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100 만개의 촛불이 불야성을 이루었을 때, 나는 밤새도록 칼라 TV를 보면서 흥분해서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래, 세상이 바뀌는 거야. 세계 최초로 촛불로 혁명이 일어나는 거야. 러시아 혁명 이후, 기동전으로 성공한 최초의 나라가 되는 거야."
그러나, 우리들의 혁명은 그것으로 그만이었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람시를 생각했다. 곱추에 병약한 몸으로 젊은 나이에 사망한 그일지라도, 다시 한번 존경 스러워졌다.

이명박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무지 실망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잘 된일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간신 같이 생긴 그 인간이 틀림없이 국정을 개판으로 만들 것은 뻔한 일이었다. 오히려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그에게 국민들은 더 실망을 할 것이고, 그 만큼 진보정당의 집권이 빨리 올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명박은 나의 그런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촛불 역시 여중고생으로 부터 자연 발생적으로 일어났다. 그 숫자가 100만이 되었다.
맑스가 공산당 선언을 한지 70 년 만에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고, 그람시가 사망한지 70 여년 만에 드디어 극동 아시아 코리아에서 무혈 촛불 시민 혁명이 일어나는 것이다. 그것도 그가 이야기 한 기동전이라는 이름의 혁명이 아닌, 시민들의 작은 소망이 모인 진지전으로 세상이 바뀌는 것이다.

흥분했던 마음이 가라 앉을 즈음, 그람시가 역시 옳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촛불은 작은 진지가 아닌, 그저 소박한 국민들의 희망일 뿐이었다. 그 희망이 의식화된 진지가 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아직 많았다.
자본주의 국가는 아직 완강했다. 이명박은 어리석긴 해도, 러시아의 부폐한 절대왕정이 아니었다.

소고기는 기동전이 되기에는 명분이 부족했다. 그렇더라도 나는 그 속에서 작은 희망을 보았다. 광우병 소와 똑 같은 교육을 받은 여고생의 의식 속에도, 진실을 찾고자 하는 작은 진지가 숨어 있음을 알았다.
우리는 그 속으로 침투해 들어가야 한다. 사람들 속에 희미하게 비추고 있는 진보의 불씨를 찾아서, 각자가 최선선의 소대장이 되어 몸 사리지 말고 전진 해야 한다.

맑스가 위대한 것은, 당장 써먹을 수 없는 이론일지라도, 미리 준비한 무기고 같은 역할을 했다는 점이고, 그 점에서는 그람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19 세기 중반의 현실에서 자본주의는 스스로 멸망 할 것이라는 맑스의 예견이 빗나가고 러시아 혁명 역시 결과적으로 실패한 것이 되고 말았다.
자본주의 국가는, 억압(공권력)과 동의(시민의식)로 구성된 통합국가이기 때문에 러시아 혁명 처럼 쉽사리 기동전으로는 이길 수 없고, 기득권층과의 헤게모니 전쟁에서 승리하는 수 밖에 없다.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서는, 시민들 속의 작은 진지를 하나씩 점령해 나가야 한다. 그 역할은 유기적 지식인(진보당원, 계급을 대표하는 지식인)들이 할 수 밖에 없다.

맑스의 공산당 선언과 지금의 유럽 사민주의 국가의 연결 고리가 되어 주고,  내 혁명적 사고 방식에 상상력이라는 멋진 선물을 보내 준 그람시에게 다시 한번 감사한다.

작성일 : 2008-07-29 1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