눈물을 글썽이며 답답한 심정을 털어 놓았다.
김 국장은 “우리의 지난 세월이 의미 없이 묻힐 수 없기에 또한 타 시·도에 비춰 봐도 너무나 부당하고 억울하기에 무작정 덤빈 싸움”이라고 했다. 그렇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긴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지노위와 중노위에서는 ‘근로계약 기간의 정함이 단지 형식에 불과하여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에 해당하므로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교육청은 대법원까지 가자며 막무가내로 항소를 했다.
한편 행정법원에서는 ‘전임강사들은 교육 공무원에 준하는 임시직 공무원의 신분이므로 근로기준법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라는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는 ‘교원이 아니므로 심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결정을 내렸다.
어느 기관이 맡느냐에 따라 판결의 잣대도 들쑥날쑥한 형편이다. 이런 상태로 현재는 고등법원에서 재판이 진행중이다. 결과와 무관하게 아마도 대법원까지 가게 될 공산이 크다.


강원도 전역에서 모여 투쟁
이렇듯 길고 긴 싸움을 아이들을 가르치고 엄마 역할만 했던 평범한 여성들이 난생 처음 하자니 어려움도 많았다고 한다. 강원도 교육청은 춘천에 있는데 해고자들은 가깝게는 왕복 2시간부터 멀게는 8시간까지 걸리는 강원도 전역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한번 모이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단다.
그렇게 도교육청 앞에 김장용 비닐 봉투 하나 깔고 농성을 시작했고 생전 처음 단식이라는 것도 해보면서 그동안 한 번도 자각하지 못했던 노동자의 설움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다고 김민형 국장은 전한다.


그 덕에 싸움을 시작할 당시 초보운전자였던 철원의 윤성숙(45)씨는 이제 능숙한 베스트 드라이버가 됐고, 동해의 주성숙(35)씨는 그 사이 건강한 딸아이의 엄마가 되기도 했다. 투쟁 과정에서 18명으로 줄어들기도 했지만 이들은 울며 매달리는 아이를 뒤로 한 채 집을 나서서 떳떳하고 당당한 엄마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540여 일을 달려온 것이다.


김 국장은 싸움을 통해 얻은 가장 소중한 교훈은 “내 일만 열심히 하면서 살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오늘도 설움 속에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비정규직의 삶이 곧 나의 삶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비정규직이 철폐될 때까지 작은 밑거름이 되고 싶다”는 김 국장의 말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가 절절하게 다가온다.


전임강사들을 해고한 그 자리는 신규 채용한 유치원 교사들로 채워졌다. 그들 중 상당수는 무자격자에 비정규직이다. 특히 소규모 시·군 소재 유치원일수록 정도가 심한데 철원 지역의 경우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란다. 이는 자연스럽게 유아 교육의 질 저하로 나타날 것이므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아이들한테 돌아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 폐해를 알기에 남아 있는 강원도 병설 유치원 전임강사 18명은 오늘도 강릉에서, 삼척에서, 동해에서 몇 시간씩 버스를 타고 투쟁에 나서는 힘든 노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그들의 발걸음이 계속되는 한, 그들이 유치원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나들이 갈 날도 멀지 않을 듯하다.

작성일 : 2008-09-09 2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