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서울에 갔다왔습니다.

토요일 밤에 원주에서 촛불문화제마치고, 서울의 상황을 인터넷 중계로 보다가
아침에 늦게 일어나서 다시 컴퓨터를 켰는데 세훈씨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서울에 한 번 가보자고 하더군요.
카톨릭농민회의 이길주 동지와 셋이서 올라갔다 왔습니다.
이곳저곳 물어서 2시쯤 서울역에 도착했는데, 서울시청 광장에서 3시에 집회가 있다는군요.
그래서 다시 그곳으로 택시를 타고 이동했습니다.

시청앞 광장에 가 보니 사람들이 광장에 여기저기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습니다.
의례히 누군가 주관하는 일사분란한 집회가 세 시부터 있으려니 했더니
그냥 메가폰 가진 사람 한 명이 사회를 보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를 하는 방식이더군요.
사회라고 해 보았자 '할 말 있는 사람 나와서 이야기해 봐라' 이렇게 한마디 하고, 가끔 잊을만하면 '이명박은 물러가라'하고 선창하는 정도더군요.

아, 그렇게 네시 반 정도까지 진행하고 있었는데,
갖가지 사람이 나와서 자기 이야기하는 걸 듣는 것도 재미있었습니다.
온갖 의제가 나오더군요.
0교시, 의료민영화, 수도전기가스 민영화, 대운하, 광우병 등등...

아, 그런데 어제도 밤새 촛불을 들었다는 젊은이 하나가 등장하더니
어차피 우리가 청와대로 가려고 여기 모인것 아니냐, 밤 7시까지 기다려서 촛불집회 끝나고 가면 노약자들 위험하고 시간도 부족하다. 그러니 당장 청와대로 가자.

이러더니 사람들이 웅성웅성 일어나서 대열을 만들더니
경찰들이 준비도 안 한 상태에서 허둥대고 있는 사이
어찌 어찌 하다보니 그만 청와대 앞 경복궁역까지 와 있었습니다.
하하 그것 참. 이렇게 쉽게 오기도 하는군요.

얼결에 사람들이 몰려온거라 인원도 많지 않고,
경찰들이 상황을 정리하고 나름대로 대응방안을 세웠는지 밀고 들어오는데,
워낙 인원이 적어서 안되겠더군요. 다들 다시 시청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을 보니 6시 반, 세종문화회관 뒤쪽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시청광장에 도착하니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모여있더군요.

마악 촛불문화제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문화제라고 해야 네 사람의 발언과 '대한민국 헌법 제1조'노래 두 번 부르고 청와대로 향했습니다.
경찰은 시청광장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낮의 일로 보나 어제 밤의 상황으로 보나 어차피 막을 수 없다는 게지요.
광화문 네거리에 도착하니 모든 길을 버스로 막고 있더군요.

한참을 버스로 가로막힌 광화문 네거리와 이곳저곳 골목에서 서성이다
이제 나머지 상황은 서울시민들에게 맡기자며 발길을 원주로 돌렸습니다.
시청역에서 지하철을 타려고 그리고 향하는데,
계속해서 사람들이 밀려오고 있더군요.

집에 와서 인터넷을 열어보니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명박이의 지지율이 드디어 10%대로 진입했다는군요. 지화자.

 * 인상적이었던 장면 하나,
자원해서 나온 20대들이 스스로 모금한 돈으로 물이며, 빵이며, 김밥이며, 구호 적힌 A4종이피켓을 나누어 주는 표정에 스며있는 기쁨과 자부심이 온몸으로 느껴지더군요.

* 인상적이었던 장면 둘,
나누어준 A4종이피켓에 등장하는 쥐박이의 모습, 오렌지가 꼬리에 달려 있고, 삽질용 삽을 한자루 어깨에 걸치고 있습니다. '공공의 적'이란 구호도 압권이었습니다.

* 인상적이었던 장면 셋,
사람들 사이를 뛰어놀던 웬 아기의 등에 적힌 종이에 적힌 구호. '우리가 배후다'라고 적혀 있더군요. 

작성일 : 2008-06-02 1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