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회 게시판이 온통 야구단 이야기 뿐이라 좀 거시기해서 
제 산행기를 올려볼까 합니다.

뭐 등산반을 만들자는 제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등산반 만들면 좀 피곤해지거든요.
맘은 등산 가고 싶은데 몸이 안 따라주는 분들,
운동은 해야겠는데 누가 좀 끌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분들,
(이런 분들 일년에 한 번 산에 갈까 말까 하죠)
이런 분들 챙기는게 여간 힘든 게 아니거든요.
산은 자기가 좋으면 스스로 알아서 찾아가는 거고,
운동은 누가 대신 해 주는 게 아니잖습니까?
챙겨줘도 결국 중도포기하기 십상이구요.  

어쨌거나 야구단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습니다.
뭐 꼭 취미생활을 동호회 방식으로 해야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제 블로그에 산행기를 꾸준히 올려왔는데,
시간 나면 예전에 썼던 산행기도 틈틈이 올릴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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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주시계종주 18구간 산행기
(관념과 현실의 괴리, 기억과 실제의 괴리)
 

2009년 1월 11일 일요일 맑고 춥다.

시계종주 18구간, 구학산을 오르다. 산행거리 10km, 산행시간 4시간 45분. 김은수 위원장과 나 둘이서 산행을 했다.

원래는 가나안 농군학교 앞의 5번 국도에서 종림마을로 들어간 후, 개울가의 산자락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오늘은 종림마을 뒷산을 이용했다. 마을에서 길을 잘 닦아 놓아서 길 찾는 어려움은 없었다. 


<사진 아래의 날짜와 시간이 틀리다. 카메라의 설정이 잘못된 탓이다>

50여분을 올라 담바위에 도착했는데, 이번에는 담바위를 우회하지 않고 넘어섰다. 그동안 험한 바위 오르기를 꺼리는 사람들과 왔던 탓에 담바위를 우회하기만 했다. 막상 오르니 전혀 험하지 않았다. 바로 해산굴이 나타났고, 해산의 고통을 몸소 겪으며 여자의 굴을 빠져나오니 바로 담바위 위쪽으로 통하는 번듯한 길이 나타났다.

담바위부터는 능선길이라 넘나드는 바람이 맵차다. 일기예보에 혹한의 날씨라고 해서 긴장을 했는데, 생각보다는 춥지 않았다. 그렇다고 춥지 않았다는 건 아니고, 생각보다 춥지 않았을 뿐이다. 목띠 덕분이기도 하다. 목에서 코까지 올려 덮을 수도 있고, 두건으로도 쓸 수 있는 편리한 놈이다. 코까지 끌어올려서 덮으니까 체온보호 뿐 아니라 코와 입을 통해 들어오는 찬바람을 막아주어 목이 상하지 않는다. 요즘 목 상태가 안 좋아 고생이 심한데 덕을 톡톡히 보았다.  

773봉 조금 못 미쳐 재가 있는데, 전에는 제천의 옥전리 좌수골에서 원주의 구학리 큰골로 통하는 고개인 줄 알았다. 이번에 지도를 다시 보니 옥전리의 노목에서 구학리의 가래머리를 넘나드는 고개다. 지도판독을 정확히 해서 그런지 오늘은 구학산 정상까지 가는 길이 그리 멀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기억하는 구학산은 눈 앞에 바로 보이면서도 생각보다 멀었었다. 능선길이 빙 돌아서 나 있는 연유도 있었지만 지도를 잘못 본 탓에 거리 계산이 틀려 구학산이 멀어 보였던 게다.  

773봉 조금 못 미친 봉우리에서 귤과 복분자 두 잔씩 나누며 잠시 쉬었고, 773봉과 구학산의 중간 쯤에서 점심을 먹었다. 양지 바른 곳을 찾다보니 길 곁에 자리를 잡았는데, 오가는 사람들 번거롭게 만들지 않을까 저어되는 바 없지 않았지만 다행히 자리 잡으려 할 때 한 무리의 사람이 지나간 것 말고는 부딪힌 사람들이 없었다. 50 중반 쯤 되는 늙수그래한 남자들 10여 명이었는데, 산에 오르기 전 구학산방 입구에서 보았던 버스 두 대 중의 한 무리인 모양이다. 정상 부근에서 본 일행도 그렇고 산행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50대 중늙은이들이 많다. 나도 멀잖았다. 
 

산길을 걸으며 주식투자와 부동산 경매에 바쁜 노동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주변에도 몇 있다. 며칠 전 레디앙에서 본 한석호의 글이 생각난다. 한석호의 지적대로 자본이 쳐 놓은 틀 속의 삶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면서 자본을 극복하겠다고 구호만 급진적으로 외치는 게 우리 운동의 현실이다. 관념과 현실의 괴리... 1년여 일하며 지켜본 협동조합도 역시 그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않다. 욕망을 부추기고, 과소비를 조장하고, 경쟁을 강요하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욕심을 줄이고, 느리게 살고, 불편하게 살고, 아껴 쓰는 삶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자본의 틀 속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근처의 좋은 산과 맘이 통하는 산행친구를 벗 삼는 생활이 주는 깨달음이다.

구학산에서 구력재로 내려서는 길이 기억과 달리 1시간을 훌쩍 넘겼다. 기억과 실제의 괴리...
 

10:03 출발
10:58 담바위
11:20 노목-가래머리
11:41 휴식
11:59 773봉
12:27-12:58 점심
13:33 구학산
14:48 구력재

작성일 : 2009-01-27 16: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