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있는데, 밖이 시끄럽다. 창문을 열어 보니 집 앞 산소에서 벌초 중이다. 나는 밖으로 나가 벌초 중인 젊은 부부에게 인사를 건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미안합니다. 여기다,....고추 조금 심었어요...."
"괜찮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을 별로 아는 척 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네들의 땅에 집 옥상에서 키우던, 고추를 파다가 심고 있는 죄(?)를 범하고 있기에 어쩔 수 없이 땅 주인에게 이실직고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했다. 다행히 껄끄럽지 않은 사람들이어서 별 문제 없이 지나갔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믄 건실한 사람들이다. 추석 전에 미리와서 뜨거운 태양 볕 아래서 조상들의 묘소를 돌보는 것은 요즘 세상의 젊은 사람들 치고는 괜찮은 사람들이었다. 안경쟁이 남편은 벌초기로 앞서 나가고 뚱뚱한 아내는 힘겨운 몸을 이끌고 낫으로 남편이 미처 치고나가지 못한 잔풀들을 정리하고......보기 좋은 한쌍이었다.
"군 부대...... 언제 나간데요?"
"모르겠어요. 시에서는 개발 계획이 잡혀 있는데.....나가야 나가는거죠."
"부동산업자들이 입질은 안한답니까?"
"요 앞에, 해안 농장 건너 한우 목장을 누가 살려고 했다는데....."
"그래.....얼마 불렀답니까?"
"평당 80이라던가......"
"예?.....그 땅이 몇평인데...."
"아마 2 만평은 될걸요....."
"그럼, 얼마지...와....160억이네....."
나는 실소를 금치 못했다. 요즘 한우 값이 폭락을 해서 그나마 방목을 해서 다른 한우 보다 비싸게 팔 수 있었다던, 목장 주인이 요즘 시름에 젖어 있던 얼굴이 생각이 났다. 그로서는 거래가 성사된다면, 지옥에서 천당으로 올라가는 것이고 축하를 해주어야 겠지만, 왠지 씁쓸했다. 그 양반은 강릉시내에서 집을 팔아 십 여 년 전에 싼 값에 그 땅을 사서 한우를 키워왔다. 아이들 다 키워 외지로 보내고 현재는 부부가 살고 있다. 부부에게는 크게 돈 드는 일이 없으니, 그 보다 낮은 값으로는 거래가 성사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런 꼬라지 보기 싫어서 도망처오다 시피한 이곳에서도 더러운 말을 다시 들은 것 같아 귓구멍이라도 씻고 싶었다.
2층에 사는 집 주인 후배놈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비일을 하면서 별거하는 아내와 두 살림하느라 한달 한달 겨우 살아가는 인간이지만, 부모님이 물려 준 후배의 땅 2천평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평당 돈 백 받으면, 20 억 되니까.....어디 가서 이쁜 여자 데리고 살아야지요."
그 인간의 꿈에 대해서는 뭐라 할 처지도 못 되지만, 그 역시 씁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겨우 서류상으로만 부부 관계를 유지하는 그의 별거 하는 아내도 이 땅을 노리고 있을 지 몰랐다. 후배에게, 땅을 팔 때는 틀림없이 서류 정리하라고 말하려다 입이 씨거워서 그만두었다.
빛 더미에 있는 내 4 층 건물을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고, 그래서 은행 이자 내는 것이 힘들어서 내가 살던 3,4층을 세 놓고 이곳 시골로 이사와 버렸다. 다행히 양쪽 집세의 시세 차가 있길래 밀렸던 빛도 갚고 첫째 딸 학비도 도와줄 수 있었고, 더욱 좋았던 것은 머리 굴리는 세입자들로 부터 자유로와졌고, 그래서 집 주인이라는 나에게 얼토당토 않은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꿈꾸던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그런데, 여기 마저 개발되어 팔린다면, 난 어디로 갈꼬......다시는 지긋지긋한 내 건물에는 들어가기 싫고...더 싫은 것은, 건물 주인이라는 분에 넘친 나의 신분이다.(실속이라도 있으면 그나마 돈 맛으로라도 살텐데, 건물은 껍데기일 뿐이고, 세입자들과 신경전이나 벌이고...)
한우 목장 하시는 분이나, 집 주인 후배놈이나, 벌초 열심히 하는 건실한 부부나, 전부다 이곳이 개발되어 자신들의 미래가 윤택해지길 바랄 것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우리나 부자들의 부자가 되는 지름길이었고, 가장 손 쉬웠던 것이다.
자기 땅 자기가 판다는데, 뭐라 할 것인가. 시에서 관광 개발하여 관광객 유치한다는데 누가 토를 달 것인가.
개발 개발 개발.....과연 이 한반도 좁은 땅덩어리의 개발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다행인 것은, 내가 숨 쉬는 이곳 동해안의 깨끗한 공기는 아직 누구도 건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작성일 : 2008-08-21 0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