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장수군 연평리에 위치한 구 연평초교 전경. 박일문 씨가 2002년 임대받아 농촌관광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한해동안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은 2만2천여명에 달한다.

 농촌폐교의 희망찬 부활
"닫힌 교문 활짝 열어라"

현재 원주에 있는 폐교는 14개. 전국적으로는 3천여개에 달한다. 폐교가 증가하면서 폐교활용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폐교가 발생하면 대부분은 매각하지 않고 다른 용도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주에 있는 폐교 대부분은 마을 주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임대해 활용토록 하고 있다.

농어촌 주민들에게 있어 학교는 정신적인 구심체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에 학교가 사라지는 데 대한 주민들의 상실감은 매우 크다. 때문에 학생들이 사라진 학교일지라도 마을의 구심체로 남기를 바라는 주민들을 위해 폐교 활용에 대한 우선권을 주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폐교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방치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마을주민과 소통하다

막연히 청정자연이 있고 세상과 단절된 문화예술활동을 펼칠 수 있는 이상공간을 꿈꾸며 폐교를 찾는 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폐교운영의 실패요인 첫 번째는 백이면 백 주민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실패했기 때문. 제 아무리 내 돈 주고 내가 산 공간일지언정 주민들이 갖고 있는 '내 땅이 있는 곳', '내가 심은 나무 또는 우리 동문이 설치한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곳' 등 '우리 학교'라는 인식의 범주 내에서 이를 인지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폐교 운영자는 생판 모르는 도시인이 우리 마을에 들어와 우리학교를 꿰차고 앉은 침입자일 뿐이다. 법이고 뭐고 시골에서는 '너는 너, 나는 나'라는 개념은 도통 통하질 않는 것이다.

연평초교도 마찬가지였다. 1회 졸업생은 어느덧 75~6세가 됐지만 여전히 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자식들까지 모두 연평초교를 거쳐 간데다 졸업생만 해도 인근 7개 마을 곳곳에 두 눈 뜨고 포진해 있는 것이다.
외부인일 수밖에 없었던 박 대표는 마을 주민들과 소통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먼저 한 집 한 집 찾아가 넉살좋게 밥을 얻어먹으며 마을주민들의 마음을 샀다. 그러면서 그리기 시작한 마을지도도 점차 완성돼 가기 시작했다. 특히 도시민들에게 높은 인기를 보였던 '이장님댁 호박고구마'를 시작으로 마을의 각종 유기농 식품들은 쇼핑몰에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박 대표는 마을과 연계하면 상생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마을주민들과 함께 협의해 나가기 시작했다.

박 대표가 처음 마을에 와 생각했던 것은 '시골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것이었다. 연평리는 장수군 중에서도 더 없는 산골마을로, 대부분이 70대 이상 노인 가구였고 유일한 60대 가구 3곳을 제외하곤 농사짓는 가구도 하나 없어 마을 연수입 이래봐야 300만원도 안될 정도였다.

이런 마을에 뜻하지 않는 수입이 발생하면서 마을주민들도 서서히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농촌체험마을 활성화에 마을주민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면서 이제는 회의가 있을 때마다 아이디어 하나씩은 갖고 올 정도로 열의가 대단하다.

대표 농촌체험마을 부상

박 대표는 농촌체험마을 활성화를 위한 타겟을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중산층 도시민'으로 정하고 하늘내들꽃마을 영농조합을 구성했다. 기획과 마케팅은 박일문씨가 총무직을 맡고 이장님이 마을발전위원회 대표로, 청년회, 부녀회, 노인회, 향우회를 토대로 운영체계를 구축하는 한편 마을발전운영위원회도 발족해 체험프로그램에 대한 의결 및 집행을 담당케 했다.

한 가지 특이할만한 점은 이 조직 내에는 독특한 기용시스템이 있는데, 정부지원금과 마을기금을 보태 월 150만원씩 사무장을 부부로 채용하고 있다. 이들 부부에게는 1년 동안 살 집(전기세 포함)을 제공하고 3년 동안 밭까지 제공해 농사를 지으며 그 수입으로 생활할 수 있게 한 다음 3년 후부터는 지원을 끊어 자연스레 귀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현재까지 5가구가 귀농에 성공했으며 3가구가 정착해서 살고 있다. 

 하늘내들꽃마을 내에 설치된 도농교류센터를 비롯해 할머니 옥수수, 할아버지 경운기체험, 냇가 생태체험, 두부만들기체험 등 구체적 이동경로까지 정해 방문객이 올 때마다 마을주민들과 함께했다. 체험비 1인당 1만5천원~2만원 수익에다 마을주민들은 인건비 일당 3만원에 어느덧 사업동반자가 됐다. 작년만 해도 2만2천여명이 다녀갔으며, 가구당 농촌관광소득 2006년 300만원, 2007년 400만원에 농산물판매(마을공동사업 가공품 포함)로 얻은 매출액은 2006년 1억원, 2007년 2억원으로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평범한 산골마을로 살아갈 마을이 폐교를 잘 활용한 한 귀농인의 노력으로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폐교 활용과 농촌관광에 관심있는 원주 농촌에서도 배울만한 부분이다.

②지역주민 문화놀이터감자꽃스튜디오(평창읍)

본보 990호에 소개한 '하늘내들꽃마을'이 자연체험, 민속체험 등 주5일제 근무에 따른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감자꽃스튜디오는 학교와 지역이 연계되는 문화예술사업을 지향함으로써 지역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특화시킨 사례라 볼 수 있다.

평창군에서 매입해 위탁
평창군 평창읍에서 정선방향으로 10분 정도 떨어진 국도변에 자리잡은 감자꽃스튜디오는 시골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세련된 건물이어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학교건물 골격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앞에서 보여지는 3개면을 리모델링했다고 하는데  언뜻 보기에는 꽤 신경써서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하지만 꼼꼼히 뜯어보면 본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감자꽃스튜디오는 지난 1999년 문을 닫은 평창읍 이곡리 평창초등학교 노산분교를 활용해 만든 문화공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의 중심에 자리 잡은 학교를 강당, 도서관, 박물관, 식당 등으로 활용하고 있다. 2002년부터 개인이 임대해 쓰던 공간을 평창군이 매입하고 강원도가 지원했다.

당시 공연기획자였던 이선철(42) 대표는 1988년부터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함께 10년 동안 일하다 1996년 공연기획사 '폴라미디어'를 설립, 운영했지만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면서 99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전원생활을 하기로 결심하고 폐교를 선택했다.

연간 임대료 500만원, 서울에서 3시간 거리인 노산분교는 당시 평창군청이 적극적으로 매입해 원하는 이에게 위탁을 주고 있었다고. 시공도 군에서 다 해주는 조건이었다.

1년 동안 정착하면서 주민들과도 서서히 친분을 쌓아갔다. 그러다 강원도 관광엑스포에서 공연기획을 담당했던 한 문화기획자가 강원도지사에게 이 대표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강원도지사의 방문과 평창군의 관심으로 폐교가 스튜디오로 재탄생된 것.

화창했던 2005년 5월, 평소 이 대표와 친분이 있었던 가수 이문세, 김창완 등이 기념공연을 하면서 감자꽃스튜디오는 동네의 자랑거리가 됐다.

군수, 이장, 동네어르신들과 가위가 남아 얼떨결에 낀 친구까지도 리본커팅 자리에 조르르 붙어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개관식 사진이 마을의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당시 하나 둘 셋 하면 끊자는 걸 친구가 먼저 끊어 버렸는데 그대로 사진이 박혀버렸다"며 "형식적이지만 우리도 이런 거 한 번 해보자며 마련한 작은 행사도 마을주민들과 함께하는 하나의 이벤트로, 또 추억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다"고 말했다.

동네 아이들, 할머니, 할아버지, 장애우들까지 언제든 찾아와 편히 쉬다가는 '감자꽃'이 지역문화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금 피어나기 시작한 순간이다.
　
우리들의 꿈, 감자꽃스튜디오
'감자꽃스튜디오'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이 대표의 동반자 김상덕(23) 씨가 그 주인공. 정신지체장애인인 마을 청년 김상덕 씨는 감자꽃이 필 무렵 이 대표와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일명 '김상덕프로젝트'를 만들어 평창초·중·고 도움반(장애인) 학생을 대상으로 매주 월·수요일 미술교육과 음악치료를 실시하는 자활프로그램을 기획, 진행했다. 마을 장애청년들의 사회성을 높이기 위해 특수교육을 가르치는 데도 한 몫 하고 있는 셈. 상덕 씨 가족은 모두 정신지체장애인으로, 최근 아이를 하나 더 낳았지만 막내 역시 정신지체장애판정을 받았다. 부모가 모두 같은 장애가 있기 때문. 상덕 씨의 동생 김상민(19) 군도 도움 될 만한 일이 있을 때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평창고등학교 실용음악 동아리 '대일밴드' 학생들은 스튜디오에 마련된 갖가지 고가 장비를 통해 연주와 이론, 녹음과 공연 등 실용음악 전반에 걸친 체험 교육을 배우고 있다.

그런가 하면 평창중학교 학생들은 영상기술교육을 통해 영화감독의 꿈을 키우고 있으며, 사물놀이·가야금·장구·해금·플룻 등을 배울 수 있는 방과 후 교실을 통해 지역 학생들은 문화예술에 대한 체험학습과 미래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는 중이다. 특히 판소리반 민주 군은 스튜디오에 출근도장을 찍으며 손이 부르트도록 연습에 열중이더니 결국 시골에선 드물게 실용음악과를 지원해 대학에 합격, 마을을 떠들썩하게 하기도 했다.

그 밖에도 이주여성과 탈북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문화교육과 원어민교사 영어캠프를 지원하고 있으며, 면온초·대화초·신리초·가평초 등 지역 학교 국악수업에 강사를 파견해 국악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평창군청 여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사물놀이 교육, 미탄지역 아라리 보존 노인들을 위한 실버문화학교, 평창문화원 사물놀이반 교육지원, 공무원 및 선생님, 군장병 동아리팀 교육을 비롯해 여름이면 지역주민들과 외래 방문객들이 함께 어울리는 마을 축제 이곡리 옥수수축제를 열고, 전문예술가들의 도움을 받아 방학을 맞은 관내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문화예술캠프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문화관광부의 농촌 생활친화적 문화공간으로도 선정된 감자꽃스튜디오는 이처럼 지역 주민의 문화와 여가 활동 및 마을 행사에 활용되는 문화공간으로, 또 아동과 청소년, 취약계층 등을 위한 교육공간으로, 지역의 자연과 문화를 소재로 예술 활동을 하는 전문가를 위한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1층 곳곳에 테이블을 설치했다.

폐교운영 3번째, 그가 얻은 노하우
단국대학교 겸임교수이기도 한 이선철 대표는 93년 부여 폐교, 97년 경기도 양평 폐교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로, 그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폐교활용의 실제에 대해 연구도 많이 했다.

이 대표는 현재까지 문화예술 활동을 위해 활용되어 온 폐교는 대개 일부 예술가 등 개인의 자발적 노력만으로 운영되어 왔으며, 이에 대한 지원 역시 상대적으로 프로그램 지원 등에서 소극적인 측면에 한정돼 있다고 지적했다.

폐교운영에 실패하는 이유는 ▷폐교 자원의 관리운영 주체, 활용 주체, 실제 운영을 맡게 되는 기획자나 활동가 또는 예술가의 역할 분담이 모호하고 ▷폐교 활용을 위한 운영요소의 파악 및 운영방안이 개별화돼 있으며 ▷폐교가 지역사회에서 갖는 역할에 대한 구체적 연구 미비 등 정리되지 않은 많은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는 "마케팅과 행정, 돈, 모두 중요하긴 하나 폐교운영에는 무엇보다 그 중심에 '사람'이 있어야한다"며 "무엇을 하느냐 보다는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폐교운영을 거듭하며 느낀 것은 지역소통의 의지가 강해야 한다는 것과 수용자 위주의 사전연구와 전략이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복합적 기능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가 처음 마을에 왔을 때에도 역시 여느 폐교활용사례와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경계가 심했으며, 그는 "무기는 웃음과 진심 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또 폐교는 '학교'라는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아직은 '교육'적 측면에서 접근해야하며, 문화예술을 아무리 강조해도 교육에 대한 관심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미래주역인 아이들의 교육에 성과가 보인다면 주민들은 관심을 갖고 무기력한 일상에 무언가 하고 싶어하는 동기부여가 된다는 것. 그는 이어 순환논리를 설명했다. 민주군을 예로 들며 이러한 아이들이 그 자신처럼 다시 지역에 돌아와 다른 아이들을 교육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이상향이다.

그는 본 연수팀에게 마을인근에 위치한 펜션에서 숙박할 것을 제안했고, 다음 날 점심식사도 마을 식당으로 직접 안내했다. 즉, "문화로 유인해 관광으로 돈 벌자"는 것. 문화가 낼 수 있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결국 그 지역과 협력적인 모델이 됐을 때 경제적 성공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매년 마을을 주제로 한 사진달력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배포하고 있다. 이름이 '스튜디오'라고 해서 아직도 사진관인 줄로만 아는 주민들이지만 '그림'이나 '예술'은 몰라도 달력의 숨은 오자를 찾아낼 정도로 이제는 감자꽃스튜디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으며, 든든한 동반자이기도 하다.

그는 그간 쌓아온 상업적 노하우를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교육'이라는 폐교의 태생적 특성을 문화예술과 접목시켜 학교를 다시금 성공적으로 부활시킨 것이다.

	◇정선아리랑학교는 추억의 공간이다. 복도에 옛 사진과 서적 등을 전시하고 있다.

③ 폐교사업의 모델 정선아리랑학교

정선아리랑학교는 강원도에선 많이 알려진 곳이다. '추억의 박물관'과 함께 정선아리랑을 세계화하는데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 그러나 정선아리랑학교의 성공 뒤에 감춰진 배경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특히 정선아리랑학교는 폐교를 활용한 최초의 사례라 어려움이 많았다.

폐교에 다시 숨을 불어넣은 진용선 소장은 지난 63년 문을 연 이래 30년 만에 폐교된 매화분교를 '정선군 폐교 문화공간화 사업지원계획'에 따라 교육청으로부터 무상으로 임대받아 사용해 왔고, 이는 올해 정선군 소유로 이관됐다. 이곳 정선군 신동읍 함백마을 안경다리 지역은 해방 후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법으로 태백권 탄전 지역 중 기차가 먼저 들어오고, 미국원조처의 지원을 받아 탄전이 개발되는 등 우리나라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었던 무연탄을 생산해 5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영화를 누리던 곳이다.

70년대 인구가 2만7천명이 넘었고, '동네 개도 천 원짜리 지폐를 물고 다닌다'고 할 정도로 풍족함을 누리고 있었다. 함백초등학교는 전교생 2천888명으로 도내에서 세 번째로 큰 학교였지만 90년대 초반부터 폐광이 되면서 낙후지역으로 전락했으며, 현재까지 70년대 광산촌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당시 매화분교(정선군 신동읍 방제1리에 위치)에는 낡은 책상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고 전한다. 심지어 학교 본관에 심은 나무들까지 굴취해 간 상태였다. 남은 것은 당시 교실에 남아있던 시간표 하나. 이는 고스란히 현재 추억의 박물관에 전시돼 있다.

지난 96년 폐교를 임대, 텅 빈 운동장에 제천에서 공수한 5트럭 분량의 마사토를 직접 삽으로 메우기 시작했다. "그게 가능할 줄 알았다"는 그는 그만큼 폐교를 일구겠다는 열정으로 충만해 있었다. 젊었을 적 벌어들인 자금을 톡톡 털어 학교를 일구는데 쏟아 부었다. 대출을 내 6.4km의 수도공사도 진행했다.

당시 IMF로 모두가 힘들었던 시절, 이곳 폐교에는 지원이 전혀 없었다. 96년 폐교를 임대한 이후 2003년까지도 지원이 없었다. 폐교를 처음 얻다보니 군에서도 어떻게 지원해야할지 몰랐던 것.

그러던 중 강원도지사가 선거출마당시 선언한 공약, 즉 폐교활용성공사례 3곳에 대한 지원 사업에 선정돼 천만 원을 지원받았다. 당시 지원금을 신청한 많은 폐교 운영자들은 수천만 원을 적어 올렸지만 정선아리랑학교는 유일하게 천만 원을 올렸다. "욕심을 내자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주인 없는 돈에 대해 '남으면 세이브'라는 대부분의 인식을 그는 달리했다. 진짜 이유는 한가지다. 바로 '폐교는 외관이나 건물이 중요한 게 아니라 프로그램이 중요하다'는 그의 철학이 빚은 결과였던 것이다.

	◇정선아리랑학교. 지난 96년 폐교된 매화분교를 임대해 조성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선아리랑의 세계화
정선에 위치한 매화분교를 활용할 계획을 세우면서 그가 구상한 컨셉은 정선아리랑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함백 출신인 그는 평소 정선아리랑에 대한 애정이 많아 17년 전부터 아리랑 연구와 교육을 위해 힘쓰다 매화분교를 아리랑 전승보존과 교육의 장소로 탈바꿈시킨 것이다.

외국인과 함께 하는 활동으로 아리랑에 대한 자긍심을 깨닫고 아리랑을 통해 우리문화를 알려야겠다는 인식을 고취하기 시작하면서 정선아리랑을 주제로 한 프로그램도 다양해졌다. 계층별, 연령별 프로그램들과 주제별 특성화 교육을 통해 정선아리랑 교육효과를 높이고 있으며, 정선아리랑의 역사적 가치와 보전의 중요성에 대해 시청각 교육, 자료중심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더불어 함께하는 지역주민 문화운동을 전개, 지역 초·중고생들과 주민들이 참여하고 느끼는 다양한 체험학습과 공연 등을 통해 함께하는 장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지명 찾기, 사진전 개최, 근현대사마을 조성, 함백역 복원 등 문화 활동을 통해 지역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애향의식을 고취시키고 있으며, 주민들의 실생활에 도움 되는 계절별 공연 및 강좌도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폐교활용 평가 우수학교(1999), 폐교 문화공간화 사업 모델학교(2000), 환경부 체험학습프로그램 지원학교(2000),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외국인을 위한 한국문화캠프지 선정(1998~2004), 한국관광공사 한국관광대상 수상(2000), 환경부 에코가이드 양성 추진학교 등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폐교를 활용한 문화공간화사업 모델학교로 인정받아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내국인 23만5천명, 외국인 2만7천여명이 다녀갔다.

일본 사이다마현 호소다고교 학생들도 정선아리랑을 배우기 위해 10년째 발길을 이어오고 있으며, 지난 10년 간 4천여명의 학생들이 다녀갔다. 호소다고교와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다른 일본 고등학교의 방문도 잇따르고 있다. 오키나와 쇼카쿠고교가 정선을 방문한 데 이어 오사카고교, 후쿠오카고교도 정선아리랑 배우기에 관심을 쏟고 있다.

지난 93년 여름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아리랑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곳으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고, 3년 후 본격적으로 학교를 꾸리기 시작하면서 많은 참가자들이 공연이나 문화창작활동을 기본으로 다양한 체험을 통해 정선아리랑을 배우고 다양한 문화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정선아리랑에는 시대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는데 때로는 남녀 간의 사랑과 원망, 시집살이의 서러움, 고부간의 갈등, 유희 등 삶의 희노애락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며 "학술적 아리랑의 정립도 중요하지만 대중화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선아리랑학교 진용선 소장.

　
마을사람들과 함께하는 추억의 박물관
특히 아리랑학교 추억의 박물관 개관 3주년 기념으로 지난 달 말까지 열린 '삐라의 추억' 전시회는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nternational Herald Tribune)에 5월 1일자 박스기사로 크게 소개된데 이어 5월 2일자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 A섹션 11면 톱기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2005년 엠파스 선정 가보고 싶은 박물관    3위, 엠파스 랭킹리뷰 1위에 오를 만큼 내국인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박물관을 가득 메운 수많은 전시품들은 모두 그의 손때가 묻은 소지품을 집대성한 것이다.

"모으려는 의지가 있어 모은 게 아니라 쓰던 물건을 쉽게 버리지 못해 남겨진 것이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단순히 남겨진 차원을 넘어 애지중지한 흔적이 역력하다. 자료들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하나 같이 귀한 대접을 받은 티가 난다. 그는 사실 입이 떡 벌어지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화려한 박물관보다는 오래 전 유럽과 일본 등지에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조그마한 박물관을 만드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룬 것이다.

첫 눈에 '맞아 맞아'하며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옛 학용품들과 공책들, '선데이 서울'을 필두로 한 잡지들, 그때 그 시절 담배와 옛 사진들까지 총 1만5천여점의 자료를 소장하고 있다. 벽면마다 빼곡하게 전시한 것으로 모자라 이마저도 전시공간이 부족해 소장한 자료의 1/3도 채 전시가 안 됐다고 하니 그의 집은 창고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올 초에는 '추억의 박물관'이란 명칭에 대해 특허를 획득하기도 했다. 그는 마을과 상생하는 법을 그다운 발상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함백의 아무 상점에서 군것질 값인 이천 원 정도의 물건을 사면 가게에서는 박물관 입장권을 준다. 다름 아닌 동글동글 '딱지'다. 박물관이 지역과 함께 공존해야 한다는 그의 의지가 기막힌 아이디어로 재생산된 것이다. 마을의 4~6학년을 대상으로 매년 45명을   1년 동안 교육하는 등 문화예술교육을 꾸준히 실시했다. 우리 동네 명소를 아이들이 직접 선정해 마련한 사진전을 개최하면서 뜨거운 호응을 얻기도 했다.
　
자신의 미래는 자신의 몫
박물관은 작은 교실 두 칸과 복도가 전부지만, 그는 "폐교활용에 있어 더도 덜도 말고 교실 두 칸이 딱 맞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도대체가 욕심 없는 모습에 무얼 먹고 살지가 궁금해졌다. "젊었을 적엔 통역사로 일했고 그걸로 모자라 토플시간강사까지 뛰면서 돈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살아왔다"며 "죽도록 돈을 벌어도 싸매고 갈게 아닌 이상 그럭저럭 살아가는 게 좋지 않나 싶다"는 그다. 당시 폐교활용성공에 대한 선례가 없다보니 숨이 꼴딱꼴딱 넘어갈 때마다 재산을 처분하기도, 대출을 받기도 했다. 아직도 이어지는 토플강사료는 한 푼도 안 쓰고 저축하고 있다.

그는 "폐교사업에 단지 열정만 갖고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금새 지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만만한 게 아니란 얘기다. 농촌에 살다보니 쌀을 비롯해 각종 농산물이 생산돼 생활비가 안 들고 도시에서의 후원자도 많아 옷 걱정도 없다. 좋은 옷은 아니지만 서울의 한 옷 공장에서는 인연이 닿아 재고 난 옷들을 트럭으로 가져오기도 한다고.

그런데 폐교운영에 있어 베테랑이라 자부하는 그도 5년 단위로 슬럼프에 빠진다. 중요한 건 개인의 미래가 없다는 점이다. "부푼 꿈을 안고 폐교사업을 벌여도 주변 환경은 여전히 개인적인 희생만을 강요하는 게 현실이다"며 "돈에 집착하다 보면 결국 폐교를 포기하고 생업에 매달릴 수 밖에 없게 된다"고 조언했다.  

	◇품절된 옛 담배를 수집해 전시하고 있다.

④지자체의 활용밀양연극촌·미리벌박물관

	◇미리벌박물관.

현재까지 소개한 폐교 활용사례들은 개인의 노력이나 투자가 성공으로 이끈 경우였다. 희생까지 감수하는 열정과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영을 지속할지, 말지를 고민하는 수 많은 폐교운영자들이 있다. 지금껏 소개한 사례는 그 숲에서 그나마 '성공'이란 결과를 도출했기 때문에 주목받을 수 있었으나 그들은 여전히 풍요 속 빈곤을 겪고 있다. 프로그램 기획에서부터 재정문제까지 운영자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번에 소개할 사례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폐교활용에 관심을 갖고 적극적인 지원과 정책을 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특히 폐교운영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하는 문제는 지자체와의 충돌. 때문에 대부분의 폐교운영자들은 지자체와의 관계설정이 부정적이라는 데에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례가 성공한 것은 지자체의 관여가 운영자들 고유의 의지와 운영방향에 개입하기 보단 모든 폐교운영자들의 숙제인 경제적 문제만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담당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연극단, 밀양에 오다

밀양시 부북면 가산리에 위치한 월산초등학교를 활용한 밀양연극촌은 99년 10월 개관한데 이어 2000년 봄 주말극장을 개관해 연 40~50회 공연, 회당 평균 200여명의 관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밀양 사례는 그 운영주체가 자생력이 있다는 점이다. 지자체는 그 운영에 있어 전혀 관여하지 않고 있으며, 다만 예산 지원이나 축제 개최 등 기획회의 때 홍보파트 부분에서의 역할과 방식만 논의할 뿐이다.

성공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두 번째는 가장 강력한 상주요인이 있다는 것. 밀양연극촌의 구성원인 연희단거리패는 66년 부산에서 창단돼 소극장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극단으로 성장하기 시작해 68년부터 서울 공연을 단행, 서울국제연극제 작품상, 연출상, 무대미술상, 신인연기상 등을 휩쓸면서 인지도를 올렸고, 90년부터는 해외 공연도 시작해 베를린, 일본, 프랑스 등에서 독자적 메소드를 공증받기도 했다. 이처럼 고정 레퍼토리를 확보하고 있어 언제든지 국내·외 공연이 가능한 연희단거리패가 연고도 없는 작은 도시에 하나 둘 모인 것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이윤택 예술감독에 의해 주도되는 연희단거리패는 60여 명의 프로 단원들로 구성돼 서울과 부산의 12평 남짓되는 연습실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이 겪은 가장 큰 고민은 역시 재정문제였다. 소위 굶어죽기 딱 좋다는 예술인으로서 이를 충당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작품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해 오던 중 밀양시에서 제의가 들어온 것이다.

밀양은 문화예술도시로 정평이 나 있으며, 실제 연극인 등 예술가들이 여럿 상주하고 있는 곳이기도 했다. 그들은 선뜻 모험을 해보기로 했다. 모든 예술인들이 서울로 서울로 이동하는 판에 거꾸로 지방의 작은 도시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금문제 해결을 위한 것만은 아니었다. 시장이 넓은 서울에서 멀어지면 도태되지 않을까 우려도 있었지만 그들이 최종적으로 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위치의 중요성' 보다는 '연극의 질적인 중요성'이 훨씬 크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최영 기획실장은 "예술창작촌들이 지역에서 활동하다 실패하는 경우도 많고, 그 중심과 활동영역이 점점 약화되는 경우가 흔한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은 연극의 질적 향상에서 온다"고 말했다. 또 "고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할 공연의 질이 떨어지면 언제라도 문을 닫아야 한다"고 말했다.

밀양연극촌이 이처럼 실력으로 인정받으면서 반대로 서울 등 대도시의 연극인들이 밀양을 찾고 있으며, 또 밀양연극촌은 이곳에서 아이디어를 짜고 연습한 작품을 들고 반대로 서울로 올라가 공연을 펼친다. 그리고 2, 3년에 한 번씩 서울의 유명대회에 참가, 상을 싹쓸이한다. 그리고 그 수익금을 벌어서 돌아오는 것이다. 가장 이상적인 성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연극 소재 및 아이디어 기획 시 넓은 시장에서의 그것보다 어떻게 소도시에서의 창작물이 더 나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최영 기획실장은 "시장이 넓을 지언 정 부수적인 문제들을 신경 안 쓰고 연습에만 몰두한 우리의 앙상블과 에너지는 따라올 수 없다"고 말했다.

밀양연극촌 사람들은 생계걱정이 없는 것이다. 시에서 연습실, 공연예산, 기숙사 등 지원을 아끼지 않기 때문에 현재 모든 구성원들은 이곳에서 먹고 자고 생활하고 있으며, 전원이 밀양시로 전입해 심지어 가족단위로 둥지를 틀고 있다. 결혼한 구성원에게는 약 12평 규모의 집까지 지원해주기 때문. 연극촌 뒷마당에는 이들 숙소가 조성돼 있다.

또 밀양시는 지난 해 살기 좋은 지역 만들기 사업에 선정돼 밀양연극촌을 중심으로 한 복합테마마을을 조성하고 있다.

　
밀양의 자랑, 연극촌과 미리벌박물관

밀양시는 폐교의 효율적 관리를 통해 지역주민의 문화, 건강, 생활이 더욱 윤택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밀양연극촌의 경우 주요추진사업으로 밀양여름공연예술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젊은 연극인들이 전국에서 모여 기량을 겨루는 행사다. 이 대회에서 입상하면 서울 대회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도 주어진다.

또 작년 연말에는 동아연극상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상은 보통 연극 원로들에게 주는 상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상 최초로 지자체인 밀양시에 수여한 것이다.

이렇게 밀양의 문화예술이 널리 알려지면서 해당 마을 주민들은 개인적으로 물질적인 이득이 돌아오는 건 없지만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특히 어르신들은 마을에 젊은이들이 상주하고 있는 것만도 좋아한다. 또 축제나 공연 시 지역민들에게는 50%의 할인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밀양시 문화관광과 박옥희 담당은 "지역컨텐츠를 통해 지역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게 모든 지자체의 목표고 또 경제유발효과를 굳이 따지라면 계산할 수는 있겠지만 밀양의 경우 문화적으로 다분히 추상적이라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며 "밀양연극촌의 존재 자체를 시민들은 자랑으로 여기고 있으며, 특히 다른 대도시보다 삶의 질이 나은 도시라는 시민들의 자부심이 크다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동면 범평리의 범평초등학교를 활용한 미리벌민속박물관 역시 밀양시의 대표 관광지로 부상했다. "우리의 전통 민속품들이 사라져가는 것이 아쉬워 하나 둘씩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 어언 30년이 넘었다"는 성재정 관장은 지난 70년부터 민속품을 수집하기 시작해 남성 공간인 사랑방과 여성공간인 안방을 채우고 있던 가구들, 또 그 시대 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주방가구, 그 밖에 다양한 장신구와 서화 등 총 3천여점의 유물을 전시, 무상임대로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03년에는 문화부장관 표창장을 수상했으며, 2002년부터 현재까지 경상남도 문화유산해설사 양성교육 강의와 함께 대학 특강도 하는 등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지역사회에서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테마를 선정해 매년 특별기획전도 개최하고 있다. 복권기금을 지원받아 목가구 특별전, 고문서로 본 옛 삶의 흔적 등을 주제로 전시회를 열었으며, 민속자료 전시 뿐 아니라 어린이들을 중심으로 한 도자기 만들기를 비롯해 전통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각종 사회교육프로그램도 수행하고 있다.

밀양시는 문을 닫은 4개 폐교를 매입해 문화예술 인프라로 활용하고 있다. 초기 교육청과 5년간 무상임대 조건으로 합의, 운영하기 시작했으며, 시민을 위한 예술프로그램과 이를 위한 재정 및 행정지원을 담당함으로써 전문예술인 유치를 통한 지역문화예술부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엄용수 밀양시장은 "밀양을 프랑스 아비뇽과 같은 세계적인 연극도시로 만들어 나간다"고 할 만큼 대단한 관심과 애정을 쏟고 있다. 지자체에서 문화적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 범평초교를 활용한 미리벌민속박물관에는 장신구와 서화 등 3천여점의 유물이 전시돼 있다

작성일 : 2008-07-23 10: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