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원 성적을 확인하고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지난 학기 수강했던 과목 모두 A+를 받았기 때문이죠. 태어나서 처음으로 받아본 All A+였으니까요. 사실, 성적 자체가 주는 기쁨보다는 ‘등록금을 조금만 내도 되겠지.’하는 안도감이 더 컸던 것 같습니다. (근데, 뒤늦게 알고 보니 원래 대학원에서는 거의 다 A플러스 준다고 하더군요. 웬만하면 A 이상은 준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처음 성적을 확인했을 때는 그런 사실도 모른 채 ‘아, 그럼 이번에는 기성회비 장학금(약 100만원 정도임.) 받을 수 있겠구나.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다음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지 물어보기 위해 과 사무실에 갔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 기성회비 장학금이 아니라 수업료 장학금이라는 것이었습니다. 휴... 한숨이 나왔습니다. 100만원 정도는 절약했다고 생각했었는데, 고작 20여 만원밖에 못 받는다는 것이었지요. ‘또 어떻게 돈을 구할까’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져 다리에 힘이 풀린 채 터벅터벅 자취방까지 걸어왔습니다.

그나마 등록금이 저렴하다는 국립대 다니는 저도 이렇게 고민이 많은데, 사립대 다니는 고학생들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등록금 1천만원 시대”를 살아가면서, 우리 젊은이들이, 가난한 서민들이 삶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실제로, 사립대 중 의대처럼 돈이 많이 드는 학과는 연간 등록금이 1천만원 정도 한다고 합니다. 정말 너무한 것 같습니다. 1천만원이면 가난한 사람들 1년 임금과도 맞먹는 돈인데... 최근에 봤던 뉴스가 떠오르더군요. ‘요즘 카드 결제 안 되는 곳이 어디 있는가? 왜 대학 등록금은 신용카드 결제가 안 되는가?’ 뭐 이런 내용이었지요. 정말 답답하고 화가 납니다. ‘등록금 반값’ 공약을 내세웠던 명박이는 도대체 뭐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장 등록금 반값, 등록금 후불제까지는 아니더라도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 납부’ 정도는 충분히 곧바로 시행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참 답답합니다. 

돈 없는 부모는 자식 대학 등록금 낸다고 등골이 빠집니다. 자기가 돈을 벌어서 등록금을 내는 대학생들은 그 고통이 더합니다. 고학생들은 공부보다는 알바가 주업입니다. 대학 시절의 낭만을 누리는 것은 고사하고 공부할 시간마저 제대로 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집 자식들은 졸업 후 높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얻기가 더욱 더 힘들어집니다. ‘교육을 통한 계층 상승’은 갈수록 발견하기 어렵게 되겠지요.) 과외 알바를 구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입니다. 식당보조, 막노동도 양반입니다. 요즘은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여학생들, 제약회사 신약 임상실험 알바하는 남학생들도 꽤 있다고 합니다.

물론 학자금 융자제도가 있지만, 융자가 불가능한 경우(ex. 부모가 주민등록말소자인 경우)도 있고 이자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대출과 동시에 이자 상환이 시작됩니다. 아무 소득이 없는 대학생들도 3월 학기가 시작하는 달부터 이자를 내야합니다. 제때 이자를 내지 못하면 학자금 대출을 거절당하기도 합니다. (작년 8월 기준으로 ‘신용유의자’-은행거래와 카드이용 등이 정지되는- 대학생이 7454명이나 된다고 하네요.) 또, 계속 융자를 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때부터 ‘마이너스 인생’이 시작됩니다. 학교 다닐 때 겨우 겨우 이자는 냈다고 칩시다. 졸업 후에 이자에다 원금까지 상환하려면 뭔가 좀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야 할 텐데 요즘 같은 시대에 취업하는 게 어디 쉽습니까? 특히 대졸자의 경우 10명 중 4명이 취업에 실패한다는데...

이제 대학은 대중 교육기관입니다. 1980년대만 해도 10명 중 3명 꼴로 겨우 대학 문턱을 밟았는데, 1995년부터는 고등학교 졸업생의 절반 이상이 대학교에 진학하기 시작했고, 이제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의 십중팔구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습니다. 대학진학률 83.8%, 전 세계에서 가장 대학진학률이 높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심지어 전문계고 졸업자의 대학 진학률도 72.9%에 이릅니다. 이제 대학 등록금 문제는 거의 모든 가정의 고민거리인 것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등록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국공립대학은 너무 적고, 사립대학이 지나치게 많습니다. 완전 기형적인 구조입니다. 사립대학 비율, 세계 최고입니다. 2008년 교육통계연보에 의하면, 4년제 대학교 174개 가운데 149개(85.6%)가 사립대이고, 전문대학/산업대학/원격대학 등을 모두 합한 전체 고등교육기관 405개 중 353개(87.2%)가 사립학교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대학생 중에서 사립대에 재학 중인 비율도 78.8%(4년제 기준), 74.6%(전체 고등교육기관 기준)에 이릅니다. 10개 대학교 중 9개 가까이가 사립이고, 대학생 10명 가운데 8명 가까이가 사립대생인 셈이지요. 반면, 다른 OECD 국가들의 경우 거의 모든 대학생들이 국공립대학을 다닙니다. (우리나라와 일본만 예외적으로 국공립대 학생 비율이 각각 22%, 25%이지요.) 우리나라와 일본 다음으로 국공립대 학생 비율이 낮다고 하는 미국과 멕시코도 10명 중 7명 가까이(각각 68.5%, 66.2%)는 국공립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대학 등록금 문제, 정말 너무너무 심각합니다. 미국,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대학교 다니기 어려운 나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외국” 하면 보통 미국과 일본을 우선적으로 떠올리고, 또 미국 유학파들이 워낙 많다보니 등록금 문제의 심각성을 체감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국립대 다니는 친구들은 ‘사립대 등록금에 비하면 그래도 이게 어디야~’하며 스스로 위안하는 경우가 많죠. 그러나 물론 상대적으로 국공립대 등록금이 저렴한 건 사실이지만, 국공립대는 원래 “등록금이 싸라고” 있는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국공립대학 등록금 수준은 세계 3위입니다(1등 : 미국, 2등 : 일본). 그것도 2등 일본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죠.

사립대학 등록금으로 따지자면 세계 4위입니다. 미국, 터키, 호주 다음이라고 하네요. 일단 미국은 빼놓더라도, 국공립대 학생 비율이 터키는 91.9%이고 호주는 98%입니다. 그러니까 터키나 호주에서는 돈 없는 보통의 학생들은 국공립대 다니니까 사립대 등록금이 좀 비싸더라도 (우리에 비해) 큰 문제는 아닙니다. 또, 사립대 등록금 비싸기로는 미국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래도 미국 대학생들의 2/3이상은 국공립대를 다니고 있고, 사립대도 다양한 장학금 혜택을 부여하고 있어 학생들이 실제로 느끼는 부담은 오히려 우리가 더 크다고 합니다.

‘대학 등록금 한-미-일 삼각동맹’인가요? 아무튼 분명한 건, 대학 등록금 때문에 가장 고통받고 있는 나라가 바로 우리나라라는 겁니다. 

등록금 인상률은 거의 해마다 물가 인상률을 훌쩍 뛰어넘어 왔습니다. 바야흐로 ‘등록금 천만원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상대적으로 등록금이 저렴한 국립대도 안심할 수가 없습니다. 국가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고 국립대를 특수법인화하여 거의 사립대처럼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립대학도 큰 틀에서는 마찬가지이지만) 국립대학은 헌법이 정한 교육 받을 권리를 실현시키기 위한 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정부는 그런 소중한 책무를 망각하고 국립대학마저 시장으로 내보내려 하는 것입니다. 이미 국립대학 세입에서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율은 50%도 채 되지 못하고 있으며, 이마저도 점차 줄어들고 있는 추세입니다. 최근 10년간(1998년~2007년) 국립대 등록금은 1998년, 1999년, 2001년을 제외하고 소비자물가상승률의 2~4배 폭으로 인상되었습니다. 이는 사립대 등록금 인상을 뛰어넘는 것으로 2002년부터는 국립대 등록금 인상폭이 사립대를 앞지르고 있습니다. 역시 ‘공교육 민간 부담률’ OECD 1위다운 면모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문민정부 이후 지금까지 줄곧 신자유주의적 교육정책이 시행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 교육은 ‘민주화’ 이후에 더욱 더 망가지고 있습니다. 정부라고 할 수 있는 문민정부 때(1995년 5.31 교육개혁안)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교육정책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쳐 지금의 명박이까지 대학교육 정책은 일관되게 추진되어 왔습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가 문민정부의 교육정책을 계승했다는 것은 참여정부의 국정브리핑에서도 인정했던 사실입니다.) 교육은 공공성(한 개인이나 단체가 아닌 일반 사회 구성원 전체에 두루 관련되는 성질)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헌법상의 원리’가 경쟁과 자율이라는 ‘수익자 부담 논리’ 앞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명박이 집권 하에서 더욱 더 분명해질 것입니다. 명박이의 교육정책 거의 모두를 만들었던 장본인, 경제학자 이주호가 교육부 차관이 됐습니다. 철저한 신자유주의자이자, 국립대 법인화론자, 평준화 혐오론자인 그가 우리나라 교육을 얼마나 망쳐놓을지... 청와대 교육과학문화수석 그만둔 지 얼마나 됐다고 또 다시 전면에 나선 것인지... 참으로 걱정스럽습니다. 

작성일 : 2009-02-14 16:57