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마다 신입생 모집이 한창이다. 교육 현장이 전쟁터 같을수록 대안학교에 쏠리는 관심은 높아만 간다. 느리되 꿋꿋하게 진화 중인 대안학교 현장 보고서.

ⓒ시사IN 백승기 수원칠보산자유학교 학생들이 입학설명회를 겸한 아나바다 장터를 열기 전 교사의 안내사항을 듣고 있다.

국제중 설립 동의안이 가결된 10월31일, 충북 제천의 작은 학교에 초·중등 교사 150여 명이 모였다. 시끌시끌한 요즘 교육계 분위기와는 달리 모임은 평화로웠다. 국제중 이야기가 한 번은 나올 법도 한데, 이들에게는 관심 밖이다. 교사들이 모여 교육을 논하는 자리인데도 불구하고 그 흔한 ‘경쟁’ ‘성적’ ‘수월성’ 따위 단어 한 번 들리지 않는다. 교사들은 서너 덩어리씩 갈라져 ‘조금 다른’ 교육 관련 고민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한다. “(학교 구성원들이) 서로 배려하는데도 왜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자치 규율이 정말 아이들 스스로 만든 규칙일까요?” “교사가 교사답고 학생이 학생다우면 교육이 잘 이루어질까요?” 이번 모임의 명칭은 ‘2008 대안교육 교사한마당’. 일제고사·국제중 등 뜨거운 교육 이슈에서 벗어나, 어찌 보면 한가롭기까지 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까닭은 이들이 모두 대안학교 교사이기 때문이다. 

점수보다 아이들이 직접 기획한 연주회 자랑

‘무한경쟁’이 교육계 제1 슬로건이 된 요즘, 역으로 ‘자유’와 ‘나눔’을 중시하는 대안교육이 다시금 주목된다. 단순히 0교시와 사교육비에 지친 학생과 학부모의 탈출구로서가 아니다. 10여 년간 대안교육 현장은 느리지만 꾸준히 다져졌다. 1990년대 말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한 전일제 대안학교가 이제 130개를 넘어섰다. ‘제도교육을 받지 않아도 건강하고 밝은 사회인을 양성할 수 있다’는 것을 세상에 보여줬다. 명문대와 정서적 행복을 다 잡으려는 학부모의 이중적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한계도 맨얼굴로 드러났다. 그 속에서 대안학교는 점차 진화했다.

가을은 대다수 대안학교가 신입생을 모집하는 계절이다. 서류전형과 면접 등의 과정을 거쳐 학생을 선발한다. 11월1일 비인가 초등 대안학교인 수원칠보산자유학교에서 열린 입학설명회에는 젊은 부부 12쌍이 찾아왔다. 학교는 시험 점수 대신 아이들이 직접 기획한 아나바다 장터와 오카리나 연주로 교육의 성과를 보여줬다. 이한별 교사는 방바닥에 동그랗게 모여앉은 예비 학부모들에게 준비사항을 알려줬다. “선행학습은 필요없어요. 글자와 수를 모르고 들어와도 괜찮아요. 처음 글자의 음을 접하고 거기에서 상상력을 느끼도록 도와줄 거예요.”  

대안학교 경쟁률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는 않았다. 인가형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산청간디학교는 예년과 비슷한 평균 4대1에서 5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수요만큼 공급이 증가한 영향이 크다. 산청간디학교 여태전 교감은 “10년 전 대안학교가 한두 개밖에 없었을 때도 경쟁률이 지금과 비슷했다. 지금 100개가 넘는 대안학교가 생긴 걸 감안하면, 대안교육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라고 말했다. 꽃피는학교 김희동 교장은 “현 정부의 경쟁 교육정책이 본격화되는 내년쯤 대안학교를 찾는 발길이 부쩍 늘어날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시사IN 백승기 장터는 아이들이 스스로 준비하고 진행했다.

변화는 ‘찾아오는 이유’에서 더 크게 나타났다. 올해 이우학교 신입생 전형 면접에 참가한 이광호 함께여는교육연구소 소장은 “예전에는 성적이 낮고 이른바 ‘문제아’라 불리는 학생이 많았는데 요새는 중위권 성적 이상의 학생이 많이 온다”라고 말했다. 기존 학교가 싫지 않아도 대안학교를 찾는다. 학부모 고 아무개씨는 학급 반장까지 맡으며 제도교육에 잘 적응하던 딸에게 “행복을 찾는 교육을 느끼게 해주려고” 비인가 중등학교인 금산자유간디학교를 권했다. 올해 산청간디학교 입학전형에 합격한 ㅇ양은 ‘재밌을 것 같아서’ 대안학교 문을 두드렸다. “학교 안에 있는 도자기·제빵·사진 동아리 모두 체험해보고 싶다. 일반고에 가면 만날 공부만 하겠지만, 여기에 오면 공부를 하면서 꿈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닌 척해도 성적에 집착하니 괴로웠다”

그런가 하면 학부모 윤희영씨(38)는 “아이도 아이지만 나 자신을 위해서도 대안학교를 택했다”라고 말했다. “제도교육 체제 내에서는 아이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가 거의 불가능했다.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직접적으로는 안 하지만 은근히 내 아이가 남보다 점수 잘 받기를 바라는 욕심은 버릴 수가 없었다. 아닌 척해도 결국 성적에 집착하는 내가 괴로웠는데, 대안학교를 보내니 나와 아이 관계가 본질로 돌아온 것 같아 행복하다.” 볍씨학교 강옥희 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단순히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대안교육을 택하는 학부모가 눈에 많이 띈다”라고 말했다.

물론 제도교육에 지쳐 대안교육에 눈을 돌린 이들도 여전히 많다. 한 대안학교 입학설명회에 참가한 학부모 심미경씨(39)는 “학교에서 조금이라도 희망을 볼 수 있다면 이렇게까지 ‘별난’ 선택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딸 둘을 대안학교에 보내는 홍혜경씨(50)는 비 오는 날 학생들이 좁은 현관에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 광경을 보고 기존 학교에 정이 떨어졌다. “현관이 복잡해 아이들이 운동장 흙탕물에서 실내화를 갈아신더라. 그 와중에도 넓은 중앙현관으로는 학생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걸 보고 기성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 아닌 교장과 손님이란 걸 알았다.”

1순위 유학, 2순위 특목고, 3순위 대안학교

대안학교가 모든 이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한다. 특히 아이를 주류에서 빠지지는 않으면서도 교육다운 교육을 받게끔 하려는 일부 학부모의 이중적 욕구가 대안학교를 종종 시험에 들게 한다. 간디학교 설립자 양희규 선생은 교육 계간지 <우리교육>에서 “처음에는 이런 학교를 만들기만 하면 다 좋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좀 행복해지고 나니까 부모들은 이제 공부 좀 시켜달라고 요구하기 시작했다. 대학 입시에 대한 학부모의 욕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나면서 학교가 갈등 국면으로 들어갔다”라고 말했다. 박복선 성미산학교 교장은 “대안학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강남 학부모 사이에서는 ‘1순위 유학, 2순위 특목고, 3순위 (서울대 신입생을 배출한) 대안학교’라는 말도 나돈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시사IN 안희태 성미산학교 중등과정 수업시간. 대안학교에서는 학생 주도의 ‘토론식 수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학비가 비싼 것도 대안학교가 넘어야 할 한계 중 하나이다. 학교마다 편차가 크지만,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인가 대안학교의 경우 입학할 때 내는 기부금·예탁금이 평균 300만~400만원이고 수업료도 다달이 30만원쯤 든다. ‘일반 학교를 다니며 학원 하나쯤 보내는 비용’이라고 하지만 저소득층 자녀에게는 여전히 문턱이 높다.

정부에서 재정 지원을 받을 길이 있기는 하다. ‘대안학교법’이라 불리는 초중등교육법 제60조 3항을 적용받아 정부 인가를 받으면 지원금도 나오고 학력 인정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시행령이 통과된 뒤 인가 신청을 낸 학교는 단 한 곳뿐이다. 인가를 받으려면 40억원 규모의 시설을 갖추고 국민공통 교육과정을 50% 이상 이수하며 교원자격증을 가진 교사를 선발해야 한다. 이치열 사무국장은 “그 기준을 맞추려면 대안학교가 추구하는 교육 가치와 방향을 지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대안학교는 대신 다른 방식의 진화를 모색 중이다.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차등 교육비 제도’를 도입하는 대안학교가 생겨났다. 수원칠보산자유학교 박정근 운영위원장은 “내년 하반기부터 여유가 있는 학부모에게 한 달 수업료 35만원에 더해 원하는 만큼 돈을 더 내도록 독려할 계획이다. 그 돈으로 저소득층 자녀나 새터민 청소년, 다문화가정 어린이도 우리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지원하려고 한다”라고 말했다. 일종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고자 하는 셈이다.

학교를 만들 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가 뒤늦게 고민에 부닥친 졸업생 진로 문제도 새로운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다. 대학 입시 이외의 대안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인다. 대부분 대안 초등학교 6학년생의 수업시간표에는 ‘길찾기 수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전국의 대안·일반 중학교를 탐방하면서 자기가 진학할 학교를 스스로 택하게끔 한다. 대안 고등학교 졸업생이 모여 ‘사회적 기업’을 창출하기도 하고, 대안학교 졸업생이 대안교육학교나 센터에 취업해 또 다른 후배를 키우는 ‘재생산’이 일어나기도 한다. 

대안교육이 성장시킨 ‘교육의 권리’

특히 주목할 만한 진화는 대안교육에 대한 철학 그 자체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초창기 대안교육은 기존 교육체제에서 억눌린 학부모·학생·교사의 권리를 되찾는 데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런데 대안교육이 성장하면서 ‘교육의 권리’에 대한 개념 또한 성숙했다. 모든 아이에게는 자기에게 맞는 배움의 속도, 방식이라는 게 있다. 이에 맞춰 아이가 성장하게끔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대안교육이 아닐까 하는 각성을 하게 된 것이다”라고 성미산학교 박복선 교장은 말했다.

그 예로 박복선 교장은 ‘돌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행복해하는 한 학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전학온 뒤 한 학기는 거의 잠만 자던 학생에게 뭘 잘하느냐고 물어봤더니 사람을 돌보는 걸 좋아한다더라. 몸이 불편한 학교 친구를 돌봐주는 프로젝트를 맞춤형으로 짜줬더니 놀랄 정도로 전문가처럼 수행해냈다.” 그는 수학·언어 등 논리적 사고 재능만 중시할 뿐 남을 돌보는 능력처럼 아이가 타고난 ‘좀 다른’ 재능은 발견하거나 계발하지 못하는 것이 제도교육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이에 반해 대안학교는 아이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이에 걸맞은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하는 데서 새로운 희망과 동력을 찾는다는 것이다

[시사IN] 대안학교 그것이 알고싶다 

대안학교에 대한 정보는 쏟아지지만 정작 대안학교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안학교는 학교 부적응자의 ‘재사회화’ 기관도 아니고 이상주의자의 집합소도 아니다. 대안학교에 대한 오해를 문답 형식으로 풀어봤다.  

ⓒ시사IN 백승기 아나바다 장터를 열기 위해 ‘좌판대’를 준비하는 수원 칠보산자유학교 어린이들.

대안학교 출신 졸업생은 다 대학을 안 가나?
2006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가 펴낸 <대안교육백서>에 따르면 대안 고등학교 졸업생 85%가 대학에 진학했다. 대안학교 특별 전형이 있는 성공회대 등으로 가는 수가 많고, 한국예술종합대학 등 예술대학으로도 상당수 진학한다(42~43쪽 딸린 기사 참조). 이른바 ‘명문대’에 입학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학교들은 자랑으로 내세우진 않는다.

대안학교 학생들은 사교육을 안 받나?
받는다. 정도가 다를 뿐 사교육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특히 수도권의 한 인가 대안학교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대다수 학생이 “사교육을 받는다”라고 답해 교사들이 충격에 빠진 일도 있다고 한다. 이 학교의 경우 입학시 사교육을 받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등 대안학교에서 중등 대안학교로 아이를 올려 보낼 준비를 하는 학부모 홍혜경씨(50)는 얼마 전부터 아이에게 학습지로 수학 연산 능력을 보충해주고 있다. 홍씨는 “입학설명회에 갔더니 그 중학교에는 공립 초등학교 학생도 많이 와서 학습 진도 차이가 좀 날 수 있으니, 혹시 걱정되면 좀 배우고 오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대안학교 입학시 ‘부모 점수’가 중요하다던데?
부모 역할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대안학교 선발 과정은 결코 간단치 않다. 서류전형과 학부모 면담은 기본이고, 아이들을 2박3일 이상 합숙시키며 관찰하는 학교도 여럿 있다. 꼭 경쟁이 치열한 학교가 아니더라도 입학전형을 치르려면 꽤 품을 들여야 한다. 수원칠보산자유학교의 경우 부모와 학생이 함께 칸을 채워야 할 입학원서가 A4용지 11장에 이른다. 부모에게는 “왜 그 직업을 택했는지”부터 “사회를 변화시키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까지 다양하게 묻는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어느 학교나 학생을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산청간디학교 학생 김정한군(19)은 “‘학교가 필요한 아이들’보다는 ‘학교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우선 선발한다고 들었다”라고 말했다.

미인가 대안학교에 보내면 의무교육 위반으로 처벌받지 않나?
현행 초중등교육법에 따르면 취학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부모는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또 학교 설립 인가를 받지 않고 학교 형태로 운영하는 자는 3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하지만 이 법으로 처벌받은 사람은 이제껏 없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치열 대안교육연대 사무국장은 “거의 사문화된 법 조항”이라고 말했다. 이 국장은 “외국에서는 이런 조항들이 ‘다양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침해했다고 위헌 소송에서 다 뒤집혔다. 정부도 이걸 잘 알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대안학교에는 ‘학교 문제’가 없나?
대안학교에도 왕따가 있고 도난 사건이 발생하고 서로 때리며 다투기도 한다. 특히 도시형 대안학교에서는 좁은 공간 때문에 에너지를 못 풀고 답답해하는 학생들이 자주 몸으로 싸운다고 한다. 다만 대안학교는 ‘푸는 과정’이 조금 다르다. 교사가 처벌의 주체로 나서기를 자제하고 학생 전체 모임을 열어 해결책을 찾는다.

작성일 : 2008-11-18 12: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