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른 곳은 봄 날씨라는데 사진을 찍는 카메라의 손이 장갑을 끼었는데도 덜덜 떨렸다. 서해바다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체감온도가 뚝 떨어졌다. 날씨가 추울 때는 12만 킬로와트의 전기가 송전탑을 흐를 때마다 전선줄을 따라 윙~ 윙~ 전기 흐르는 소리가 송전탑 밑에 있는 천막농성장에서도 들렸다고 한다.  영하 10도 정도만 되도 “이젠 봄 날씨네” 라고 웃으며 천막에 들어올 정도로 다른 곳보다 기온이 뚝 떨어지는 곳. 거기에 송전탑이 있었고 그 중간에 천막이 위태롭게 걸쳐 있었다. 송전탑을 타고 찬바람이 밑에서 불어 올라오면 천막 바닥 밑판이 들썩거려서 하루에 3-4시간밖에 잠을 못자는 곳. 그곳에서 한상준, 문기수, 복기성 세 분이 버티고 있었다. 동상 걸린 발, 어깨통증으로 들 수도 없는 왼 쪽팔, 그리고 허리 통증. 각각의 지병을 끓어않은 채 흔들리는 천막 바닥에서 버틴 시간이 111일. 멀리서 올려다만 보는데도 코끝이 찡해져서 말문이 막혔다.

‘이들은 남이다. 이들이 머나먼 평택 땅 끄트머리에서 엄동설한에 천막농성을 하는 것이 이곳 춘천에서 살아가는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이들이 공장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내 삶에 무슨 이득이 있는가.’ 어쩌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택역 앞 천막농성장을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들과 나는 다르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생각의 다름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는 모양새는, 몸뚱아리가 가는 길은 하나도 다르지 않으면서...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데도 하나도 고통스럽지 않다는 것이 오늘은 아프다.

사이코패스들의 공통점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둔감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 기준으로 연쇄살인범들의 일부를 그렇게 규정하는 것을 TV에서 본적이 있다. 하지만, 그 둔감함이란 면에서 우리는 그들과 얼마나 먼 것일까. 함께 간 설희씨는 뒷풀이 때, 박정희 시대에 침묵했던 국민들을 빗대어 ‘그때는 우리 모두가 괴물이었다’고 말하는 글을 본적이 있다고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나는, 이 시대의 우리들이야말로 어쩌면 모두가 괴물을 닮아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박정희 때보다 훨씬 더 자유로워졌다고 느끼지만, 실상 그 자유란 것의 실체는 무엇인가. 소비의 자유 말고 쾌락의 자유 말고 자폐적으로 자기 안에서만 머무는 자유 말고. 자유란 허락되는 것이 아니라 쓰여지는 것이라 할 때 정말 우리는 이웃의 고통에 다가갈 자유를 얼마나 쓰고 있는가. 거리를 무심히 걷는 사람들을 볼 때, 내 자신이 저 거리의 한 사람임을 느낄 때, 이렇게 둔감한 자유의 무게에 가슴이 짓눌릴 때, 나는 괴물과 괴물이 아닌 사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괴물인지 모르는 자와 그것을 의식하는 자로 겨우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누구도 이 괴물 같은 무통증 사회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 분들의 고통이 다가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나는 겨우 내 안에 작은 숨구멍이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2 

울고 싶어도 울 수 없게 만든 당신.

울고 싶지 않은데 자꾸 울게 만드는 당신.

부모님께서 걱정하실까 봐 눈물을 참아요.

애들이 기죽을까 봐 씩씩하게 견뎌요.

당신이 안타까워 눈물이 나요.

우리 딸이 태어나 처음으로 수술을 했네요.

그나마 다행히도 맹장.

속으론 겁나고 무섭고

그래도 혹시나 당신이 달려 나올까 봐

나, 당신에게 힘들다 말 못하네요.

내가 지치면 당신은 갈등할 테고,

부모님은 걱정하실 테고,

애들이 불안해할 것이기에

나, 당신이 웃으며 올 때까지

건강히 돌아올 그때까지

내가 힘이 되어줄께요.

나, 힘든 거 그때까지 참고 또 참아요.

나, 고맙죠?

대신 당신 나오는 날

나, 소주 맘껏 먹을 거예요~~ .

- 쌍용자동차가족대책위 이야기 [연두색 여름] 중에서, 이미경님의 글

춘천으로 돌아오는 차 안. 함께 갔던 아내와, 설희씨와, 덕성형님, 모두들 찬바람에 오래 떨어서인지 곤히들 자고 있고 난 역 앞의 천막 농성장에서 받아온 [연두색 여름]의 한 꼭지 글을 읽다가 그만 책을 덮고 말았다. 남편은 그 전쟁 같았던 쌍용자동차 파업진압 현장을 무사히 빠져나와 아내에게 돌아갈수 있었을까. 마음이 먹먹해져왔다. 여기서 끝나서는 안된다. 이렇게 끝나서는 안된다. 이 싸움도. 평택을 찾아갔던 우리의 여정도.  하루하루 야금야금 생명을 갉아먹고 있을 송전탑의 어마어마한 전자파 밑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을 그 이들의 싸움을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은, 온전히 탑 아래 있는 내 몫이다. 그 이들에게 다가가는 이 길은 어쩌면 이제야 시작되었다.  버스 유리창에 어리는 세 분들의 모습을 보며 난 이런 다짐들을 해봤다. 언젠가 날씨 좋은 봄날에, 그 세분이 함께 춘천으로 찾아와 박물관에 가서 나한상도 보고 민물낚시도 같이하자는 오늘의 약속. 그 약속이 꼭 이루어지게 하고싶다는 꿈. 세상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 그이들에게도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추신> 추운 날씨에 그렇게 바람이 불 줄 모르고 얇은 옷들을 입고 왔다가 덜덜 떨었던 설희씨, 머뭇거리다가도 막상 마이크를 잡고는 어쩜 그렇게 얘기를 잘 하는지.^^ 그리고 함께 해주신 것으로 너무나 든든했던 덕성형님,  사정이 있어서 못가지만 그 분들에게 전해 달라며 송금을 해 오신 용삼형님. 그리고 늘 내 옆에서 내 손을 놓지 않는 사랑하는 아내. 혼자라면 못 왔을 이 길을 이 분들이 있어서 올수 있었다. 모두들 너무너무 고생하셨어요~ . 

작성일 : 2013-03-12 1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