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의 종언

정태인(경제평론가, 전 대통령 국민경제비서관)


손톱 밑의 고통이 온 몸을 뒤틀리게 만들 듯, 세계는 뒤흔들리고 있다. 삶에 초연한 사람들조차 한 조각 뒤안터가 어찌 될지 돌아보게 만들며 수백억을 굴리는 사람들은 생애 최악의 위기(그가 진정한 타짜라면 동시에 기회)를 감지할 것이다.

다름 아닌 스티글리츠가 ‘신자유주의의 종언’을 선언했고, 그 누구보다 이 사태를 정밀하게 예견한 루비니는 지금은 서브프라임 사건이 아닌 ‘서브프라임 체제의 위기’, 즉 현 금융시스템의 위기에 빠져 있는 것이라고 선승처럼 갈했다.

그래서 어디로 간다는 것인가? 무리한 대출로 겨우 안락처를 얻은 서민부터 각광을 받았던 ‘자산관리 플래너’까지 패닉에 빠지기는 마찬가지다. 결론부터 말하자. 신자유주의는 종언을 고했다. 확실한 건 그 다음을 모른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답을 찾기까지 오랜 고통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명백한 사실이다.

우선 시스템은 붕괴했다. 시장이 모든 걸 해결하리라는 시장만능을 몸에 새겨 놓은 폴슨 미 재무부장관이 투자은행의 CEO 팔을 비틀어 금융기관 국유화를 관철시킨 것이야말로 그 상징이다.

희생된 효율은 어떻게 할 것인가? 신자유주의자들이 이번에 인정한 건 긴급상황일 뿐이다. 월스트리트의 연금술사들은 골드만삭스의 인수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긴급 상황에서 왜 가장 효율적이라는 시장은 작동하지 않는가?

우리가 교통신호등을 보고 거리를 건너는 이유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완전경쟁과 완전정보의 세계라면 사거리의 신호등부터 없애야 할 것이 아닌가? 전쟁이 일어날 때 왜 우리는 국가의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일까?

그러나 반성은 여기까지다. 자유의 천국에 이미 도달한 금융시장을 어디까지 규제할 수 있을 것인가. 경제학자라면 그 실효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는, 그 간명한 토빈세마저 정말 온 나라가 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포스트 브레튼우즈를 논한다면 그 핵심일 수 밖에 없는, 현재의 기괴한 달러 본위체제를 어떻게 바로 잡을 것인가? 기껏해야 아메리카-유로-아시아의 복합 통화 바스켓 체제일텐데 그마저 과연 가능할까?

언제나 그렇듯 진정한 문제는 기술적 대안보다 ‘법보다 가까운 주먹’의 위력에 있다. 가장 긴 장기를 눈에 담고 있는 역사학자라면 ‘기나긴 16세기’의 네델란드를 대체한 영국이나. 세계대전을 거치고 나서야 영국을 대체한 미국 다음의 헤게모니 국가가 어느 나라일 것인가에 관해서 지극히 회의적일 것이다. 모두 중국을 떠올리겠지만 과연 그럴 준비가 돼 있을까? 미국 외교정책의 첫 번째를 차지하는 대 중국 포위 전략과 현재의 위기를 오바마라고 어떻게 짜맞출까?


오히려 분명한 건 단기적인 미국의 해법이다. 80년대 중반에 그랬듯 플라자협정 같은 것(그 핵심은 달러 헤게모니를 인정하고 미국보다 더 낮은 금리를 설정해 각국이 투기붐을 일으키는 것이다)을 맺거나 미일반도체 협정 같은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것이 현실인 것은 이미 한미 FTA가 쇠고기를 해결한 후 남아 있는 한미자동차협정(한국시장의 10%를 미국 자동차로 채워라)을 관철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신자유주의는 종언을 고했지만 그 다음은 모른다는 것이다. 역사가 보여 주듯 오랜 혼돈의 시기가 이어질 것이다. 소득재분배를 해법으로 내세운 케인즈가 지금은 안 보인다. 자산의 재분배 이론을 들고 나올 경제학자가 이 지구 상엔 보이지 않는다. 둘째, 미국, 아니 월스트리트가 아직 덜 망해서 자신의 패권을 스스로 넘겨 줄 수 없다.  “패권 이양만이 살 길”이라는 판단을 할 정도로 위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셋째 국제 권력 다툼에서도 미국을 대체할 나라는 보이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을 예언할 만큼 끔찍한, 또는 쿨한 상상력을 나는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만 내 삶의 마지막 기간이 끝없는 환율전쟁, 금리 전쟁으로 채워지는 광경은 너무나 뚜렷하다. 그리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힘없는 사람들이 고통에 시달리고 심지어 파시즘을 선택할 가능성까지도 엿보인다. 이미 이명박씨를 대통령으로 선택한 사람들이 위기 속에서 그 무엇을 못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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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대구 당원들과의 술자리를 나름대로 최대한 자제하고 쓴 글입니다.  실릴 곳이 꽤 보수적인 곳이라 어울리지 않게 자제하는 표현이 느껴질 겁니다. 그래서 대안은? 하고 물으신다면 진보신당이라고 답하겠습니다. 시간 날 때마다 제 생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앞으로 2년 정도가 우리 민중의 앞날을 결정할 겁니다. 이 판단만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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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지리  
제가 청와대 들어갈 때 결정의 기준은 확실했습니다. 뭐가 옳은지는 누구나 안다. 다만 자기의 계급적 위치 때문에 하지 못하는 일이 쌓이고 쌓여 있다. 그걸 하면 된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실패했습니다.

위 글은 뭐가 옳은지 아무도 모른다는 반성(!)입니다. 그러나 민중의 편에 사는 것이 결국 옳을 것이고 정당이라면 그걸 실천에 옮겨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걸 지금 하면 3년 내에 정권을 잡을지도 모릅니다. 아무도 안 믿기에 결국 못 잡을테지만^^ 아무 희망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왼쪽과의 타협이 살 길인양,아무도 신경 안 쓰는 프로그램에만 신경쓰는(그래서 바쁘기만 하지 아무 것도 못하는) 진보신당이 뭘 할 수 있을까? 이 세계사적 시기에....

내 조그만 실천은 예컨대 칼라티비에 후원금을 내는 것?^^
2008-10-23 12:39:35

작성일 : 2008-10-26 1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