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저녁 고모네 횟집에 아내를 태우러 가려고, 차 시동을 거는 순간, " 히히잉 히히잉 히히잉......"  하며, 8 년 된 나의 애마가 늙은 말 발정 난 소리를 질러 대었다. " 캬캬캬...." 하며 가래 긁는 소리를 내면서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제네레이터에 습기가 차서 시동이 걸리지 않는데, 그 소리로 짐작컨데 틀림없이 밧데리 방전이 원인이었다.

몇 군데 카 센터에 전화해보아도 벌써 문 닫을 시간에다 어쩌다 핸드폰으로 연결이 되어도 연휴 휴가 중이거나, 이 빗속을 뚫고 이 심산유곡 시골까지 달려 올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배는 점점 더 고파오고, 빗줄기는 더욱 거세어지고, 아내로 부터는, 횟집 문 일찍 닫고 고모와 삼겹살 구워 먹자는 전화가, 애간장을 태우고, 막내 딸 원주는 뒷 자리에서 애견 데니가 배가 고프다고 철 없는 소리를 해대고, 워낙 짜증이 나니까, 개 보다 아빠 배고픈 것은 신경도 안쓰는 딸아이가 원망 스럽기까지 했다.

2층 집 주인 후배 놈도 아직 퇴근 전이고, 전화를 해보니 술 한잔 하고 있다고 거나한 소리가 들린다.

포기하고, 딸아이와 고모네 횟집의 게장과 삼겹살을 머리에서 아쉬워 하며 짜파게티를 끓여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오랜만에 비가 줄줄 내리는데, 고모와 항구를 바라 보며 파라솔 아래서 술 한잔 할 수 있었는데....그리고 거나해져서 아내를 태우고 파도치는 헌화로를 드라이브 하며 세 식구가 잔잔한 대화도 할 수 있었는데....생각 해보니 아쉬운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시내버스가 있기는 했지만, 이 빗속을 1 km 걸어서, 그것도 언제 올지도 모를 버스에 의지할 수도 없었다. 딸아이만 아니라면 까짓것, 신혼의 신부를  보는 기분을 살려서 바닷가를 걸어서 갈 수도 있으련만.....

하여간, 어제 저녁은 딸아이와 간단한 식사를 하고, 각자의 방으로 들어 가 텔레비젼을 끼고 초저녁에 잠이 들었다.

" 잘 잤어요? 아침은 먹었어요? "

"응....."

"내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

"이여자가....싱겁긴...."

아침에 놀리는 듯한 아내의 전화를 받았다. 몇 시간 아내의 빈자리가 나로서는 불편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아내의 위치가 커다랗게 보였다.

아침도 겨우 김치 한 조각으로 때우고 창 밖을 바라 보았다.

비는 질리도록 오고 있었다. 딸아이는 아직 자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 나 정동진 카센터 주인과 간신히 통화가 되었으나, 비가 너무 오니 비가 그치면 온다고 했다.  그 전화를 받고 어제 저녁의 다급함이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무엇인가 포기하는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나는 그 동안 너무나 편하게 살아왔다. 자동차 하나에 의지하여 강릉 근방 어디라도 순식간에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밧데리 하나가 망가지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그 동안 너무 오만하게 살아왔던 것이다. 밧데리 하나에 나의 자존심은 무너졌다. 억수 같이 내리는 비 때문에 밧데리가 방전되고, 나는 그것 때문에 어제 저녁의 만찬을 포기 해야 했고, 우리 부부는 오랜만에 떨어져 잠을 자야 했다.

그러나 자연에 대해 포기하고 겸손해 지는 순간, 다소 불편할 지는 몰라도 마음은 편해졌다. 지난 밤에 내가 잃어버린 것은 비록 얄팍한 것이었지만, 얻은 것은 그것보다 갑절이나 큰 것이었다.

작성일 : 2008-08-16 1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