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은 나만의 시간이다. 가족들은 늦잠을 자고, 나는 아버지를 닮은 타고난 습관으로 일찍 일어난다. 잠자는 가족들을 깨우기 싫어서, 글을 쓰거나, 웹 검색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러다가 나는 담배를 피우기 위해 옥상으로 올라간다.

옥상 역시, 나만의 공간이다. 담배 냄새 난다는 집안 여자들의 등살에, 꿀맛 같은 화장실 담배마저 피우지 못하고, 쫓겨난 공간이 옥상이다. 집에 있으면서, 컴퓨터로 작업을 하거나, 글을 쓰거나, 책을 읽는 시간 이외에는 거의 옥상에 올라가 있다.

옥상에서 내가 하는 짓이 몇 가지가 있다. 물론, 담배야 당연히 피우는 것이고, 창피스런 이야기지만, 나는 옥상에서 오줌을 싼다. (이 글에서 내가 옥상에서 오줌을 싸야만 이유가 밝혀진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은, 내가 만들어 놓은 작은 텃밭을 관리하는 일이다. 텃밭이라고 이름 붙이기도 어색한 아주 작은 공간에서, 요즘, 나는 5 월의 새싹들을 관찰한다. 그리고 잡초들을 뽑기도 한다. 가뭄이 심한 날이 이어지면, 물도 준다. 그러다가 동네방네 주위를 휘휘 살펴보고는 바지춤을 내려 오줌을 싸기도 한다.

옥상의 텃밭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10 년 전, 돈 때문에 집안을 온통 뒤집어 놓은 다음, 나는 어찌어찌 해서 사기 비슷한 일을 저지르다시피 해서 지금 살고 있는 이 건물을 지었다. 건물을 짓고, 돈 문제는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어 갔지만, 그 휴유증은 한동안 몹시도 나를 괴롭혔다. 그 시절 나는 옥상의 텃밭을 만들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절이었다. 돈과 신용이 없어 사업도 할 수 없었고, 사지마비로 한동안 누워지낸 후의 내 팔다리는 겨우 내 몸을 지탱할 정도였으니, 그 흔한 노가다라도 할 수 없었다. 수시로 검찰, 경찰에 불려다녀야 했다. 집안에서는, 내 자격지심이었는지 모르지만, 집안을 어지럽힌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혀 있었다. 오로지 내 혼자만의 세계로 몰입했던 시절이었고, 세상에 온통 불만 투성이었고, 세상과 담을 쌓았던 시절이었다.

나는, 4 층 계단을 불편한 다리로, 흙과 화분과 벽돌과 시멘트를 지고 날랐다. 지금 생각하면 초인 같은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일이었다. 아마, 나만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세상과의 단절이 그런 일을 가능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옥상에서 나는 하루를 보냈다. 작은 화단에 나무와 식물을 심고, 텃밭에는 채소의 씨를 심었다. 농부라면, 한 시간 꺼리의 일 조차 되지도 않는 일을, 나는 하루 종일 했다. 전혀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는 나는, 오로지 식물이 시키는데로, 심으면 씨앗이 나고, 물 주면 저절로 크는 것만 믿고, 어설픈 농민이 되어 갔다. 식물과 만나고 서서히 마음의 평화가 찾아왔다. 아무도 만날 수 없었지만, 식물들과는 언제라도 만날 수 있었다. 내 속에 숨어 있는 진정한 것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세상과의 단절이 오히려, 나를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을 식물들이 가능하게 해 주었고, 식물과의 대화에서 나는, 내가 어쩌면, 평생 찾을 수도 없었을지도 모를, 내 속에 숨어 있는 진정성과 정체성을 발견해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어설펐던 농사가 유기농이 되었다. 하긴, 어떤 비료를 언제 어떻게 주어야 할지, 어떤 농약을 언제 주어야 할지도 몰랐고, 물어 볼 사람도 없었으니, 유기농이 될 수 밖에 없었겠지만, 그렇지만, 나는 내 나름대로의 유기농법을 만들어 갔다. 그것이, 내가 수시로 옥상에 오르락거리며 오줌을 싸게 된 이유였다. 술이 취해 들어오는 날도, 꾹 참았다가 옥상에 올라가 온갖 광고등불로 번쩍이는 강릉시내 야경을 게슴츠레 바라보며 오줌을 싸는 일도 다반사였다. 거기다가, 애견 데니의 똥도 수시로 주워다 옥상 텃밭에다 버렸다. 사실, 데니의 똥 오줌 처리는 아이들의 일이었으나, 나의 이상한 유기농법 덕분에 어느 새 내 차지가 되고 말았다.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우고 싶다는 아이들의 말을 무시하다가, 어느 추운 겨울 밤, 사천 바닷가에서 추위에 떨고 있는 길 잃은 강아지를 불쌍해서 주워오게 되었고, 그 강아지를 집안에서 키우는 대신에, 아이들과, 똥 오줌은 절대로 집안에서 싸면 안되고, 혹시 싸더라도 너희들이 흔적도 없이 치워야 된다고, 약속을 하고 집안으로 들이게 되었는데, 그런 약속을 내 스스로 깨게 된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집 강아지는 아직도 똥 오줌을 가리지 못하고 아무 곳에서 싸게 되었다. 그 나쁜 버릇을 고치지 못한 이유도 순전히 나에게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방법은,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옥상에 파묻는 것이다. 내가 집안 식구들에게 유일하게 강제로 시키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에게는 글쓰기를 하게하고, 아내에게는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몇 번을 내 모르게 음식물 쓰레기를 밖에다 버렸다가, 아내는 된통 나에게 혼이 난 적이 있다. 그래서, 이제는 아내도 즐거운 마음으로 옥상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가지고 가는 것이 습관화 되었다. 음식물 쓰레기를 바로 버리면, 음식물 속의 소금기 때문에 싱크대 배수구에서 소금기가 다 씻겨나갈 때까지 몇 일을 나두어야 한다. 그것 때문에 집안은 항상 음식물 냄새로 가득 차 있어, 아내의 고충을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이런 남들이 보면 웃기기도 하고, 말 못할 고충이 담긴 사연을 쌓으며, 나의 유기농법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는 일 때문에, 신기한 일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음식물 쓰레기 속에 숨어 있던 과일들의 씨앗과 식물들의 뿌리가 땅속에 숨어 있다, 다음 해 싹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종류를 나열해 보면 왠만한 과일과 식물들의 이름은 거의가 다 들어 있다. 오이, 박, 수박, 호박 같은 넝쿨식물을 비롯해서, 감자, 파, 달래 같은 뿌리 식물, 포도, 감 같은 과일나무도 자라기 시작했다. 지금도 옥상 화단에는 우리 식구가 먹다 버린 씨앗에서 자란 포도나무와 감나무가 자라고 있다.

이상한 일들은 그것 뿐만이 아니었다. 어디서 날아 온 것인지도 모를, 이름 모를 풀과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벌레들도 날아와, 식물들을 못살게 했고, 그 벌레들을 먹으러 새들도 날아오기 시작했다. 내가 일부러 심어놓은 채소 주변에 잡초가 생겨나고, 나는 농민이 잡초를 뽑아야 하는 수고를 조금이라도 느끼며 그것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잡초의 힘은 당해낼 수가 없었다. 그 좁은 땅에서 내가 아무리 용을 쓰며 그 놈들을 뽑아내도, 그 놈들은 놀랄만한 생명력을 가지며 마치 비 온 뒤 죽순들처럼 마구 돋아나는 것이다.

잡초를 뽑다가, 문득 생각이 났다. 이름도 없고 놀랄만한 생명력에 생각이 미치자 민중이라는 단어가 불쑥 나타났다. 인간이 이용하는 이름 있는 채소는 귀하게 대접을 받는데, 오로지 인간에 필요가 없다고 해서 천대 받는 잡초가 민중을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고 끊임없이 역사의 큰 물줄기를 이어 온 민중은, 이름 난 영웅들과 권문세가들 뒤에서 혹은 밑에서 역사를 바꾸는 큰 힘이었던 것이다. 역사상 악명 높았던 폭군과 포악한 장군과 파렴치한 정치가들에 수 없이 당하고 살아 와도 민중이야 말로 역사의 주인이었다. 그것이 바로 잡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는 인간에게만 필요없을 뿐이지, 그들의 생명공동체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존재인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 모를 어떤 역할을 그들의 공동체에서는 틀림없이 하고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이 해야만 하는 천부적인 임무가 있기에 아무리 내가 뽑아내도 그 놈들은 살아나야만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의 생명은 인간이 살아야 하는 이유처럼 생명력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민중이 아니던가. 그것이 인간이 만든 역사의 힘이 아니던가.

어쩌면, 인간도 자연과 하나의 공동체일 수 밖에 없다면, 잡초 역시 인간과의 공동체가 아닌가. 그렇다면, 잡초는 인간에게 필요없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과 같이 살아야 할 생명체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이 미치자, 잡초를 뽑는 내 손이 머쓱해 질 정도였다.

일 요일 오늘 아침, 나는 어쩌면 쓸데없는 생각이 될지도 모를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웠고, 오줌을 싸고, 솟아나는 풀들을 한없이 지켜보았다.

작성일 : 2008-09-21 08: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