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 50분에 일어나 밖을 보니, 초생달이었다.

군대 식당 막사에서는, 취사병들이 막 일어나 불을 켠 참이었다.

어제 저녁, 동서울에서 출발한 주희를 마중 나가 태우고,

집으로 돌아와 온 식구를 데리고 금진항으로 갔다.

금진항은 집에서 해안도로 헌화로를 지나면 금방이다.

금진은, 아버지 외갓집 동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신 내 할머니의 고향이다.

초등학교 까지는, 아버지와 제사에 참석도 했는데, 철이 들고 멀어진 느낌이다.

그곳에, 아버지 외사촌 여동생이 하는 횟집이 있다.

매운탕(망치 매운탕, 이곳에서는 삼숙이 오빠, 삼식이 형님 망치라고 하죠. 1인분에 5000원, 맛이 기가 막힘)

에 회무침을 먹었는데, 2 만원 밖에 안받으신다.

실갱이를 하다 못이기는 척, 그것 밖에 내지 않았다.

피서철에 바쁘다고, 고모는 아내에게 10여일만 도와달란다.

그래서 모레 부터 잠시 아내가 고모 횟집에서 아르바이트 하기로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다가, 심곡항 수퍼에서 소주 한병을 사고 주희와 마주 앉았다.

딱히, 할 이야기도 별로 없었다.

안양 이모집에 있으니, 별로 먹고 사는 건 걱정이 되지 않았고, 주희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통달을 할 지경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무엇이 부족했는지 주희에게 소주 한잔을 따라 주었다.

말없이 한참을 앉아 있던 부녀는, 잠시 후 말문이 트였다.

"아빠, 얼마 전에 이야기 한 프랑스 68 혁명에 대한 영화를 보았어"

"그래?"

"뭐지....드골 대통령...그 사람이 한 이야기가 재미있던데......"

"응.....차라리 권력이 아닌, 상상력으로 정치를 하고 싶다고...그리고 물러나고 그 심복에게 물려 주었지.."

"........."

어색한 분위기를 딸아이는, 아빠가 제일 좋아할만한 이야기를 꺼내면서 서둘러 마무리 지었다.

벌써 아빠의 심중을 헤아릴 줄 아는 주희, 많이도 컸다.

아빠가 아무리 좌파 빨갱이라고 해도, 그 나이 또래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뻔할 터. 그래도 주희는 아빠의 비위를 맞추어 주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주희를 맞추어 주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주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줄 것인지 전부 까먹고 있었다.

그냥 취해 갈 뿐이었다.

새벽에 일어나니, 초생달이었다.

작성일 : 2008-07-30 0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