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당게에 좋은 글이 있어 퍼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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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아 노무현
 
김정진, 2009-05-27 16:35:12 (코멘트: 22개, 조회수: 1126번) 
 

1. 

억울한 죽음이다. 세상에 억울한 죽음은 도처에 있지만 전국민이 다 아는 사람이 억울하게 죽기는 아마 수십년만일 것이다. TV나 언론에 나온 노숙자에서부터 가정주부, 회사원, 초로의 신사까지 누구나 다 똑같이 말하고 있다. “수천억 씩 먹은 사람은 떵떵거리고 사는데 왜 그 분이 죽어야 하느냐”. 세상이 부조리하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생계를 위해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는 것이지만 이처럼 극명한 부정의 앞에 모두 망연자실해 질 수 밖에 없다. 노무현을 초기부터 비판해온 나 또한 TV를 보다가 비통함에 눈물방울이 떨어지곤 한다.

문득 입장을 바꾸어 보았다. 나도 노무현의 처지였다면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까. 자신이 지인과 전 가족이 고통받는 상황에서 이것을 끝내고자 한다면 방법은 분명한 것이다. 생과 사의 갈림길은 종이 한 장 차이지만 인간은 생물학적 유전자 때문에 어느 누구도 그 종이 한 장을 쉽게 넘으려고 하지 않는다. 경호관의 말이 사실이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담배 한 대 달라”라고 했을 때의 심정은 그야말로 고독의 심연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심연을 이미 절대 다수의 국민이 공감하고 있다.

2.

필자도 간접적으로 그 심연을 본 바 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이 수십미터의 고공크레인에서 농성을 하다가 목을 메었을 때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 진상조사단의 일원으로 올라가 본 그 크레인에서는 세상이 모두 보였고, 사측의 가압류, 손배와 각종 분열공작 중에 와해되어가는 노조원들이 보였고, 사태해결에 한 가닥 희망이었던 진수 전의 배가 사측에 의하여 진수되어 가던 것이 보였고, 자신은 더 이상 해고된 50대 용접공들의 고용을 지킬 수 없다는 명백한 고독이 보였다. (그 때 나는 사석에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에 대한 있는 욕, 없는 욕을 퍼부은 적이 있었다. 죽어간 김주익의 그 고독을 도저히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부엉이 바위에서 노무현 또한 그 고독의 심연을 느꼈을 것이다. 살아 있는 자들이, 망자의 마지막 고독과 마주하는 유일한 방법은 눈물뿐이다.  

3.

고독과 비통함이 나를 휘감더라도 나는 노무현을 호의적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다. 추모기간에 예의가 아니라는 분도 있지만 과거에는 그렇게 비판하다가 갑자기 모든 것을 덮고 추모만하는 것은 오히려 그가 가졌던 진정성과 결기에 대한 예의도 아닐뿐더러 한나라당과 MB 같은 행위인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의 진정성과 결기는 어느 누구도 가지지 못한 것이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고통과 고난을 진정성과 결기만으로 돌파하였던 것 같다. 진보진영이 노무현을 넘어서지 못하고 지금도 지리멸렬하고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진보진영의 어느 누구도 그만큼 진정성과 결기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정치와 무관한 우리의 상식적인 이웃들이 그에게 빠져들었다. 그 분들의 열정은 평생을 운동에 바쳐왔지만 매너리즘과 도그마에 빠져 세상변화에 둔감한 진보진영의 운동권 인사들은 도저히 가질 수 없는 생생한 것이었고, 그 자발성은 순수한 인간행동 자체였다. 그들의 모습은 소시적 읽었던 유치찬란하게 대중들의 위대함을 역설한 각종 혁명에 관한 책들에서나 나올법한 모습이었다.

이 열정은 당연하게도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원내진출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삼고 있던 2002~2004년의 내 입장에서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좌파들이 대중들의 순수한 열망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그 좌파는 도대체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인가? 논리와 정책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너무 명백한 것이다. 대중의 열망이 노선과 인물과 결합될 때만이 변화의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열리는 것인데, 내가 참여한 진보정당은 가장 큰 자산을 가지지 못했고 오직 노무현만이 그것을 가지고 있었다. 열정은 때로는 주위 사람을 불편하게 한다. 정몽준의 지지철회로 노무현 지지자들은 정말로 그 하루동안 그 엄청난 열정으로 권영길 지지자들에게 거대한 압박을 가했다. 일부는 자발적으로, 일부는 어쩔 수 없이 진보정당 지지자들은 노무현을 지지했다.

4.

2002년 개표 때의 민주노동당 당사는 이상한 열정으로 들끓었다. 당료인 나는 권영길이 얻을 표 외에는 거의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나의 임무이기도 했고, 내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출구조사 결과 노무현의 승리가 발표되는 순간 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많았던 어떤 회의실에서는 거의 환호에 가까운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때 나는 그 기묘한 광경을 참을 수 없어 뛰쳐 나갔지만 노무현은 그런 존재였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그는 우리 편이었고, 자신들이 만든 정당이 민주노동당이라는 사실은 부차적인 사실이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대응하는 방법은 논리 밖에 없었다. 정책파트에서 일했던 나는 노무현의 공약과 참여정부의 정책에 대해서 줄기차게 비판하는 문건을 작성하는 수 밖에 없었다. 그 후의 상황은 다들 아는 것이다. 분양가 원가공개거부, 수용소 발언, 이라크 파병과 김선일의 죽음, 시민단체의 이라크 파병찬성자들에 대한 낙선운동거부, 탄핵과 여당의 총선승리, 4대개혁입법, 지속적 지지율하락과 대연정, 정치자금 10분의 1 발언, 가장 마지막으로 한미FTA 등등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나의 이러한 입장은 크게 보면 민주노동당에서는 극소수가 아닌가 싶었다. 공식적으로는 강경하게 정부정책에 반대했지만 민주노동당의 주요구성원들은 노무현을 비판하는데 어딘지 모르게 망설였고, 참여정부 인사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발언도 많이 하였다. 실제로 많은 운동권 인사들은 직간접적 혜택을 입고 있었고, 그것이 직접적인 경제적인 지원일 수도 있고, 각종 위원회 위원과 같은 자리일 수도 있었으며 일정한 영향력 행사일 수도 있었다. 참여정부 초기 기자회견을 하다가 경찰서에 연행되었지만 잠은 경찰관용 숙직실에서 자고 경찰에게 2단 엽차기를 하여도 48시간이 지나면 석방되고, 심지어 서장이 사과 안하면 안 나간다고 하여 사과 받고 석방되던 일도 있었다.

5.

나는 노무현과 참여정부는 자유주의개혁세력이라고 규정하였다. 우리가 그들과 분립하지 않으면 우리의 존재의의는 없다고 생각하였고, 우리가 정치적으로 살아남고 우리가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민생독자노선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생각은 지극히 “비정치적인” 생각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진보진영은 노무현에게 너무나 많은 빚이 있었고, 실제로 진보진영인사들은 너무나 많은 혜택을 보았다. 그런 상황에서 진보정당의 구성원들이 독자노선을 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러한 상황을 꿰뚫어보고 탄핵 이후 실리와 명분을 모두 취하는 놀라운 능력을 보여준 분이 사실 노회찬 대표였다.)

내가 비극적이라고 느끼는 것은 노무현은 사실 지지층의 의사와 배치되는 정책을 다수 추진하였다는 점이다. 사실 노무현은 2002년도까지만 해도 방송에 나와 자신은 “라인 모델”을 선호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결국 사민주의적 정책을 하겠다는 것인데, 이러한 정책에 대한 선호도는 한국에서 그 지지층이 상당하였고, 사실 노무현 지지자들 중 상당수가 이러한 정책을 선호하였다. 그러나, 이후 노무현의 특히 사회경제정책은 별다른 것이 없었고, 오히려 분양가원가공개처럼 시장에 별다른 충격이 없으며 경제개혁의 기초라고 여겨지는 것까지 거부함으로 인해 지지층을 이탈시켰다. 부동산에 대한 방치는 양극화에 절대적 기여를 하였다. DTI는 글로발 금융위기에 비추어 보면 좋은 정책이었지만 문제는 그것이 너무 늦었다는 데에 있었다.

실제로 노무현의 지지율 하락은 여기에 기인한 바가 크고 그것을 오피니언 리더격인 30~40대 수도권 중산층들이 주도하였다는 데에 있었고, 이들이 청계천과 버스전용차선에 반하여 이명박에게 지지를 이전한 탓이 크다.

가장 결정적인 것은 한미 FTA였는데, 사실 나는 내가 속한 정당의 입장과는 달리 미, 일과의 FTA를 제외하고는 우리가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하는 것은 대부분 이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특히 미국과의 FTA는 너무나 강력하고 벗어날 수 없는 조항들이 많아 그 손해를 감당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사실 FTA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반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지만 DJ 정부의 한미투자협정, OECD 차원에서 추진되던 다자간 투자협정(MAI)등과 관련해서 국제적으로 많은 활동이 있어 운동진영 내에서도 그 문제점에 대한 공감이 상당했던 부분 중의 하나였다. 게다가 상대가 미국이니 반미운동진영에서도 매우 동원이 쉬운 분야였다.)

아마 이 때 대개의 진보진영인사들은 노무현 정부에 대한 내심의 지지 내지 암묵적 승인 같은 것을 철회한 것 같았다. 한미 FTA 당시 집회의 자유의 위축은 사실 MB 정부 하의 탄압을 예고하였는지도 모른다. MB 와는 차원이 다르지만 그 또한 경찰력에 의지했다. 물론 지금에 비하면 구속자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6.

사실 나는 지금도 그의 결기와 진정성은 어떠한 정치인에게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결국은 정권교체가 원인이었다고 한다면 왜 정권이 저처럼 무도한 자들에게 넘어갔는지, 왜 가난한 자들과 중산층들이 힘을 합쳐 MB를 찍고 한나라당에게 과반수 의석을 주었는지에 대해서 답을 내리는 것은 남은 자들의 분명한 몫이다. 그 답을 내지 못한다면 그것은 그처럼 진정성과 결기를 가진 한 인간의 죽음을 의미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성일 : 2009-05-28 1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