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8일  일요일  뿌옇다
  

  연세대 뒷산으로 해서 덕가산을 오르다. 겨울에 이 코스를 가 본 적이 없어서 한 번 가보기로 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곳이란 점도 작용했다. 전에 썼던 산행기를 살펴보니 4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좀 짧다. 연세대에서 덕가산까지만 가려니 성이 안 차서 집에서부터 걸어가기로 했다. 거리 13.3km, 시간 4시간 30분.

  부지런히 걸었더니 연세대까지 5km를 한 시간 정도 걸려서 걸었다. 봄 날씨 같은 날들이 계속되면서 그런건지 어쩐건지 알 수 없지만 요사이 시야가 영 좋지 않다. 온통 희뿌옇다. 건조한 날씨 때문에 먼지가 날리는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공해로 인한 스모그도 상당한 부분을 차지할 것 같고,  황사도 약간 섞인 것 같다. 시내의 수 십 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건설공사현장의 미세먼지도 큰 역할을 할 것이고, 급격히 늘어난 자동차도 한 몫 할 것이다. 덕가산 정상에서 보니 위쪽의 하늘은 맑은데, 아래쪽으로 내려올수록 뿌옇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주변을 둘러보니 산에서 볼 때보다 더 뿌옇다.

  정말이지 요 몇 년 동안 원주시의 자연환경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음을 실감한다. 원주시내에 가는 곳마다 건설장비로 파제껴져 있고, 아파트를 짓지 않는 읍면동이 거의 없을 정도다. 아파트는 분양이 안 되어 난리인데도, 또 아파트를 짓겠다고 택지개발을 하는 곳만도 10여 곳이 넘는다. 김기열 시장 들어서서는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내무부 새마을과 출신이라서 딱 이명박과 마인드가 비슷한 사람이다. 원주시가 살 길은 오로지 삽질, 하나도 삽질, 둘도 삽질, 마지막도 삽질, 무조건 삽질, 어쨌거나 삽질, 막무가내로 삽질, 누가 뭐래도 삽질, 곧 죽어도 삽질, 좆도 삽질...

  내가 살고 있는 무실동만 해도 1군지사 이전과 맞물려서 토지공사의 손실을 보상해 준다는 명분으로 남원주역세권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정식명칭은 ‘남원주뉴타운지역개발사업’이다. 뉴타운, 그래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사기 쳐서 재미를 보았던 그 뉴타운이다. 혁신도시 3,603,048㎡와 비슷한 규모인 3,081,000㎡로 약 100만평 정도 된다. 말하자면 무실동에도 혁신도시 하나가 새로 생긴다고 보아야 한다. 이마트 부근의 무실동에서부터 남송까지 어마어마한 면적이다. 개발예정지에 살고 있는 사람만 해도 엄청난데, 아마도 원주시의 개발 역사상 가장 많은 이주민을 만들어낼 택지개발사업이 아닌가 싶다.

  멀쩡히 잘 살던 사람들이 쫒겨나게 생겼다. 그 규모도 엄청나서 그 많은 사람들보고 어디로 가라는 건지 알 길이 없다. 결국 분양이 안 되고 있는 아파트로 이사하라는 모양인데, 아파트 살 돈도 보상 받지 못한 사람들은 거리로 나서야 할 판이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이고, 나한테 닥칠지도 모르는 일인데도 바빠서 신경을 쓰고 있지 못하고 있다. 언젠가는 살고 있던 터전에서 쫒겨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니 용산철거민의 죽음이 남의 일만 같지 않다. 상황이 이런데 어떤 이는 먹고 살기 바빠서 신경을 못 쓰고, 또 다른 이는 투기에 눈이 멀어 토지보상가가 오르는 것만 관심이다. 다들 큰일이다. '대한민국은 투기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은 잠재적 투기꾼으로서 투기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이렇게 헌법 제1조를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그 잘난 삽질대통령을 뽑아서 내 살아 생전에 이런 꼴도 보고 참 얼씨구나 지랄이다.


  <덕가산에서 내려오다 보면 요상한 바위를 만난다. 큰 놈 하나, 작은 놈 하나. 둘이 닮았다>

  약간 주춤했던 원주 시내의 재개발도 여전히 추진 중이다. 법적인 근거도 없이 재개발조합을 허가해준 원주시가 이번에는 재개발조합의 합법성을 마련해주기 위해서 도시정비기본계획수립을 위한 주민설명회를 2월 12일에 하겠단다. 재개발에 반대해서 싸움을 벌여 왔던 태장동, 봉산동, 단구동의 주민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 분들에게도 용산재개발지역의 강제진압과 철거민의 죽음은 남의 일이아니다.
     
  전에 써 놓았던 산행기를 미리 보고 헷갈리는 길을 숙지한 터라 길 찾는 부담이 없고, 춥지도 않아 편한 산행이었다. 헷갈리기 쉬운 갈림길 한 곳에 리본을 달아 놓았고, 덕가산 정상에서 10분 정도 낮잠을 즐겼고, 양안치재에 내려서자 마자 버스가 도착해서 쉽게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피로하지도 않고 아쉽지도 않은 적당한 산행이었다. 요 정도의 산행코스가 근방에 많다. 그러나 이제 근방의 산을 다니는 재미도 몇 년 남은 것 같지 않다. 개발이 웬수다.

10:45 집
11:48 연세대 정문
12:01 학군단
12:05 능선
12:45 삼거리, 우로
13:04 임도
13:17-37 점심
13:43 갈림길
14:25-44 덕가산
15:11 양안치재 매지쉼터

작성일 : 2009-02-10 2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