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똑똑하게 싸우지 않느냐고?   나는 다시 굶으러 간다. 어리석고 전략도 없는 채로. 누군가는 질 줄 알면서 싸우고, 얻지도 못할 승리를 위해 그렇게 소모되어야 하니까. 75일 동안 외로이 밥을 굶는 그들에게 그렇게밖에 빚을 갚을 길이 없으니까.   [51호] 2008년 09월 01일 (월) 10:15:18 김현진 (에세이스트)        김현진 (에세이스트) 기륭전자 동조 단식은 10일로 끝을 냈다. 9일째까지는 “쟤 나가서 뭐 먹고 들어오는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멀쩡했다. 그러다 두 자릿수가 넘어가는 날, 갑자기 머리가 아찔하다가 다음 순간 눈을 떠보니 컨테이너 바닥이었다. 빙빙 돌아가는 이마를 짚고 그대로 누운 채 삐걱대는 컨테이너 위와, 그 옆의 수위실 옥상과, 엉성한 판자로 연결된 천막 안에 앉아 있는 김소연·유흥희 씨 두 분을 생각했다. 이분들은, 이 짓을 이것보다 여섯 배는 더 했다 이거지. 할 말이 없었다. 아니, 도대체 이 사람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 있는 거지? 녹색병원으로 면회를 갔을 때 만난 유흥희 조합원은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아이보다도 체구가 작아져, 분명히 가장 작은 사이즈일 환자복이 나뭇가지처럼 가느다란 팔다리에 헐렁헐렁했다. 칼슘이 다 빠져서 자꾸만 아프다는 발목을 조심조심 끌며 복도 의자에 앉은 그녀는 농성장에서 모기에 물려 벅벅 긁어 흠집이 난 내 팔을 바라보며 “아프겠다…. 병원에 가야 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제발, 병원은 저 같은 인간이 가라고 있는 게 아니고, 아프다는 말은 저 같은 인간이 쓰라고 있는 말이 아닙니다’하고 펑펑 울고라도 싶었지만 “아뇨, 모기가 극성이라 허헛” 하고 실없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유흥희 조합원은 결국 여러 사람의 간절한 설득으로 겨우 병원으로 옮겼지만 김소연 분회장은 링거를 꽂은 채 농성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단식은 75일이 넘었고, 수없는 설득이 있지만 그녀는 칼슘이 부족해 뼈가 녹아내리는 상황에서도 단식을 계속한다. 보수 언론은 노조가 탄탄한 중소기업을 와해했다고 하고 기륭전자는 시위대를 업무 방해로 고소하겠다고 한다. 몇 명 안 되는 이 허약한 사람들이 ‘탄탄한’ 중소기업을 와해할 수 있었을 정도로 강력했다면 뭣 때문에 제 목숨을 무기로 쓴단 말인가. 게다가 업무 방해? 아니 당신들은 업무가 아니라 인생을 방해해놓고 무슨 망발입니까, 하고 스물두 살 때 투쟁을 시작해 이제 스물다섯 살이 된 최은미 조합원을 보며 생각한다. “젊은데 기륭 말고도 어디 갈 데 있었을 거 아니에요?” 하고 물으면 그녀는 “노예처럼 일하려면 많아요, 갈 데는…” 하고 노래하듯 해맑게 대답한다.     “노예처럼 일하려면, 갈 데 많아요” 그 얼굴들 때문에, 한 번 더 굶으러 간다. 다만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굶기만 하는 것은 아니고 영상물 제작이라는 목적이 있지만. 물론 적지 않은 이에게 “또 굶다니 어리석다”라는 충고를 들었다. 싸움이란 좀더 전략적이어야 한다고, 단식 따위로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고, 그것은 멍청하기 짝이 없는 소모적 전투라고, 왜 더 똑똑하게 싸우지 않느냐고 현명한 이들은 숱하게 충고했다. 그래도 나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그저 “나 원래 멍청합니다” 하는 말 말고는. 물론 나는 멍청하고 전략도 없고 이 세상을 요만큼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지도 않으나, 단 하나는 믿는다. 싸우는 사람 중에는 어리석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고. 현명한 사람이 “비정규직 문제는 단식처럼 ‘무데뽀’적인 방법보다 합리적인 해법으로 풀어야 해” 하고 말하는 동안 누군가는 어리석고 전략도 없는 채로, 질 줄 알면서도 싸우고 얻지도 못할 승리를 위해 그렇게 소모되어야 한다고. 그러니 멍청한 나는 그냥 가서 소모되겠다,라고 할 수밖에 없겠다. 그리고 거기는 사람이 75일 동안 밥 굶을 때 아무도 돌아보지 않았던 외로운 곳이라, 이제라도 빚을 갚으려면 그 수밖에 없다고.

작성일 : 2008-09-06 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